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가치 세대전승 <1>미완의 진상규명

제72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을 일주일 앞둔 28일 제주의 관문 제주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도로변에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추념식을 간소하게 봉행된다는 문구가 새겨진 아치가 설치됐다. 김대생 기자

1999년 특별법 제정후 희생자·유족 명예회복 속도
국가추념일 지정 등 성과…'4·3은 말한다' 30주년
도내 집단학살 26건 확인…행방불명 조사 등 요구

올해로 제주4·3이 72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제정을 시작으로 4·3진상조사보고서 발간, 제주4·3평화재단 출범, 대통령 사과, 국가추념일 지정 등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미완의 역사로 불린다. 4·3 주요 성과와 과제를 5회에 걸쳐 살펴본다.

△금기의 역사 세상 밖으로

금기의 역사로 불렸던 4·3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시기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부터다. 10여년에 걸친 도민사회 노력으로 1999년 4·3특별법이 제정되고 2000년 1월 공포됐다.

4·3특별법은 4·3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됐다. 

이를 토대로 정부는 2003년 10월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진상보고서는 1948년과 1949년 4·3사건 군법회의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2005년과 2006년 1856명의 수형자를 희생자로 결정했다.

또 4·3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2만5000∼3만여명으로 추정되고, 가옥 3만9285동이 소각됐다고 기록했다. 

4·3 진상규명 노력에는 제민일보도 함께 했다. 4·3취재반 등을 통해 희생자와 유족들의 증언과 각종 기록을 확보했다. 1990년 6월 2일부터 1999년 8월 28일까지 456회에 걸친 '4·3은 말한다' 장기기획이 대표적으로 올해 기획보도 30주년을 맞게 됐다. 

4·3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보고서 발간 이후 본격적으로 희생자·유족 명예회복 사업이 진행됐지만 순탄치 않았다. 

보수단체 인사들은 2009년 3월부터 5월까지 제주4·3사건 희생자 결정 무효확인 청구 등 6건의 소송을 제기하며 진상조사보고서 무력화와 4·3 흔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3월 보수단체 인사들은 6건의 소송에서 모두 패소, 4·3 희생자 결정을 둘러싼 법정공방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

△17년 만에 추가보고서 발간

4·3 진상규명을 위한 도민사회 노력은 대통령 사과, 국가추념일 지정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고, 17년 만에 추가진상조사보고서 발간으로 이어지게 됐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이 최근 발간한 '제주4·3 추가진상조사보고서' 제1권은 마을별 피해실태, 집단학살 사건, 수형인 행방불명, 예비검속·교육계 피해실태 등을 구체화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희생자로 확정된 1만4442명의 피해 형태, 재판유형, 유해수습 여부 등에 따라 18개 유형으로 분류해 기술했고, 미신고 희생자가 1200여명에 이르는 사실도 확인했다. 

특히 마을별 피해 확인과정에 한 장소에서 50명 이상 피해를 당한 '집단학살 사건'이 도 전역에서 26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행방불명 희생자는 4·3위원회가 확정한 3610보다 645명 많은 4255명으로 밝혀졌고, 수형인 행방불명 희생자 실상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또 희생자 1만4442명의 피해실태를 본적지 중심에서 거주지 중심으로 재분류했다. 

이에 따라 가장 피해가 많았던 노형리 희생자는 544명에서 538명, 북촌리 희생자는 419명에서 446명, 가시리 희생자는 407명에서 421명으로 조정했다. 

그러면서 지속적인 행방불명 피해실태 조사와 유해발굴, 유전자 감식을 통한 신원확인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4·3유적지와 암매장지를 교육과 추념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과 미국의 역할 및 책임 규명을 위한 자료조사, 진압작전 지휘체계 규명, 4·3 정명(正名) 찾기 등도 주문했다. 김경필 기자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이하 진상보고서)는 제주 4·3 역사를 새롭게 쓰는 진실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추가 보고서는 그 길을 바로 가고, 또 나아지게 하는 과정입니다"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16년 만'이란 단어에 힘을 실었지만 '했다'보다는 '한다'는 의미를 강조했다.

'제주4·3사건 추가 진상조사보고서'(이하 추가 보고서)는 2003년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 발간 이후 진행해온 진상조사의 결과물이다. 정부 보고서가 총론적으로 제주4·3을 살폈다면 추가 보고서는 구체적 피해실태를 파악하는데 무게를 뒀다. '진실 규명'이란 목적을 분명히 했다.

양 이사장은 "진상보고서 작업을 했던 만큼 추가보고서는 유족과 제주도민의 요구이자 스스로에게 부과한 숙제였다"며 "진상보고서가 뼈대라면 추가보고서는 이후 확인한 미군 자료와 행방불명자 등에 대한 조사 등을 추가하며 살을 입혔다. 아직 해야할 작업도, 정리해야 할 자료도 많아 '1권'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재단은 2012년 3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재단 내에 추가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마을별 피해실태 전수조사를 벌였다. 양 이사장은 지난 2018년 취임 후 추가 보고서 작업을 특별히 신경 썼다. 양 이사장은 "희생자 신고가 계속 이뤄지면서 추가 보고서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조사단 활동이 끝났다. 그래서 2018년 10월 지속적인 추가 진상조사를 담당할 조사연구실을 설치하고 집필팀을 꾸렸다"고 말했다.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내용은 집요하고 꼼꼼했다. 제주도 12개 읍·면 165개 마을(리)별 실태 전수조사에서 확인한 집단학살의 시기와 장소, 피해 규모, 수형인 행방불명 등 구체적인 4·3 피해실태를 담았다. 도표만 무려 198개가 들어갔다. 50명 이상의 집단학살 사건 26건을 밝혀냈는가 하면 국무총리실 산하 제주4·3위원회가 확정한 행방불명자(3610명)보다 645명 많은 4255명의 행방불명자를 찾아냈다.

'다음'에 대한 질문에 양 이사장은 "진상보고서처럼 추가보고서도 4·3연구의 폭을 확대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며 "미국의 역할과 진압작전에 대한 규명, 연좌제 피해실태, 제주 출신 재일동포 및 종교계 피해실태 등 아직 담지 못한 내용이 많다"고 답했다.

제민일보 4·3특별취재반장으로 '4·3은 말한다' 연재 1회를 지면에 실은지 30년이 되는 해의 감회도 남달랐다.

양 이사장은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결국 사실이 드러나며 진보하는 것"이라며 "'4·3은 말한다'는 언론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도민 사회의 관심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진상규명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것은 물론 '4·3의 가치'를 관통하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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