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 같으면 시끌벅적한 계절일 텐데 요즘은 모든 게 고요하게, 무겁게 흘러가고 있다. 일이 없으니 기회 삼아 맘 편하게 쉴 만도 한데 겨우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쉬어도 숨고르기 바쁜 시절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오갈 데가 없으니 뉴스를 뒤적이고 채널이 이리저리 돌리는 일이 많아졌다. 채널을 돌리면서 드는 생각, '그 소리가 그 소리'이다. 소리는 요란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달콤하고, 시원하고 날카롭고, 무섭다. 거짓에 가까운 진실 같은 느낌이랄까. 이럴 땐 말 없는 것들과 씨름하는 게 낫겠다 싶어 꽃 몇 포트를 사들고 어머니 집으로 향한다. 

마당 한 곁에 가자니아, 사계소국, 공작초 등을 심는데, 돌 틈에서 삐져나온 괭이밥 한식구가 새초롬히 나를 쳐다본다. 괭이밥은 쥐도 새도 모르게 피고 지며 식구들을 늘린다. 꼭 들 틈이나 구석진 곳에서 난다. 그래서 괭이밥의 태생이 불가촉천민인가 하는 가증스런 생각을 해본다. 태생이 그런 생명이 어디 있겠는가. 이왕이면 흙 좋고, 물 좋고, 햇살 좋은 곳에서 태어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씨가 떨어지는 자리는 바람의 몫이다. 그래서 운명을 '타고난 자리' 라고 한다. 

집이 앉은 터가 바위 위라 흙이 그리 좋지 않다. 주변 흙을 긁어모아 꽃의 뿌리를 덮어준다. 흙이 날리며 코끝을 간질인다. 벌레가 들어가지 않나 의심하면서 코를 자꾸 만지니 장갑에 묻어 있던 흙이 콧구멍으로 들어간다. "흥" 하고 콧김을 내뿜는데, 코딱지도 함께 붙어 나온다.  나비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금세 공작초 꽃잎에 입맞춤을 한다. 공작초의 빛깔이 나비를 닮았는지 둘은 꽤나 친해 보인다. 그 사이, 참새 한 마리가 깨 씨를 뿌려 논 곳에 내려와서 콕콕 찍어먹고 있다. 새의 눈이 이리도 밝은 줄 처음 알았다. 어떻게 깨 씨를 발견할 수 있는지. 

새들의 눈은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보다 짧은 파장의 빛도 볼 수 있고, 땅에서 1.6km 떨어진 곳에서도 먹잇감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올빼미나 쏙독새 같은 새의 망막은 빛에 반응하는 시세포가 많아서 아주 적은 빛으로도 먹이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새의 눈을 닮고 싶을 정도다. 물론 그러려면 눈의 위치가 아마 이마 위나 정수리에 생겨야 할지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내 눈에 매가 들어와 있다 그것은 내 눈동
자 속에서 사납게 이글거린다 하는 수 없이 난 매의 눈
으로 세상을 쏘아본다 그러니 다들 내 눈을 피한다 그럴
수록 내 눈은 세상 구석구석을 매섭게 찌른다 차갑고 날
카로운 매의 눈, 난 그런 눈 따위 바란 적 없다 눈곱만큼
도 누구에게 해 끼치고 싶지 않았다 매는 그런 것에 아랑
곳하지 않고 내게 들어왔다 누군가는 그 사나운 매를 꺼
내 어서 날려 보내라고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걸 꺼내 날려 보낼 수 있었다면 
매가 눈으로 들어오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겠는가 매는 무
엇 때문에 내게 들어왔는가 난 언제까지 매의 눈으로 세상
을 떠돌아야 하는가 매의 눈으로 세상을 지켜보는 건 참으
로 지난한 일이다 언젠가 매는 허공으로 고요히 물러나겠
지 난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학성, 「매의 눈」

새 중에서 매는 인간의 5배가 넘는 시세포가 두 개의 눈 황반 부위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고 한다. 그래서 넓게, 멀리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문제를 넓게, 멀리 보아야 한다고 말할 때, "매의 눈이 되어야 한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정치나 언론의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피력되기도 한다.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독자나 시청자에게 필요한 것은 '매의 눈'이 아닐까 싶다. 일부 언론은 클로즈업 또는 아웃 포커스 기능이 너무 발달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사안을 악랄하게 몰고 가는 예가 많다.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양들이 있었는지 우리는 모두가 알고 있다. 언론이 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고 가고, 급기야는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사례는 너무나 많다. 물론 언론이 독자적으로 그런 짓을 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검-언-정-경 유착의 결과 때문이다. 요즘 뉴스타파, MBC에서 보도되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사건 탐사 뉴스는 아이러니를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2017년 작품 '더 포스트'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임시절인 1971년에 있었던 '팬타곤 페이퍼' 유출 사건을 테마로 하고 있다. 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즈는 '펜타곤 페이퍼'라는 극비의 문서를 연재기사로 내보낸다. 이른바 베트남전의 전초가 되었던 '통킹망 사건'이 미군이 조작한 사건이라는 폭로이다. 

'팬타곤 페이퍼'란 문서는 1967년 미국의 국방장관 로버트 S. 맥나마라의 책임 하에 작성되었다. 총 47권으로 된 펜타곤 페이퍼는 약 3,000쪽에 달하는 설명과 4,000쪽의 부속서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완성하는 데 18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문서에는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린드 존슨 대통령에 이르는 베트남전쟁 의 비밀이 다 들어 있다. 

영화 '더 포스트'는 1966년 대니얼 엘즈버그라는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보좌관의 '펜타곤 페이퍼 유출'과 관련한 배경과 사건을 다룬다. 엘즈버그는 전쟁의 참상을 보고하지만 맥나마라 장관은 이를 무시하고 미군의 우위를 주장하며 전쟁을 극단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이에 위험성을 느낀 엘즈버그는 '펜타곤 페이퍼' 일부를 뉴욕타임즈의 기자에게 제공한다. 정부의 일급 비밀문서가 유출되자 닉슨정부는 뉴욕타임즈를 법원에 고소하고, 보도금지가처분신청을 하며, 간첩죄 등으로 협박을 한다.

또한 경쟁사인 위싱턴 포스트지도 정부기밀문서 입수에 도전한다. 포스트지 발행인은 캐서린(메릴 스트립 역)이다. 여성으로서는 최초 발행인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건 남성들. 이들은 히히덕거리며 여성의 능력을 폄하고 조롱한다. 결국, 4천 장에 달하는 정부기밀문서를 손에 쥔 포스트지 편집국장 벤(톰 행크스 역)은 미 정부가 개입하여 베트남 전쟁을 조작한 사건을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캐서린은 자신과 언론사 모든 것을 걸고 결정을 내린다. 그것은 세상을 바꿀 진실의 보도이다. 뉴스 하나가 역사를 후퇴시키기도, 전진시키기도,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라는 언론의 바른 정신이 절실해진다. 국민을 살리고, 세상을 바꾸는 진실한 보도, 그게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부끄러운 세상의 반증이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서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괭이밥 같은 국민들이 그래도 발 뻗고 살 수 있으려면 정부와 정치가 팔 벗고 나서도록 언론이 부추기는 일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제 안위나 챙기고 권력의 나팔수나 자처하는 언론은 봐줄려야 봐 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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