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위작사건'에 비춰진 위험 사회의 전형적인 행태
한국미술품 감정협회 「물고기와 아이」 가짜라고 결론
|
|
|
|
|
| ||
|
| 「매화」 이중섭 미술관 소장 | |
미공개작 '전시준비위원회'와 '전시기획단'
2005년 '이중섭 위작사건'은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가짜 이중섭 작품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2005년 4월 22일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이중섭 박수근 미공개작 전시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킨 한국고서화협회 회장 김용수씨가 SBS에 접근하여 SBS와 전시계약 기본원칙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낸 것은 2004년 11월 3일이었다고 한다.
전시기획서에는 이중섭 그림 400점과 박수근 그림 200점을 2005년 11월말부터 2006년 2월까지 서울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키로 돼 있었다고 한다. 그림값은 서울옥션 경매가로 따져보았을 때 600~1000억원 규모였다.
당시 전시기획단은 이 작품들을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 작품과 과학적으로 비교분석해 봄으로써 작품의 진위여부를 판별하기로 논의했다. 또 이중섭 유족의 협력을 얻으면 작품의 신뢰 면에서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10명의 전시기획단과 김용수가 일본을 방문하여 이중섭 유족에게 이 그림들을 보여준 것은 2004년 12월 5일이었다. 이때 마사꼬는 "남편 그림이 아니다"라고 했으나 이태성은 "아버지 그림이 맞다"고 했다. 당시 김용수는 전시기획단을 통해 이태성에게 이중섭 그림 몇 점을 기증하고 왔다.
이태성은 12월말 한국을 찾아왔다. 전시기획단은 이태성에게 김용수 소장품 400점을 보여주었다. 이때 이태성은 "아버지 작품이 맞다. 그림들이 궁금해서 아버지를 만나는 기분으로 한국에 왔다"고 했다. 김용수는 2005년 1월에도 기획단과 함께 일본에 가서 기획단을 통해 20~30점의 작품을 유족에게 기증하고 왔다.
서울옥션과 한국미술품감정협회
2005년 2월에는 가나아트센터 대표 이호재 씨가 일본에 가서 유족으로부터 이중섭 그림 8점을 구입해가지고 와서는 그것을 그가 대표로 있는 서울옥션 경매에 내놓았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점인 「물고기와 아이」를 비공식적으로 구입하기로 한 사람이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 감정을 의뢰했고, 감정협회는 3차에 걸쳐 이를 감정한 결과 '가짜'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서울옥션은 '유족이 발급한 감정서'를 첨부하여 감정협회의 감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태성을 초청하여 3월 22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이태성은 "어머니가 50년 동안 소장해온 작품이다. 위작이라고 말하는 감정협회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언론을 통해) 감정적인 발언을 했다.
그래서 감정협회는 4월 12일 '이중섭 작품 진위 공개 세미나'를 열어, 어째서 가짜인지, 위작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태성은 이 세미나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을 사전에 받고도 불참했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이 발족시킨 이중섭예술문화진흥회 주최의 '간담회'를 4월 22일 서울 평창동 한백문화재단 세미나실에서 열었다.
![]() | ||
| 월간 '문학예술' 에 실린 이중섭 삽화. 1953년 | ||
간담회에서의 진술 엇갈려
이 간담회에서 이태성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2004년 말 동경에서 SBS와 만났을 때 그림을 가져온 사람은 있었으나 받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감정협회 최명윤 씨가 이태성에게 "이호재 대표는 자신이 유족 측 집에 가서 마사코 씨 방에 걸린 그림을 떼어왔다고 했는데 당시 「물고기와 아이」가 표구되어 있었느냐"고 묻자 이태성은 "걸려는 있었지만 표구는 되어있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호재 대표가 표구를 하자고 했는데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호재는 "그런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최명윤이 "이호재 대표는 이중섭 화백이 진부조에서 물감을 사다가 일본에서 직접 그렸다고 했는데, 이 말 역시 이호재에게 한 것이냐"고 물었다. 이태성은 "이 사장님이 오해한 것 같다"면서 "아버지는 1주일동안 재료만 샀고,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호재는 "난 이태성 씨에게서 듣고 전달한 것뿐입니다"라고 또 서로 일치하지 않는 말을 했다.
