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벼랑 끝 제주농업 ]1. 위기에 처한 ‘감귤산업’ “고품질 감귤로 승부해야”

한·미 FTA 직격탄 맞은 감귤산업…15년간 연평균 900여억원 등 1조4000억 피해 전망
가격경쟁력 우위 미국산 오렌지와 품질로 승부…효과적이고 차별화된 정책 마련‘시급’

2007-05-31     김영헌 기자

   
 
  그래픽 디자인/조윤경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산물 시장개방으로 제주농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관세가 철폐 또는 축소된 미국산 농축산물은 가격경쟁에서 월등한 우위를 갖고 있어, 1차 산업 비중이 큰 제주지역 경제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전망이다. 감귤산업과 밭작물, 축산산업이 무너지면, 그 파급효과로 제주지역 경제는 도미노처럼 쓰러질 것은 불 보듯 뻔할 일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졸속협상과 제주도정의 미흡한 대응으로 타결된 한미 FTA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제주농업의 생존전략과 효과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감귤산업, 일반작물(밭작물), 축산산업 등 3개 산업에 대한 한미 FTA의 영향과 대책을 점검한다.

   
 
   
 
△직격탄을 맞는 ‘감귤산업’
비가림하우스 감귤 재배농가인 K씨(48)는 최근 밤잠을 설치고 있다. 한미 FTA 여파로 비가림하우스 감귤 가격이 폭락하는 등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무리하게 빚까지 들여 시작한 비가림하우스 감귤 재배가 후회스럽기 때문이다.

K씨는 행정기관에서 비가림하우스 감귤 재배가 앞으로 경쟁력이 있고, 한칠레 FTA 기금으로 시설비의 절반까지 무상으로 지원해 준다는 말에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0여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K씨는 “당장 내년부터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하우스감귤은 큰 피해가 예상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빚을 갚아야 할 지 막막하다”며 “불과 몇 년 앞도 예상하지 못하는 정부의 말을 믿은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 뿐”이라고 토로했다.

한미FTA 협정이 발효되면 만다린 관세까지 전면 폐지되는 15년간 감귤산업의 피해액은 1조4311억원으로, 연평균 954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결과에 만다린 수입에 따른 피해는 고려되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미국내 만다린 재배면적 증가와 향후 시장개방 확대 등의 영향으로 감귤산업 피해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는 한미FTA 타결에 따른 오렌지에 부과되는 계절관세 기간이 불합리하게 지정되면서, 만감류는 물론 노지감귤에 대한 연쇄파동이 예상되는 등 제주감귤산업과 관련한 보호대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렌지 수입이 없는 9∼10월에는 현행관세(50%)를, 오렌지 수입이 가장 많은 3∼5월에는 낮은 관세를 적용시킴에 따라 계절관세로 인한 감귤보호는 고사하고 오히려 피해를 더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월동온주, 만감류와 3월에 출하되던 노지감귤이 수입오렌지와의 경쟁을 피해 2월말 이전 조기출하 현상이 발생, 과잉출하에 따른 전체 노지감귤 가격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낮은 관세에 따른 오렌지 수입량 증가로 월동온주 및 만감류 시장이 잠식당해 제주산 감귤 전체에 가격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와 함게 오렌지농축액 관세도 완전 철폐됨에 따라 감귤농축액 경쟁력이 상실되고, 이로 인해 가공처리되지 못한 저급품 감귤이 소비시장으로 빠져나가 감귤 가격 하락을 더욱 부채질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고품질로 ‘승부’
한미 FTA 체결에 따라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갖게 된 미국산 오렌지와 승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주감귤의 선택은 고품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국내 시장에 출하되는 노지감귤 가운데 차별화 등을 통해 고급 브랜드로 정착한 상품들은 고가에 거래되고, 가격변동도 크지 않다.

하지만 제주지역 감귤산업의 고품질 브랜드화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불과, 단순히 당도가 높은 감귤을 골라 특정 상표를 부착·판매하는 수준이다.

고품질 감귤이라는 이미지 부각을 위해서는 수도권 지역의 소비자를 위한 이벤트·특산품 축제와 같은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것은 물론 타 지역에 신선한 제주감귤을 공급하는 직영점·프랜차이즈 사업 등 생산에서부터 유통, 판매까지 체계적이고 차별화된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농가와 생산자단체, 제주도, 정부간 체계적인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는 폐원정책에 따른 부작용 발생을 교훈 삼아 간벌에도 폐원 수준의 보상을 해주는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

현재 감귤재배 면적을 유지하면서도 생산량은 줄여 명품 감귤을 생산토록 정부가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또 제주도는 농가 유통비용 부담 해소를 위한 공동정산제 도입 등 실질적인 정책 수립과 각종 정보제공·컨설팅·기술이전·품종 개발 등을 책임져야 하며, 여기에 농협 등 생산자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감귤농가들의 인식전환이 우선돼야 한다. 비상품 감귤 유통행위를 스스로 근절시키고 고품질 감귤만으로 고가 전략을 통해 시장에서 승부하겠다는 자세가 마련될 때 제주의 명품 감귤이 미국산 오렌지와의 승부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제주도가 한 ·미 FTA 대응 농축산 종합대책을 마련했지만 일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개선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만감류 재배 면적 확대 등을 내세운 감귤분야 종합대책으로 미국산 오렌지와의 정면승부에 나서기에는 대응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오렌지와 경쟁이 불가피한 만감류 등 고품질 하우스 시설을 확대한다는 계획이지만 판매전략은 부실, 농가소득 창출 가능성은 불투명한 실정이다.

또 저급품감귤 가공처리를 통한 수급조절 및 가격안정대책도 농축액 재고량이 급증하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가 하면 농가부채 경감방안도 융자금 이율을 인하하고 상환기간을 연장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미흡하다는 분석이다.

제주도가 종합대책에서 감귤산업의 목표로 정한 조수입 1조원 시대가 장밋빛 환상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책마련과 함께 각종 대책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김영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