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주강현의 제주바다 이야기] <1>이어도 , 영원한 이상향이여!
![]() | ||
1.
아득한 바다에는 오로지 수평선 뿐이다. 먼 바다에서는 새조차 좀처럼 날지 않는다. 창공을 나르는 새가 가까워졌음은 육지나 섬이 가깝게 있다는 결정적 증거다. 망망대해를 거쳐온 이들이 모처럼의 안식처를 얻는 섬은 분명 ‘생명의 땅’이다. 그러나 ‘생명의 땅’이기는 해도 모든 섬이 풍족하고 윤택한 것은 아니다. 대체로 섬 주변은 날카로운 파도와의 오랜 싸움 끝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파도, 바람, 식량난, 식수, 표류, 도망, 무역, 침략 등등 몇가지 단어들은 섬을 표상하는 중요한 말들이다.
섬은 분명히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그러나 육지의 탐학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게 ‘파라다이스’가 섬에서 형성될수 밖에 없다. 때로는 산림으로 도망가서 무리를 이루고 군도를 이룬 집단이 존재하지만, 숲 역시 육지의 일부분일 뿐이다. 섬은 무언가 다르다. 가까운 섬은 분명히 육지의 연장성으로 딸려있고, 도서민의 삶 역시 육지에 복속되기 마련이지만 섬의 실체가 바다 위에 존재함은 엄연한 사실이다. 걸어서 불과 1분거리에 놓인 지근거리도 분명히 섬일 뿐이다. 누구든 썰물이 아니고서야 가까운 섬조차 걸어서 갈수는 없다. ‘어떤 섬도 걸어서 갈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섬의 존재이유는 육지와 다르다.
누구나 바다로,섬으로 떠나고 싶어하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라거나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며칠이라고 쉬고 싶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생명의 원형질로 되돌아가고 싶은 소망을 세속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머나먼 섬에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만같다. 왜 섬은 우리들을 부르는 것일까.
![]() | ||
| ▲ 이어도 종합 해양과학기지. 제민일보 자료사진 | ||
2
문화적 원형질로 볼 때, 섬의 탄생 자체가 신화적이다. 신화적이라 함은 섬을 매개로 무수한 은유, 끝없는 해석을 가능케한다. 신화는 그야말로 신화이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의 탄생이 바다라는 ‘미궁의 자궁’을 통해서 가능해다면, 섬은 그 ‘미궁의 자궁’에서 조건지워진 숙명의 땅이기도
서양인들은 끊임없이 미지의 섬인 아틀란티스를 믿어왔다. 이상향인 아틀란티스란 섬이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으로 짐작되어 플라톤 이래 수많은 철학자들의 탐구 대상이었다. 아틀란티스를 찾는 수많은 모험가들이 생겨났으며, 아예 ‘아틀란티스학(學)까지 탄생하였다.
우리의 제주민중들도 나름의 아틀란티스를 갖고있으니 남쪽 나라 어딘가에 있다는 이어도가 그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접어들면 그들 이상향적인 섬은 하나의 분명한 대망체계로 등장하고 있었다. 양대전란을 겪으면서 민중들의 현실적인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 공황도 심각한 지경이었다. 조선후기 민중들은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간단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온갖 저항운동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 대표격으로 이상향을 찾아나서는 노력을 꼽을수 있을 것이다. 민란의 기도나 민란에서 확인되는 정진인의 해도로부터의 영입문제가 그것이다. 이미 숙종 연간의 갑술환국 당시에도 서인측에서는 해도의 정진인을 영입할 때에 그들의 노비를 동원한다고 하였 다.
우리는 두 가지의 이어도를 상정할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신화 속의 이어도’, 다른 하나는 ‘과학 속의 이어도’이다. 이름은 같되, 역할이 다르고 취할 바도 다르다.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쁜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신화와 과학이 이처럼 절묘하게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 해양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3
먼저, 신화 속의 이어도를 찾아가보자. 우리들은 이어도라 하는데 제주도 사람들 일부는 ‘이여도’라고 ‘여’를 강조하기도 한다. 암초를 뜻하는 여(礖)에서 이여도가 나왔다는 주장이리라. 그 이어도는 제주도에만 있는 섬이 아니다. 처처불불(處處佛佛)처럼 곳곳에서 이어도를 만날 수 있다. 이 말은 이어도는 ‘세상에는 없는 곳’이라는 뜻도 된다. 장자(莊子)는 끝없이 광막하고 확 트인 세계를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라 일컬었으니, 이는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를 말함이다. 굳이 서양식으로 번역한다면 유토피아가 맞을런가, 이어도가 그런 곳이다.
