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변화 읽어야 제주 1차산업 산다

십수년 '경쟁력 강화'만…소득 안정 제1과제·해석 제자리걸음
각종 지원자금 역기능 부각, '팔리지 않은 상품' 처리난 한계
6차산업 이어 융복합 영역 확대…건강한 생태계 구축 고민해야 

월동채소와 감귤 등 주력 품목 가격 하락, 기후변화와 고령화, 시장 변화 등 제주 1차산업에 '위기'라는 단어는 반갑지 않은 친구다. 경쟁력 강화에 집중한다는 정책 목표는 십수년에 걸쳐 바뀐 적이 없다. 지난 4·15총선에서 정당이나 후부를 막론하고 1차산업 소득 안정을 1·2순위 공약으로 꼽았다. 환경이 바뀌고, 자연재해 등 변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말만 앞선 주먹구구식 정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사회적, 경제적 부가가치 확보와 더불어 농촌 환경과 농업 경쟁력에 대한 전략적 대응 없이는 어떤 대책도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 균형축 이동…생산이냐, 처리냐

지난해 10월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1차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유관기관과 머리를 맞댔다.

제주산 월동채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산지 유통기능 확대 방안 정책 토론회를 열고 1차산업과 ICT 등 미래 산업을 연계해 고령화 문제와 소득안정성, 유통문제 등 현재 제주 1차산업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현재 마주한 현실은 우울하다. 코로나19는 만감류 처리에 허수를 만들었고, 월동채소류는 수급 불안정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소비절벽으로 유통처리가 안 되는 상황은 지난해도 그 전해에도 있었다.

선거 때마다, 도 정책을 정비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청정 제주 1차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말을 믿는 사람도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 사이 1차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다시 바뀌었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중간 유통 최소화와 수급 불안정 해소 방안으로 온라인농산물거래소가 개장했다. 코로나19가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도 농수축산물을 사는 상황을 익숙하게 만든 영향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6차산업과 농촌 체험 관광이 주춤한 사이 치유농업이 신성장동력으로 부상했다. 소득을 기준으로 '1차산업 경쟁력'을 평가하기 힘들어졌다.

농업 등 1차산업을 유지하는 기본은 '소득'이 맞지만, 소득에 대한 해석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 일정 아닌 적정소득 접근

전국 최고 자리를 놓치지 않는 제주지역 농가부채를 보면 지난해 7512만8000원으로 전년(7458만5000원)보다 54만3000원 증가했다. 지난해 잦은 비와 늦가을 태풍 등에 흔들린 상황을 감안하면 잘 버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농업소득률이 29.4%로 떨어지고, 농가 경영상태를 가늠하는 농가경제잉여가 497만8000원으로 전년 548만5000원보다 50만7000원 줄었지만 농업부가가치는 3161만4000원으로 전년(3125만3000원)에 비해 소폭 늘었다.

날씨 변수는 농업소득에 더해 농외소득도 끌어내렸다. 자연재해가 없던 해는 상승 요인이었다. 농가처분가능소득도 부동산 경기가 최고조였던 2017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전국 상위권이다. 

정부·지자체 지원 등을 포함한 이전소득이 1188만원으로 관련 집계 후 처음으로 '1000만원대'에 진입하며 전년 대비 33만3000원 늘어난 4896만3000원이라는 농가 소득을 만들었다.

경쟁력 강화라는 이유로 농업지원자금의 종류와 규모가 계속 늘어났고, 정책자금 지원이 농정의 핵심을 이루며 만들어낸 씁쓸한 결과다. 선택과 집중에 이어 자부담 여력 등의 조건이 늘어나며 경영체나 품목간 경쟁을 훼손하는 역기능을 낳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방향성 등 3박자 행동계획

방향을 바꿔 보면 1차산업 정책의 함정이 보인다. 전체 농업 소득은 농업외 경제활동을 포함한다. 부가가치를 극대화한 6차산업 전략에서 인프라 부족이란 제약 요인이 빠져본 적이 없다.

잘 키우고, 잘 만들었는데 소비자 유인은 물론이고 홍보·판촉까지 하기에는 여력이 없다는 하소연도 여전하다. 고령화·공동화 해소를 위해 젊은 피를 수혈한다는 구상은 수년째 답보하지 않으면 후퇴했다. 단순히 농업소득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산업이란 큰 틀 안에서 1차산업도 생산에서 유통까지 3박자 행동계획을 분명히 해야 한다. 방향성과 명분, 실행주체, 관련 예산 확보까지 합을 맞춰야만 버틸 수 있다.

