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속문화의 재발견(상)] <12> 에필로그
제주문화유산 ‘구슬 서말’ 꿰지 못하는 현실 아쉬워
이제 종착역이다. 지난 5월부터 기획해온 '제주민속문화의 재발견'은 많은 숙제를 남겼다. 돌하르방, 제주초가 등 제주민속문화 이야깃거리는 제주의 1만8000 신만큼이나 무궁무진했다. 제주민속문화들을 그러나 '구슬 서말 엮듯이' 제대로 꿰지 못했다. 그 동안 만났던 제주의 문화유산들이 눈에 밟힌다. 그것들이, 나를, 우리를, 제주를 있게 했다는 것, 때문에 그것들을 어떻게 갈고 닦아줄 것인가 곱씹어봤다. 이 즈음, 유익한 전시가 마련되고 있다. 돌하르방 관련 전시다. 제주돌문화공원이 돌하르방의 가치에 대한 재조명 차원에서 열고 있는 것, 제주민속문화의 재발견은 계속된다.
△제주 대표 상징, 돌하르방을 조명하다 
3. 대정성 돌하르방.1914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제주돌문화공원이 24일부터 내년 2월10일까지 마련하는 '제주의 수문장 돌하르방'기획전. 이번 기획전은 제주 돌하르방을 세상에 바르게 알리고, 돌하르방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기획전에는 돌하르방의 제작 시기부터, 명칭, 기원, 분포와 기능, 돌하르방을 만든 돌의 특징 , 제주·정의·대정 등 제주 삼읍성 돌하르방의 특징까지 관객들이 알기 쉽게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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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지천 근처의 돌하르방. 1930년대, 무라야마 지준 촬영. | ||
이번 기획전은 특히 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에게 즐거운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자 전시기간 삼읍성 돌하르방 탁본 및 고무인 찍기 체험행사와 함께 '제주성 돌하르방을 찾아서' 주제로 문화답사 행사도 갖는다.
특히 문화답사는 옛 제주성 성문의 흔적을 찾아보고 성문 앞을 지켰던, 수문장인 돌하르방의 자취를 그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한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획전은 조선시대 제주 삼읍성의 수문장이자 수호신인 돌하르방의 위상을 재조명하는데 뜻을 뒀다.
전시를 기획한 김정선씨(37·제주돌문화공원 학예사)는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부각된 돌하르방이 현세대에게 어떤 모습과 의미로 남아 있으며,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인지 모색해보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옛 돌하르방 사진 '눈길'
이번 기획전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이 돌하르방의 옛 사진들이다.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14컷의 돌하르방 사진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옛 사진은 돌하르방이 세워졌던 소재는 물론, 이전된 상황, 돌하르방의 당시 가치 등을 짐작해볼 수 있다. 1914년 일본이 식민지 기초자료로 쓰기 위해 토지측량을 실시할 표본지구로 제주도를 선정하면서 제주의 모습을 기록사진으로 남긴 것(사진 3)을 보자.
돌하르방 머리 너머로 어렴풋이 성벽의 일부가 확인되고 있다. 돌하르방이 서 있는 모습으로 볼 때 다른 두 성(城)의 돌하르방 배치와는 일정부분 차이가 있다. 제주돌문화공원 학예사 김정선·안웅산씨의 해석대로 '돌하르방의 기능은 무시된 채, 어떤 이가 한자리에서 모아놓은 듯'한 인상이다. 현재 좌측의 2기는 추사전시관 정문에, 우측 1기는 남문지로 이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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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삼성혈 앞 돌하르방. 1930년대, 무라야마 지준 촬영. | ||
△돌하르방의 미학·민속학 자료집 제작
제주돌문화공원의 기획은 전시에만 머물지 않았다. 돌하르방의 미적, 민속학적, 사회적 가치 등 주제의 논문 5편을 엮은 자료집도 제작했다. 민속학자 현용준씨(전 제주대학교 교수)의 '제주석상 우석목(돌하르방)에 관한 고찰'은 오래된 기고(「제주도」제8호. 1963)임에도 불구, 제주 특유의 문화재라는 측면을 살핀 점, 돌하르방의 보전, 원위치 복원을 주장한 점 등 지금도 그 뜻은 빛 바래지 않았다.
미술평론가 김유정씨의 '제주인의 미의식이 녹아든 돌하르방의 미학' 주제 기고 역시 자연미, 해학미, 고졸미, 숭고미 측면에서 돌하르방 미학을 조명하고 있다.
또 외지인들이 돌하르방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글에 따르면 외지인들의 시선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김씨가 "외지 학자들의 견해는 식민지 시대 제주를 찾은 일본인이라는 한계가 있어 뵌다"는 언급처럼, 외국인으로서 제주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시각이 곳곳에 배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글은 돌하르방처럼 제주문화유산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중요한 것인지 돌아보는 계기를 준다.
아울러 제주읍성에 소재돼 있던 돌하르방이 뿔뿔이 흩어진 사연, 제주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돌하르방을 파내어 간 사연, 일부 돌하르방은 공공기관들의 무관심으로 폐기물 취급되는 사연 등 우리 시대 제주문화유산들이 그 족적(足跡)을 잃는 추세가 안타깝다.
현순실 기자 giggy@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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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주대학교 입구 돌하르방. 1970년. 제주돌문화공원 소장. | ||
5. 정의성 남문밖 돌하르방. 1970년대, 홍정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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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관덕정 앞 돌하르방. 1950년대 후반, 제주시 소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