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우리도 제주인] <10>우크라이나에서 온 발렌티나 : “한국 아줌마 다 됐어요”
군대간 아들 면회갈 생각에 ‘흥분’
제주 말하기 대회 입상…우리말 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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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대간 아들의 소식을 인터넷 국방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고 있는 김상배·발렌티나 부부 <조성익 기자> | ||
취재를 위해 전화를 걸었던 참이다. ‘취재는 가능하지만 아내가 피곤해서 걱정이 된다’는 남편의 말에 은근히 샘이 났다.
결혼 5년 차에 접어 든 김상배(45)·발렌티나(34)씨 부부를 만났다.
늘 엄마편이었던 아들 성민(18)이를 군대에 보내고 모처럼 가족이 모여 ‘외식’을 하는 자리에 염치 불구하고 불청객을 자처했다.
야외에서 고기를 먹기 위해 장을 보는 발렌티나는 영락없는 ‘아줌마’다. 그것도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다. 먹기 좋게 고기를 잘라달라는 부탁도, 50원이나 하는 비닐봉투는 ‘필요없다’고 딱 부러지게 말을 하는 것도, 현금영수증 등록을 부탁하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 몇 개를 이웃돕기 모금함에 쑥 넣고 돌아서는 것도 너무도 익숙하다.
제주에서 5년. 무엇이 가장 좋은가를 묻는 질문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좋다”는 답이 돌아온다.
관광지여서 그런지 외국인이라도 낯설어하지 않고 쉽게 어울릴 수 있던 것도 좋았고, 고향 우크라이나와 달리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 입고 집을 나서지 않아도 누구하나 뭐라고 하지 않는 분위기도 좋다.
7살에 제주에 온 선아(아나스타샤·13)가 8살 생일 때 ’초등학교 입학’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하게 품어준 제주에 대한 정은 남다르다.
만난지 3개월만에 ‘가족’이 됐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들의 가족애는 끈끈하다.
군대에 간 오빠의 몫까지 선아의 하루가 바빠졌다. 선아는 “(예전 오빠가 하던 것까지 포함해) 엄마의 잔소리가 늘었다”고 살짝 눈을 흘기는 것으로 오빠의 빈자리를 표현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의 마음도 그랬다. “‘보고싶다’는 말을 자꾸하면 성민이가 약해 질까봐 일부러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성민이 마음이 너무 여려서 군대에 다녀오면 더 성숙해질 것”이라며 내색은 안했지만 “첫 휴가 나오기 전 면회를 갈 계획”이라는 남편의 말에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둔 어린 소녀처럼 흥분된 표정이 된다.
성민이 방은 지금은 가족들의 거실이 됐다. 그냥 비워둬도 될 일이지만 늘 성민이와 함께 하고픈 가족들의 바람은 아들의 빈 자리에 늘 사랑을 채워놓는 것으로 귀결됐다.
제주말하기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우리말이 능숙한 선아와 달리 아직은 우리말이 힘든 그녀지만 “늘 말을 아낀다”고 했다.
“말을 잘못하면 그게 기억에 남고, 또 가슴에 남아 더 힘들어진다”는 게 이유다. “말은 내뱉으면 새처럼 금세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더 이상 멋있어질 수 없을 만큼 멋진’아들과 ‘‘우리나라’니까 잘 알고 싶다며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히고 학교생활도 곧잘 해내는 어른스런’딸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사랑하는’남편이 있지만 발렌티나씨는 “늘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들한테 해주고 싶은 게 많은데 일하고 돌아와 저녁준비를 하고 하다보면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걸 이해해주고 또 감싸주는 남편이 많이 고맙다. 조금은 무뚝뚝한 아들과 달리 아빠에게 애교가 넘치는 딸은 그래서 경쟁상대가 된다.
“지금 너무 행복하다”는 발렌티나씨에게 제주 생활이, 또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떤가를 묻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챙기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또…”하며 살짝 얼굴을 찌푸리는 딸의 표정이 곰살궂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