"4·3 실상 처음 보여준 드라마"

[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44> 송지나의 '여명의 눈동자'

2011-06-09     양조훈

   
 
  MBC 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중 제주도에서 작별하는 모습의 여옥(채시라)과 대치(최재성)  
 

   총 36부작 중 6편 4·3 다뤄 '전국적 충격'
  "영상의 대중성과 중요성 느끼게 한 작품"


송지나의 '여명의 눈동자'
   
 
  '여명의 눈동자'  작가 송지나  
 

1991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방영한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시대부터 6·25전쟁 발발까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한 총 36부작인데, 그 중 6편에서 제주4·3을 소재로 다뤄 4·3의 실상을 모르던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에 앞서 1년전쯤 '여명의 눈동자' 시나리오 작가인 송지나가 신문사로 찾아왔다. 그녀는 대하드라마 속에 4·3을 담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의사를 피력했다. 첫째, 원작(김성종의 대하소설)이 반공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 둘째, 드라마 주인공들을 외부에서 들어오게 설정함으로써 4·3이 '외부의 사주'에 의한 봉기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 셋째, 4·3이 삽화처럼 단편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송 작가는 "원작과는 거의 다른 작품으로, 최근의 현대사 연구 성과를 최대한 녹여내서 4·3을 쓰고 싶다"면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자신이 세화고등학교를 나와서 제주사람들의 정서도 잘 알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울 태생인 송지나는 그녀의 아버지(대령으로 예편)가 퇴역 후 여행을 다니다가 세화 앞바다가 너무 좋다면서 정착하는 바람에 제주에서 세화중과 세화고를 졸업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했다.

그녀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이 느껴지자, 나는 4·3의 기존 자료들이 너무 이념적인 문제로만 부각됐다는 점을 우선 지적했다. 덧붙여서 나는 "그 당시의 제주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고, 휴머니즘적인 접근이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 취재반의 자료들을 제공하였다. 

드라마는 극 중의 주인공인 최대치(최재성 분)와 윤여옥(채시라 분)이 제주에 내려와 서청과 경찰의 횡포를 목격하고 봉기에 가담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또한 장하림(박상원 분)은 진압군의 일원인 미군정 정보장교로 제주에 내려오게 되는데,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이 세사람의 눈을 통해 4·3을 조명한 작품이 '여명의 눈동자'다.

"우리는 아직 독립되지 않아수다! 우리 할아버지를 죽인 일제 경찰이 그대로 물러나지 않았는데…"라는 어느 소녀의 절규, "양민들은 나오지 맙서! 민족을 나누는 5·10 단독선거는 막아사주"라는 청년의 외침 등을 통해 4·3이 왜 일어났는지 그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김익렬 유고록」 등에서 나타난 미군정의 이중성, 초토화작전을 계획하는 미군 장교와 군경 토벌대의 혹독함을 보여주는 장면도 나왔다.

이 드라마는 '항쟁의 정당성'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일부 연구자의 지적도 받았지만,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서 공중파 방송을 통하여 안방극장에 4·3의 실체와 토벌대 진압의 부당성을 부각시킴으로써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특히 그 시절에 쉽게 다룰 수 없었던 미군정의 실책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4·3의 진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여주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필자는 이 드라마가 방영된 후 서울 친지로부터 몇통의 전화를 받았다. "네가 하고 있는 취재가 '여명의 눈동자'에 나오는 4·3사건이냐?"는 식이었다. 이 드라마는 4·3이 무엇인지 잘 모르던 수많은 대중들에게 4·3의 실상을 부분적이나마 처음으로 가장 가깝게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지금도 '여명의 눈동자'는 4·3 진상규명에 관한 영상의 대중성과 중요성을 함께 느끼게 한 작품이었다고 확신한다.

'여명의 눈동자'를 쓴 송지나 작가는 김종학 감독과 함께 SBS '모래시계'(1995년), MBC '태왕사신기'(2007년) 같은 명작도 남겼다. 그녀의 다음과 같은 인터뷰 내용은 4·3 연재의 힘든 여정에 하나의 힘이 되었다.

"'여명의 눈동자' 시나리오를 쓰면서 1990년 초부터 이것저것 책자를 보았는데 기존 자료들이 너무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참 애를 먹었어요. 그러다가 제민일보 4·3취재반의 연재물을 보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제민일보 취재반과 토론을 하다 보니 복잡하기만 했던 4·3의 길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 다음 회는 '강요배의 역사그림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