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림 호서대 교수·논설위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 후 인간만이 말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말로 문제를 만들기도 했고, 문제를 풀기도 했다. 사실 '말씀'의 경우는 대개 '말'의 높임말로 알고 있지만, 낮춤말이기도 하다. 어른 앞에서 자신의 말을 가리킬 때는 '말씀'이라 하고, "성현의 말씀에 따르면..."과 같은 문장에 쓰는 높임말로서의 '말씀'과 달리 여러 사람 앞에서나 자신을 낮추는 경우에도 '말씀'이란 말을 쓴다. 

그래서 말은 그 말이 쓰이는 나라의 사회적 배경이나 의식 그리고 분위기에 따라 결정되는가 하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 패턴을 형성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힘을 가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 거친 사고는 거친 말을 낳고, 거친 행동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말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기에 말을 하는 사람의 인격과 양식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생각의 양식이나 수양의 정도에 따라 말의 구조와 격이 결정됨으로 말은 착할 수도 있고, 반면 악할 수도 있으며, 진실할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얼마 전 우리는 북한의 지도자란 사람들이 뱉은 말 같지 않은 말을 또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며 불쾌했고 기분이 상해 그 말을 옮기는 것조차 내키지 않는다. 같은 말을 쓰는 민족이니 누구보다도 그 뜻과 의도가 직접 와닿았다. 다만 그러한 말이 그곳의 사회적 배경이나 의식 그리고 분위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스스로 위안 삼을 뿐이다. 한마디의 말이 중요하다고 해서 "말 한마디에 천금이 오르내린다"고 했고, 할 말은 해야 서로의 사정도 알 수 있고 속도 시원해진다고 해서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란 말도 있다. 그러나 말하는 자의 인격과 양식, 그리고 수양의 정도도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말을 듣자니 거북함을 넘어, 연민의 정이 앞서는 이유는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거친 말을 했으니 거친 행동이 자연스러웠던 것인지 서로의 소통을 위한 장(場)도 너무나 거친 방식으로 파괴했다. 

말은 화자(話者)의 입장에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자(聽者)의 입장에서 말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고 그것을 선별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정론(正論)과 유언(流言), 조언과 험담, 청담(淸淡)과 패설(悖說)을 분별해 사용하는 것이 교양이고 인격이다. 말을 하면서 주위환경이나 형편에 어울리는 분수와 품위가 없다면 말의 격(格)을 논할 수 있겠는가? 비록 말은 인간만이 갖는 특권이라 하지만, 사회와 국가가 인간들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말은 개인뿐만 아니라, 그 사회와 국가의 격을 대신한다고도 할 수 있다. 

"병(病)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禍)는 입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선인들은 입을 병마개 치듯 하고(守口如甁), 말을 많이 하면 자주 곤궁해 진다(多言數窮)고 하면서 말의 난발을 경계했다. 『탈무드』에서도 "입보다 귀를 높은 지위에 놓아라"라고 한 것을 보면 삼사일언(三思一言)의 진리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솔직히 말은 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사회적이다. 

말은 자고이래로 우리의 존재를 나타내는 의식의 산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얽어 놓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말길로 하나하나 풀어 가는 선별과 수행의 인격적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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