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시각적 눈'으로 그려낸'시적인 그림'

'통영앞바다' 혼색·배색의 묘 한껏 살려

2008-08-06     제민일보

   
 
 

'통영앞바다' 41.6×28.9㎝. 종이에 유채.

 
 

일본 니혼미술학교 공예도안과를 졸업한 유강렬(劉康烈)은 1953년 당시 통영의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 교육 책임자로 있었다. (이 양성소는 경상남도가 통영의 자개공예를 부흥시키기 위해 2년제 과정으로 설립한 것) 유강렬은 이중섭에게 이 양성소 공예품에 대한 품평도 부탁할 겸해서 통영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통영으로 이주해간 이중섭은 평온을 되찾아 후일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 매김할 '흰 소' '황소' '달과 까마귀' '부부' 등을 그리게 된다.

이중섭과 같은 방을 썼던 이성운(당시 양성소 학생)의 증언에 의하면 이중섭은 합판 쪼가리 같은 것을 팔레트로 삼아 거기에 물감도 몇 가지 짜놓지 않았다고 한다. 팔레트 위의 물감을 털이 다 빠진 막붓으로 대충 버무려가지고는 그냥 쓱쓱 그렸다는 것이다. 이중섭의 그러한 제작방식이 위 두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통영 앞바다'는 바닷물의 청색과 나무의 진한 갈색이 강한 대비를 보이는 그림이다.

이는 코발트블루와 번트시에나에 옐로나 블랙 또는 화이트를 적당히 섞어가면서 색상을 벌려놓고 명도와 채도의 대비까지 한꺼번에 보아나간 것으로서 혼색과 배색의 묘를 한껏 살린 그림이다. 흔히 이중섭을 '선의 화가'라고 하면서 색에 대해서는 무딘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 그림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다. 근경(近景)에 그려진 기와지붕은 형태의 '변형'까지 보여준다. 마치 공중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본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아무리 소실점이 높다고 해도, 사실 이렇게까지 보이지는 않는 법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는 그 오른쪽 초가지붕은 투시각도가 정상이다.

그런데도 기와지붕의 형태를 이렇게까지 변형시킨 것은 뭔가 심상치 않은 점이다. 필자 혼자만의 추측이지만, 어쩌면 이 그림의 주제가 이 기와집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길' 41.4×28.8㎝. 종이에 유채

 
 
'길'은 하늘과 바다의 색깔이 일치하지 않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사실 바닷물의 색깔은 하늘의 색깔에 따라 결정되는 법인데, 여기서는 그러한 법칙이 무시되고 있다. 사실화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필자는 '서귀포의 환상'을 해설할 때, 푸른 바다에 노란 하늘은 신화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색이라고 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통영 앞바다'의 기와지붕 형태가 어색해보이지 않는 것처럼, 슬픈 갈색 하늘이 (평범한 파란 하늘보다)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색깔이기 때문이다. 이중섭에게는 면적비례를 보는 '시각적인 눈'과 색깔을 보는 '심리적인 눈'이 둘 다 갖춰져 있어서 이러한 '시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성운은 이중섭이 그림을 그리는 중간에도 가끔씩 뒤로 물러나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자기 그림을 감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중섭은 "그림을 열심히 그리자. 그림만 열심히 그리면 산다"는 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고 한다. (위 두 그림은 8월 1일부터 9월 20일까지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