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는 보람' '읽는 기쁨' 배달소년 30년 후]

30년 전 제민일보 창간 당시 '도민이 만든 신문'을 지역에 알렸던 배달소년 이승환씨가 자신을 찾는 기사가 실린 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권 기자

1990년 창간 당시 용당리 일원 신문배달 이승환씨 
보급소였던 집 30년 세월 한자리...독자로서 응원

가난했던 시절 굽이굽이 이어진 농로와 마을길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다 보면 어느새 이마엔 땀이 맺히고 숨이 차 오른다. 그래도 부지런을 떨어 그날그날의 '세상 소식'을 마을 주민들에게 전했던 10대 배달소년의 기쁨과 보람은 아직 또렷하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잉크 냄새에 옛 기억을 떠올리고 '도민이 만든 신문'을 집어드는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1990년 창간 때부터 제민일보를 지역에 알렸던 배달소년 이승환씨(43)는 어느새 9살짜리 딸을 둔 가장이 돼 있었다. 

제민일보 창간 1주년을 기념해 1991년 6월 2일자에 실린 대담 속 15살 소년의 앳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본보 5월 25일자 8면) 신문 배달을 했던 그 시절의 향수는 오롯이 전해졌다. 

당시 신창중학교 2학년이던 이씨는 제주시 한경면 용당리·용수리 일원에 제민일보를 보급하는 정보 전달 역할로서의 '전하는 보람'과 '읽는 기쁨'을 또래답지 않은 당찬 모습으로 전해 눈길을 끌었다.

이씨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7살때부터 신문배달을 시작해 연합고사 준비로 그만둔 중학교 2학년까지 7년간 배달원을 했다. 신문사에서 준 자전거를 타고 놀다 사고가 나는 바람에 초등학교 5학년 1년간은 배달 일을 하지 않았다.

먹고 살기 바빴던 가정형편 탓에 이씨의 누나가 하던 것을 이씨가 이어받았고, 이후 이씨의 동생이 맡아 배달일을 했다. 당시 신문 보급소였던 용당리 이씨의 집은 30년 세월 한 자리를 지키며 지금도 부모가 살고 있다.

처음에는 다른 신문을 배달하다가 제민일보 창간 이후부터 아버지와 신문사 국장과의 인연으로 제민일보를 지역에 알렸다. 

그때만 해도 신문은 마을 이장 등 지역 유지나 형편이 되는 집에서만 받아 부수는 30~40부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았지만 용당리 본동·주전동 등 3개 마을을 직접 걸어서 돌리면 2시간 이상 걸렸다.

제민일보 창간 이후 부수가 늘어나면서 신문사에서 자전거를 지원해 준 이후부터는 1시간 안팎으로 시간이 줄어들었다. 용수초등학교에서 유일하게 신문배달을 했어도 또래 친구에게 당당했던 이씨였다.

지금과 달리 신문은 보급소에 오후쯤 돼서야 들어와 학교 수업이 끝나는대로 배달을 했고, 비나 눈이 많이 올때는 다음날 아침에 마무리하기도 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에 두루말이 형태로 돌돌 말린 신문 뭉치를 농로 배수구에 버렸다가 아버지에게 걸려 혼쭐난 일화는 이씨 가족의 추억이 되고 있다.

10대 시절 배달을 하는 틈틈이 신문을 읽고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제민일보를 펼치는 이유가 됐다.

이씨는 "제민일보에서 30년 전 배달소년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신문에 실린 15살 모습의 나를 보며 가슴이 뭉클했고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며 "창간 당시 초심을 잃지 않고 도민이 만든 신문의 명맥을 이어갔으면 한다. 도민과 함께 달려온 제민일보를 앞으로도 늘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한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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