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하늘을 쳐다본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많은 부분 행동의 반경을 위축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되도록이면 외출과 나들이를 삼가라는 국가적 당부에도 주말을 맞아 슬금슬금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띈다.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다. 폐교 운동장에 엄마아빠와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은 잔디밭을 보자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뒹군다. 축구공도 미리 준비해 왔는지 공이 운동장 한가운데로 던져지자 아이들은 제 위치를 잡고 공을 응시한다. 동생인 것 같은 아이가 공을 뻥 차보지만 몇 발자국 못가고 떨어진다. 형이 씩씩거리며 공이 있는 곳으로 달려와 하늘높이 뻥 하고 차본다. 하마터면 연에 걸릴 뻔했다. 

언뜻 보면 튤립 한 송이가 하늘에 떠 있는 것 같다. 맞은편에서는 독수리연이 다가오고 있다. 꽃은 꼬리를 휙 돌려 멀리 도망간다. 새에게 잡히지 않으려는 꽃의 몸부림. 아래서 줄을 잡고 있던 아이들이 너무 놀라서 줄을 놓아버렸다. 이제 연은 바람의 운명에 맡겨진 것이다. 흘러가는 것도, 잡히든지 잡히지 않는 것도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명이 결정된다. 

며칠 전 끝난 4ㆍ15 총선도 국민적 열망의 바람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 것이지 않을까. 어느 선거보다 표를 찍는 손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 여론의 움직임에도 유난히 귀를 기울였다. 하도 가짜뉴스가 많아서 저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도 많아졌다. 그야말로 내가 주체적 사고를 하지 못하면 왠지 생존의 뿌리가 흔들릴 것만 같은 불안함. 안 그래도 불안한 시국에 더 이상은 양보할만한 여유도, 더 무너져 내릴 자존감도 없는 민심의 바닥. 비로소 나로부터 민주주의가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무거운 책임감도 없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4ㆍ19이다. 

봄의 번성을 위해 싹틔운 너는 나에게 개화하는 일을 물려주었다아는 사람은 안다이 세상 떠도는 마음들이한 마리 나비 되어 앉을 곳 찾는데인적만 남은 텅 빈 한길에서 내가왜 부르르 부르르 낙화하여 몸 떨었는가남도에서 꽃샘바람에 흔들리던 잎새에보이지 않는 신음소리가 날 때마다피같이 새붉은 꽃송이가 벙글어우리는 인간의 크고 곧은 목소리를 들었다갖가지 꽃들 함께 꽃가루 나눠 살려고향기내어 나비 떼 부르기도 했지만너와 나는 씨앗을 맺지 못했다이 봄을 아는 사람은 이 암유(暗喩)도 안다여름의 눈부신 녹음을 위해우리는 못다 핀 꽃술로 남아 있다 하종오 시, 「사월에서 오월로」

"봄의 번성을 위해 싹틔운" 수많은 울음과 피, 개화의 몫은 살아남은 자들의 과제였으나 배고픔 앞에서 꽃을 생각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죽고, 귀에 얼얼한 목소리가 생생해도 내게 닥친 당장의 배고픔보다 앞선 것은 드문 일이다. 그렇게 변명하며 60여년 버티어 왔으나 결국, 근본적 과제를 모른 채 하여 더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많은 상처들이 있고 난 뒤에 깨닫는다. 2020년 21대 총선이 그런 걸 가르쳐 준 것 같다. 살아있는 민주주의 교과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선거가 끝나도 잡음은 여전하다. 일부에서는 '사전투표 개표 부정' 의견도 들린다. 승패에 완전한 승복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아니면 말고'가 내면화된 것인지, 짜증스런 코미디가 거듭되는 것은 피로감을 배가한다. 정치가 코미디도 아닌데, 왜들 그러는가. 그런 꼴 보고 싶지 않아서 이번엔, 꼭, 투표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치코미디 영화 '효자동이발사'는 그냥 심심풀이로 보아도 무방한 영화 같지만 배경에 깔린 정치적 은유가 만만찮은 영화다. 스토리는 청와대가 '경무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효자이발관'을 운영하던 성한모(송강호 역)의 이야기이다. 성한모는 이발관에서 면도사겸 보조로 일하던 여성을 성폭행해 임신을 시키고, 아들 낙안을 얻는다. 낙안이 태어난 날이 1960년 4월 19일이다. 

성한모는 동네에서 이발사를 운영하는 평범한 인물이며, 나라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믿는 비주체적 사고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가 내뱉는 말들은 어처구니없는 비논리가 난무하다. 예를 들어, "사사오입이면 헌법도 고치는데, 뱃속에서 다섯 달 넘으면 애를 낳아야지!"라고 하는 말 등이다. '사사오입', 3ㆍ15부정선거의 은유이다.  1961년 5월 16일, 효자이발관 앞으로 탱크가 한차례 지나간 후, '중고생 삭발령'의 조치가 내려진다. 5ㆍ16쿠데타로 이발관은 나날이 번창하게 된다. 그리고 16년 후, 성한모는 간첩을 신고한 대가로 청와대 이발사가 된다. 대통령의 이발을 담당하는 일은 영광이기도 하지만 부담이기도 하다. "각하의 용안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라며 두 눈 부릅뜨고 호령하는 관력의 2인자들.  어느 날 밤. 청와대 뒤 북악산에 간첩이 잠입한다. 간첩은 갑작스런 설사병에 변을 보다가 순찰을 돌던 군인에게 들켜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서는 설사병을 간첩에 의해 전염된 불순한 병으로 규정한다. 일명 '마루구스' 병! 설사를 하는 자들은 다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성한모의 아들 낙안이가 설사병에 걸린다. 간첩 용의자가 되어버린 낙안은 중앙정보부 고문실로 끌려간다. 

'효자동이발사'는  '사사오입', 3ㆍ15부정선거, 4ㆍ19혁명, 5ㆍ16쿠데타…, 한국현대사를 총망라하는 사건들 속에 평범한 소시민의 삶이 어떻게 굴절되고 왜곡되면서 처참하게 죽어 가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속 소시민으로 대변되는 성한모의 욕망은 별거 없다. 그저 배곯지 않고 자식 교육 잘 시킬 수 있으면 된다. 우연치 않게 경무대가 위치한 곳에서 이발관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행운을 얻게 되었으나 그의 '무사유'는 대책 없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무조건적 믿음과 신념은 결국 권력의 칼로 등허리를 맞게 된다. 

설사가 간첩병이라 믿는 어처구니가 어쩌면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볼 일이다. 마치 코로나가 국가가 일으킨 전염병으로 이해하거나 그런 것처럼 호도하는 일부언론과 정치권력의 현실이 '효자동이발사'의 최후를 떠올리게 하여 불안하다. 그러나 깨어있는 시민은 이런 희비극을 다시는 연출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이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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