제주도는 지난해 미래감귤산업 50년 발전전략을 짰다. 총 생산량 50만t 안정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감귤 농업 현대화로 농업인 고령화 등 문제 해결하는 대안 등을 담았다.

지역경제 버팀목으로 지속 성장하는 감귤 산업 구상 아래 정량적 목표로 제주 감귤 조수입을 현재 9000억원에서 2024년 1조원으로, 2070년에는 1조5000억원으로 확대한다는 복안을 세웠다.

과연 실현할 수 있을까에는 빈칸이 여러개 생긴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재배선이 북상하고 재배기술 고도화와 수입산까지 경쟁시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감귤을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설계는 밋밋하다. 오히려 기타 작목과의 정책 불균형으로 자율적 구조조정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소비 행태가 불규칙하고 또 빠르게 바뀌고 있는 상황을 따라잡기에는 정책속도가 더디다는 한계도 있다. 홈쇼핑에 맛보기 상품이 등장하고 대형매장에서는 당도 선별 포장으로 가격을 차별화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수출이라는 출구가 차단되는 상황을 경고했다. 브랜드와 맛에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의 성향과 그동안 '제주산'무장에 길들여져 시장 경쟁에 취약해진 상황도 인정해야 한다.

△'늙고 힘빠지는'을 뒤집어라

갈수록 '늙고 힘빠지는' 농업은 소득 보다는 살기 좋은 농촌으로 대체할 수 있다. 청년 농업인이나 귀농인구의 상당수는 정착하지 못해 리턴을 결정한다. 1차산업 특성상 적정 수준의 소득에 도달하기 까지 장기전인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질이 떨어지는 현실은 극복을 강요하기 어렵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촌의 현실 진단과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를 위한 과제'보고서에서 삶터가 일터인 농촌 지역의 경제활동 기회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를 내건 정책은 많지만 중앙에서 추진하는 사업들에 맞춰 단발적인 프로젝트 차원에서 사업이 수행되면서 시너지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물론 후속조치 미흡으로 계획 자체가 방치되는 경우가 많은 점을 꼬집었다. 기획·조정 등에 있어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점 부서간 경쟁, 협력 체계가 미약한 점을 약점으로 들었다. 농촌개발 관련한 사업이지만 사업 주무 부처에 따라 농정 기획이나 주민 생활환경 기반 조성, 환경, 건설, 문화관광 등에서 제각각 수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업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면서 정책 추진 주체인 지역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지 못하거나 일방적으로 끌려가거나 주도하는 것으로 사업 지속성을 훼손하는 사례도 적잖다.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법' 제정으로 힘을 받은 치유농업 영역은 이른바 농업과 기반·연계산업의 연동을 전제로 한 융·복합 영역이다. 식물·동물·곤충 등의 농업 소재와 농촌자원이 중증질환과 만성 질환, 스트레스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검증을 접목한다. 2022년까지 치유자원 40종을 발굴하고, 대상자 맞춤형 프로그램 18종을 개발한다. 사람을 유인하는 장치로 생애주기라는 시스템을 접목했다.

누구나에 초점을 맞추면서 접촉면을 확대했다. 체험 공간은 조성하거나 기본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으로 불필요한 투자나 개발 사업으로 왜곡되는 것을 차단한다. 노인과 장애인의 원활한 농업 활동을 위한 전용 휠체어와 농작업 보조 도구 개발 등 실용화 연구도 추진한다. 치유 농업사 양성과 치유농업 정보망 구축까지 '농업'을 중심으로 복지·의료·제조·특수재료·IT 영역을 아우르고 신규 일자리까지 만드는 그림을 그려낸다.

다양한 기회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이 귀하고 산업화에 한계를 호소하는 등 농업 경쟁력 제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귀농 선택과 정착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절대적이다. 생산에만 집중하면서 농산물의 시대적 가치와 소비자들의 삶의 방식 변화에 적응이 더딘 상황을 반성하고 농업 장애 요인에 대한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 제민일보는 2020년을 제주 농업 경쟁력 부활의 해로 설정하고 민심과 환경 변화를 읽고 농정에 대응하는 장기 기획에 불을 댕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