육지로 떠난 출가 ?녀들이 배를 저으면서 부르던 노래도 ‘이여도싸나’였고, 모슬포에서 마라도로 가면서 부르던 노래도 ‘이여도싸나’였다. 일본으로 진출한 ?녀들도 그 노래를 불렀으니 곳곳이 이어도였던 셈이다. 생활 속에서는 이어도를 노래해도 막상 이어도를 만난 사람은 어쩜 이 세상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곳이 피안(彼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녀들에게 깊은 바다는 늘 무서운 곳이며 저승길일수도 있으니 이어도의 문은 저승으로 가는 길목이다. 그러나 이어도는 수중보배답게 영원한 이상향의 섬이기도 하다.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꿈에 취하고 싶은 사람들은 메트로폴리스의 뒷골목 허름한 술집, 그도 아니면 영화관에 앉아서라도 꿈을 꾼다. 자본의 시대는 민중의 이상향마저도 오로지 자본적 상품으로 환치시킬 뿐이다. ‘혁명’은 꿈속에서도 불가능하고, ‘개혁’은 구두선으로 되뇔 뿐이다. 삶은 늘 현실에 차압당한다. 그래도 이상향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모진 현실을 벗어나 어딘가 ‘지상낙원’이 있을 것만 같다. 옛날에도 그랬다. 가령 보이지 않는 섬 따위에 이상향이 있을 것만 같다. 누구나 ‘그 섬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그 섬에 가본 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 섬은 산자는 갈수 없는 곳이다. 산자가 설령 이어도를 다녀온다해도 그는 살아서는 돌아오지 못한다. 만질수 없는 금단의 열매, 살아서는 문을 열지 않는 금단의 섬, 그곳이 이어도였으니 ‘천 년의 이상향’이다.
4
이제, 또 하나의 이어도를 찾아가야 할 차례다. 신화와 과학이 만나서 새로운 이어도를 탄생시켰다. ‘전설의 섬 이어도에 우뚝 선 첨단 해양과학기지’란 설명이 붙은 한국해양연구원(KORDI)의 이어도 종합 해양과학기지(Ieodo Ocean Research Station)가 그 곳이다. 신화는 현실일 수도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신화 속의 이어도를 과학기지와 착각하지 말라는 주장은 인문학적으로는 충분히 동의되는 바 있으나 오늘의 국제적 해양질서,즉 영토분쟁의 예상치까지 고려한다면 한가로운 주장일수도 있다.
솟구친 봉우리는 작은 면적이지만 해저지형은 남북 500여미터,동서 750여미터,넓이 27.5평방미터에 달한다. 망망대해에 이만한 넓이의 해산이 수중에 솟구쳐있다. 망망대해에서 수심 40미터는 사실 얕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무려 1,220톤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 기둥을 박았다. 수심 40미터 해상에 15층 높이, 4백 평 규모의 기지가 들어섰다. 기지에는 연구원 여덟 명이 2주간 상주할 수 있다. 당연히 선박 접안시설과 헬리콥터 이착륙장, 등대시설, 통신 및 관측시설, 실험실과 회의실도 마련되었다. 해양·기상관측 장비 44종 108점이 설치되어 가히 종합 연구센터의 면모를 갖추었다.
배타적 경제수역(EEZ) 확보에 안감힘을 쏟고있는 해양패권시대에 일본정보는 최남단 산호초 오키노도리시마를 섬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이다. 중국과 예상되는 분규가 이어도에서 벌어질수도 있다. 그런점에서 이어도는 우리에게 매우 각별하고도 소중한 곳이다. 독도가 동방전략의 화점(花點)이라면 남방전략의 화점은 마라도가 아니라 이어도이기 때문이다.
5
이어도,삼봉도,홍의도도 모두 없는 섬일수 있다. 그러나 민중들은 그 섬의 진실을 믿었다. 여름만되면 섬에 가고싶어하고, 왠지 그 섬들에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같다는 착각, 미지의 섬을 찾아나서는 심리 속에는 전세계 인류가 공통적으로 간직해온 ‘아틀랜티스’적인 그 무엇이 잠복해있기 때문이다.
이제 섬은 육지로 떠난 사람들 덕분에 텅빈 곳이 되고 말았다. 강진 바닷가에서 18년 귀양살이를 한 정다산은 경세유표에서 ‘해도경영론’을 부르짖었으니,섬들을 잘 챙기면 보물들이 수풀처럼 바다에서 일어나리라고 하였다. 그의 화두는 21세기에도 여전하다. 21세기의 새로운 섬의 이상향은 무엇일까.
●주강현은
![]() | ||
제주대초빙교수, 해양문화재단 부설 해양문화연구소장으로 있으며
‘관해기’‘돌살- 신이 내린 황금그물’‘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등
수십권의 책을 펴냈다.
일산 정발산의 연구소에서 저작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한달에 두 번씩 제주대학으로 강의를 내려오고 있다.
오랫동안 제주를 연구해왔으며
그의 글에는 늘 제주도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