위험 사회의 전형적인 행태
그 후 이태성은 한국미술품감정협회를 (명예훼손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감정협회 감정위원인 최석태 씨는 고소당한 사람 입장에서 검찰조사를 받은 뒤 4월 28일 인터넷 사이트 컬쳐뉴스에 '일반인이 보아도 가짜'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최석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화상(가나아트센터 대표 이호재)이 지배주주로 있는 국내 최대의 경매회사 '서울옥션'은 물론이고, 언론이 조금만 제대로 된 역할을 했다면 애초에 없었을 사건"이라고 했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사건처럼 위험 사회의 전형적인 행태가 이번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최소한의 진지함과 분별력도 없는 사람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다"면서 "언론을 비롯한 사회적 걸음장치가 이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또 "이런 왜곡된 카르텔이 깨어지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사태는 얼마든지 재발한다. 제대로 된 학예직과 화상들이 우리 미술판의 주류가 되지 않고, 얼치기들이 주류가 되어있는 지금의 상태로는 이런 일이 더욱 빈발할 것"이라고 했다.
'귀띔' 정도해서 될 일인가?
그런데 그는 컬쳐뉴스에 올린 '일반인이 보아도 가짜'라는 글에서 이호재가 2003년 서귀포시에 기증한 이중섭 작품 8점 중 3점도 가짜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2003년 당시 기증자 쪽과 기증을 받는 서귀포시 관계자 다수에게 가짜임을 귀띔했다고 했는데, 정말로 가짜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귀띔' 정도 해서야 되겠는가.
필자는 '이중섭거주지 복원'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는 '서귀포시가 다시 복원할 의사가 있다면 거론하지 않겠다'며 '옛 거주지 그림'이 들어간 서류를 작성하여 사전에 서귀포시에 넘겨줬는데도 담당공무원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귀띔 정도해가지고서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필자가 개인적으로 알아보니 당시 담당자는 최석태로부터 그런 귀띔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이중섭미술관을 관리 운영하는 문화공보실의 새 실장(2004년 7월 부임)은 2005년 당시 최석태씨가 누구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반응이 감 잡기 힘들었지만, 이중섭과 관련하여 불미한 일이 없어야 좋겠다는 생각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서 고쳐야할 것이었으므로 더 이상의 반응은 자제했다"라고도 적혀있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할 일이 아닌가.
「매화」는 세필로 그린 삽화 (인쇄 원고)
어떻든 이중섭미술관 소장품이 위작이라는 글을 최석태 씨가 2005년 4월 인터넷에 올렸기 때문에 이중섭미술관을 찾아온 관람객들 중에는 "그래도 1종 전문미술관인데 전시작품의 수준이 이게 뭔가. 관람료가 아깝다"라며 혹독하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관람료를 물어내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연재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석태 씨가 위작이라고 말한 세 작품 중 두 작품은 이미 해설하였고, 「매화」만 남겨놓았는데 남겨놓은 이유는 이 그림이 필자가 지금 쓰고 있는 이중섭의 '부산시대'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중섭이 일본에 가서 아내를 만나고 온 뒤, 1953년 9월, 아내에게 쓴 편지를 보면(지난 41회 참조) 엄동설한에 꽃을 피우는 이 절개와 지조의 상징 매화에다가 아내를 비유할 만도 하다. 「매화」는 삽화 원고이다. 16절 얇은 모조지에다 먹으로 그린 것이다.
종이 한가운데에다 매화를 그렸는데 동양화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인쇄소에서 교정할 때 쓰는 '세필' 즉 털이 짧고 끝이 가는 붓으로 그렸다. 왜 이런 붓으로 그렸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든 제대로 된 재료나 도구로써 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털이 짧고 끝이 가는 붓이기 때문에 싸인을 할 때는 눕혀서 쓸 수밖에 없다. 세워서 쓰면 너무 가늘어서 잘 보이지가 않는다. 참고로 위 오른쪽 삽화는 그림과 싸인을 펜으로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