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억 공유 지역을 살리는 새 성장동력으로

유네스코가 제주해녀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한 지 이제 2년이다. 해녀에 대한 각종 지원정책 등이 이어지면서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흐름이 생겼다. 해양자원과 보존·관리 등을 통해 해녀를 살피기도 하고 해녀문화를 활용한 문화콘텐츠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해녀 브랜드의 몸값도 높아졌다.

이런 변화들 속에서 정작 해녀문화의 핵심이 빠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의 바탕이기도 한 '공동체 정신'이다. 해녀가 지켜온 공동체 문화의 인문·사회·문화적 가치를 살피는 일은 나라를, 또 지역을 바로 세우는 작업과 연결된다. 제민일보는 올해 ㈔세계유산보존사업회와 공동으로 근·현대사 입체 비교를 통한 해녀 물질사(史) 기초자료를 구축하고 문화콘텐츠의 내실화를 시도한다.

△정체성 그 이상
'제주해녀문화'라는 이름은 아직 익숙지 않다. 제주해녀를 '어머니' '바다'와 연결하면서 강한 생활력과 억척스러움 등 전사(戰士)이자 지역경제를 지지하는 산업 역군(役軍)이라는 협의로 묶은 탓이 크다.

분명한 것은 제주해녀문화의 함의다. 해녀를 콘텐츠로 활용한 문화 활동도 해녀문화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하다. 주위환경에 적응하며 활동하는 방법과 그 활동으로 만들어 낸 물질·정신·제도적인 것 모든 것을 통틀어 문화라고 한다. '상당 기간 동안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 자기에 대한 경험'을 정체성의 정의로 살필 때 제주해녀·해녀문화는 충분히 의미 있다.

문화 정체성이란 특정 집단, 또는 민족이 상당 기간에 걸쳐서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여 그 집단과 민족을 고유하게 특징짓는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을 가리킨다.

눈으로 확인할 수도, 책이나 자료에 의존할 수 없는 바다라는 '밭'을 관리하고 그 기술을 전승한다. 숙련도를 높이고 자체 규약을 성실히 따른다. 이 모든 것들은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우러난다. 

△공동체를 통해 보는 일
분명한 것은 경제적 역할을 일부 덜어내고 공동체에 집중하면 보이는 것들에 대한 평가다. 제주해녀는 한반도 고유의 인문·사회·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들이 지키고 의지하는 바다는 4면이 바다인 제주에 있어 생태계 보전의 핵심공간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겉을 보는데 급급한 동안 경제개발·사회 구조 변화라는 미명 아래 제주해녀는 소멸 위기에 처했다. 신규 해녀 양성이라는 구상은 현장에서 어김없이 무너졌다. 바다 환경 역시 간과하기 어렵다. 생태적 복원 등의 미흡으로 지형과 경관 등에 대한 훼손에 가속이 붙을 수 있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다행히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이어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에 이름 올렸다. 세계농업유산 등재를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조례를 통한 다중 지원 시스템 구축은 '신규해녀'에 대한 공론 부족과 뭍에 오른 지 한참 만에 다시 테왁을 챙겨 바다로 나서는 고령 해녀들로 크게 앓았다. 

유네스코 등재에 대한 해석이 활용에 치우치며 킬러 콘텐츠 개발에 대한 주문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해녀의 날 지정에 맞춘 홍보 기획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해녀축제와 국제학술세미나 등의 구색이 맞춰지고 있지만 정작 '공동체 정신'은 핵심 화두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제주해녀문화와 공동체를 바로 아는 장치로 미래유산을 제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의 바탕에는 주위를 배려하는 공동체의 정신이 있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전쟁과 가난, 분단의 절박한 조건을 극복하며 압축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힘을 잃었다. 문화정체성 측면에 있어 시대 변화에 적응하며 지금껏 명맥을 이어온 존재는 해녀가 유일무이하다.

△제주 성장통 치유제로
이런 측면에서 제주해녀문화를 미래유산으로 접근하는 작업은 개발 여파 등으로 성장통을 앓고 있는 제주를 치유하고 지지하는 실현가능한 방법이다.

미래유산의 정의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지난 2012년부터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서울은 "근현대를 함께 살아오며 형성한 공통의 기억과 감성이 이후 세대와 공유되고 새로운 문화를 견인하는 중심" "급속한 사회변화 속 멸실과 훼손 우려가 높은" 것들을 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올해 미래유산 사업을 시작한 전주시는 근·현대를 배경으로 많은 시민들이 체험을 하고 있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건과 인물, 건물 등 유·무형의 가치 있는 자산으로 합의를 봤다.

제주해녀의 삶과 출가물질 등의 과정은 근·현대사를 읽는 유의미한 장치다. 단순한 구술 기록이 아니라 시대 상황 등을 포괄하는 입체비교는 다시 역사가 된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흐름은 아직 노해녀의 기억에만 남아있다. 개인에서 시작해 또 다른 개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개개인의 시점을 반영해 공유해온 기억의 편린을 기록하는 일은 제주해녀문화의 지속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고송환 해녀.

제주 첫 경선·해녀 어촌계장 출신 고송환 해녀

"단순히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능력치에 맞춰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줬다. 어릴 때는 응당 해야 할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대상군격인 고참 해녀의 말이 묵직하다. '제주 첫 경선 어촌계장'이자 해녀 출신 어촌계장 기록을 세운 고송환 해녀(73)다. 1997년 어촌계장을 맡은 이후 3회 연속 당선으로 장장 12년 동안 어촌계장직을 수행했다.

고 해녀의 주도로 성산어촌계는 2007년 7월부터 해녀물질공연을 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제1회 자율관리어업 전국대회에서 우수상도 받았다. '바다에서 배운 대로 했을 뿐'이란 인터뷰를 아직도 기억한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지만 바다에서 고 해녀는 '대장'이다. "학벌이나 외모, 권력 따위가 없어도 열심히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높다.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등재 작업에도 발벗고 나섰었다.

적어도 '제주에 해녀가 있었다'는 것을 기록할 수 있다는 생각이 컸다. 평생 물질 밖에 몰랐지만 그 것을 인정받는 일이 자부심이자 보람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섰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신규해녀를 양성하고, 고령 해녀를 관리하는 모든 일에 자연의 순리를 적용할 필요를 제안했다.

고 해녀는 "처음 물에 들어가면 소라는커녕 풀과 돌, 모래 같은 것밖에 안 보인다. 제 아무리 많이 벌고 싶어도 물이 들고 빠지는 것을 맞추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 없다"며 "해녀는 그냥 해보는 것이 아니라 몇 년이고 시간을 들여 익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지원도 좋지만 그런 과정들을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물질은 어머니며 삼촌 같은 어른에게 배우며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있어 단합이 잘 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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