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르신창작그림책 원화전 '허단보난 재미난'
서귀포시 위미리 동네서점 북타임서 30일까지

"난 못허키여 어떵 그림도 그리곡 글도 쓰느니"라며 처음 손사래를 치던 어르신들이 저마다 "이건 어때"하고 묻는다. "어머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세요. 그렇게 하면 돼요" 그렇게 오랜 세월 기억으로만 품어온 이야기들이 그림책 원화로 세상에 나섰다.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는 오는 30일까지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위치한 동네서점 북타임에서 제주어르신창작그림책 원화전 '허단보난 재미난'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는 원화 30점을 비롯해 제주어르신창작그림책과 어르신들의 그림으로 제작한 엽서, 노트를 함께 소개한다.

그림책 작업은 평소 말을 하면서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여간 어색해 하지 않는 어르신들을 위해 찾아낸 '과정'이다. 처음에는 떠오르는 것들을 선으로 표현하게 하고 조금씩 색을 입히는 작업을 했다. 이야기라는 틀을 구성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어느 것 하나 허루투 지난 것이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것은 고단했던 시절을 어머니로 아내로 살아왔던 어르신들에게 문화 치유 장치로 작동했다.

그림책은 태어나 처음이라는 어르신, 표현할 방법과 창구를 몰라 입을 다물었던 어르신, 자신이 겪고 봤던 것들을 절대 표현해선 안 된다고 여겨왔던 어르신 등등 한분 한분의 일생은 그 하나로 제주라는 큰 그림을 이루는 역사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고도 한 번 제대로 울지 못했던 사연,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던 지난 청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정작 여성으로, 나로 살아보지 못한 설움 같은 것들은 예상과 달리 부드러운 선과 따뜻한 색감으로 펼쳐진다.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들이 그대로 곰삭아 있어 생각이 많아지게 한다.

오는 18일 오후 5시부터 전시 공간에서 어르신들의 못다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북콘서트도 열린다.

이현미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장은 "삼춘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꼭 챙겨 기록해야 할 기억이다. 제주문화를 하나의 역사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삼춘들의 자존감을 찾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더불어 사라져 가는 제주어로 어르신과 다음 세대인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는 지난 2016년 선흘 어르신들과 그림책만들기로 시작한 이후 설문대어린이도서관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면서 현재까지 31권의 그림책을 발간했다. 올해부터는 민간단체로 등록해 마을 어르신을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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