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속문화의 재발견(상)] <11>사례를 찾아서 ②하회별신굿탈놀이

안동 해학과 풍류, 세계를 사로잡다

2007-12-11     현순실 기자
‘1백만 관객, 가슴을 파고들다.’하회별신굿탈놀이가 얼마 전 중요무형문화재 공연으로는 전국 최초로 보존회 상설공연 10년을 채운 결과를 밝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상설공연은 10년을 하루같이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민족의 신명이 녹아있는 탈과 탈춤으로 함께 울고 웃는 신명풀이의 장이었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여기까지 오기까지에는 사연이 숱하다. 800년 하회별신굿탈놀이 역사가 일제의 우리문화말살정책에 의해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그 ‘조각들’을 모은 건 지역의 광대들이었다. 잊혀진 문화유산도 정신만 살아있다면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만들 수 있음을 광대들은 보여줬다.

   
 
  ▲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안동의 해학

‘호박에도 손 들어갈 틈이 있다’고 했다. 안동과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를 논할 때 적절한 비유다.

‘안동 사람’하면 으레 근엄하고 유식하고 예의 바르다고 알고 우스개 따위를 구사할 줄 모른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과연 그러한가.

안동은 한국에서 전통문화가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고장이다. 수많은 명현(名賢)·거유(巨儒)·지사(志士)가 나왔으며, 지금도 조선시대의 대표적 유교문화가 삶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하회마을은 고건축 박물관이라 해도 될 만큼 조선시대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의 살림집들이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채 남아 있다.

솟을대문을 세운 거대한 규모의 고택과 초가들이 길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서민들에 의해 연희되어온 탈춤이다. 이 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열렸던 별신굿이라는 마을 굿의 일환으로 연행되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내용은 지배계층인 양반과 피지배계층인 상민간의 관계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스님의 파계를 통해 당시 불교의 타락상과 종교의 허구성을 비판해 상민들의 삶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인 김원길(지례예술촌장)은 “팔자 걸음 찬찬한 몸놀림 속에 허리 휘는 웃음을 에두른 안동의 유머, 딸깍발이 유림의 해학을 통해 보는 우리 전래의 여유와 품위, 따스한 지성미”로 하회별신굿탈놀이의 해학미를 설명했다.
 

   
 
  ▲ 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공연장.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한때 맥 끊겨

하회별신굿탈놀이에 빠트릴 수 없는 게 화회탈(국보 제121호)이다. 하회탈은 12세기경인 고려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로 만든 가면이다. 하회탈의 그 사실적인 표정과 뛰어난 제작기법은 고려 중엽 탈제작자인 허도령의 전설과 함께 고려인들의 탁월한 예술적 능력이 충분히 발휘된 세계적 수준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허도령이 제작한 탈은 모두 14개였으나, 3개가 분실되고 현재 10종 11개만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8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했던 하회별신굿탈놀이는 1928년 일제의 우리문화말살정책에 위해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춘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950·60년대, 국내 학자들의 복원 노력과 70년대 우리문화찾기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부터다.

이후 한국의 전통 탈춤을 복원하자는 25명의 뜻도 함께였다. 그들은 73년 ‘안동하회가면극연구회(현 하회별신굿탈놀이)’라는 단체를 설립, 하회탈춤 복원에 팔을 걷었다. 1928년 무진년을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잊혀져버린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반세기만에 복원, 하회탈과 탈춤이 온전하게 전승되게 된다.

   
 
  ▲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세계 속의 탈춤으로

안동하회가면극연구회가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복원했던 뜻은 단순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하회마을의 정신문화며, 하회마을의 힘이 그곳에서 태생됐기 때문’이다.

임형규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장은 “복원 당시 만해도 지역사회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았다”면서 “90년대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는데 힘을 얻은 전수자들이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널리 보급, 선양하는데 앞장서자 인식이 바뀌더라”고 회고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90년대 이후 안동을 대표하는 전통탈춤으로 급성장한다. 1997년부터 시작된 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공연이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618회 공연에 97만5700명이 관람하는 기록을 세운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상설공연때마다 ‘세상만사를 시원하게 풍자하고 거리낌없는 말과 행동이 관객의 가슴을 파고드는 종합예술’이란 평단의 호평을 받아왔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주축이 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2005년 세계 최고 축제’(IVO 세계총회), ‘2007 문화관광부 최우수 문화관광축제’등 6년 연속 한국 대표 축제라는 명성을 휘날리고 있다.

현순실 기자 giggy@jemin.com

 


 

●인터뷰/임형규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장
“세계 속 전통 탈춤으로 거듭나겠다”

   
 
  ▲ 임형규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장  
 
“하회탈은 안동 해학의 백미입니다. 인간형상을 가장 많이 닮은 국보급 얼굴이죠”

임형규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장의 하회탈 자랑이 끊이질 않았다.

그는 이상호·김춘택과 함께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창립회원으로서 1928년을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잊혀져버린 하회별신굿을 50년만에 복원, 자칫 영원히 사장되어버릴 위기에 있던 하회탈과 탈춤을 온전히 전승하는 데 초석을 놓은 사람이다.

“당시 반대가 만만치 않았어요.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지역에서 웬 광대놀음이냐는 식으로 전통 탈춤을 천대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렇지만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해학과 풍자, 드라마를 두루 갖춘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깨닫고 복원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임 회장은 “당시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면서 “197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광부장관상을 수상하면서 전국으로 알려지게 됐고 이후 무형문화재의 창조적 계승과 전통 탈놀이의 대중화를 배경으로 문화상품화에 적극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는 현재 임 회장을 포함, 인간문화재 3명, 전수조교 4명, 이수자 17명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보존회 차원의 회원이 30명, 주부탈춤 4개 단체 등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임 회장은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전통 탈춤으로 전승하는 한편 다른 장르와 연대해 현대적 창작탈춤으로 거듭날 계획”이라면서 “세계 속의 전통탈춤으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