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의 참화에서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시대로
<기획> [국제평화 르네상스 제주] 2-1 다크 투어리즘·일본편 ⑤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 | ||
| ▲ 원자폭탄이히로시마에투하되는장면 | ||
| 평화박물관의 천국 일본. 전국적으로 40개가 넘는다는 일본의 평화박물관들은 원폭의 공습에 대한 기억으로 출발한다. 미군의 대대적인 공습과 일본의 피해를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평화교육과 평화운동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오사카, 오키나와 등 5일간의 일본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제주4·3과 역사교훈여행지로서 제주의 가능성을 5회에 걸쳐 모색한다. 이번 일본편에서는 조성윤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의 안내로, 시조시인 고춘옥씨와 동행했다. '한국사회와 다크 투어리즘'편은 일본편 다음으로 넘긴다. |
#히로시마, 흰 벽에 남은 검은 비의 흔적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는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를 입었다. 도시는 거의 모두 파괴되고 14만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많은 피폭자들은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 있는 한글판 팸플릿은 친절하게 피폭당시 히로시마의 참상을 소개하고 있다. 약 2시간 30분간의 기념관 여행에서 첫 느낌은 기념관을 가득 매운 사람들, 원폭의 기억은 참관객들의 국적에 따라 쏠리고 몰림의 양태가 달라 보였다는 데 있다.
외국인들이 주로 세계사에서의 일본원폭의 실태를 다룬 전시물에 시선이 머문다면, 일본인 참관객들은 원폭당시의 실제 상황과 일본국민들의 피해, 이후 국가재건에 관한 전시물에 오랫동안 관심을 쏟는다.
때로 너무 참혹한 광경을 마주해야 한다. 원자폭탄이 내뿜은 방사선에 의해 온 몸에 장애를 입은 소년, 원폭의 충격으로 눈알이 날아간 여성은 정면으로 보는 것마저 공포다. 인간이 인간에게 던진 최악의 참상을 빤히 마주봐야 하는 참혹함과 참담함은 속으로 곱씹어야 한다. 괴기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들, 소녀들이 불타 폐허가 되버린 민가 옆에서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덜덜 떨며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소름이 온 몸에 번진다.
원폭으로 인해 주위 돌계단이 열성에 의해 하얗게 변색되버린 건물, 불타버린 여학생의 학생복, 원폭피해자의 상황을 보여주는 인형 등 이곳에 전시된 유품의 대부분은 가족들이 그 안부를 걱정해 초토화된 거리를 찾아 헤매다 발견한 것들이다.
'흰벽에 남은 검은비의 흔적' 은 또다른 충격을 준다. '검은비'의 흔적은 원폭이 폭발한 후 20∼30분 후부터 히로시마시 북서부지역 일대에 내린 결과물이다. 이 일대에 검은비가 내려 생긴 흰벽에 남은 비의 흔적. 이것은 바로 핵분열에 의해 생긴 방사능을 포함한 물질이 다량으로 섞여있어 원격지까지 피해가 미쳤음을 생생히 드러냈다.
![]() | ||
| ▲ 8시15분에서 정지된 시계 | ||
'8시15분에 정지된 시계' 앞에 섰다.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세계최초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된다. 핵무기라고 하는 대량파괴무기를 손에 넣게 됨에 따라, 이때부터 시계는 핵시대에 돌입한다. 그런 끔직한 사연을 지닌 시계 앞에서 기자 역시 셔터를 눌러대면서, 여기저기서 찰칵찰칵 터지는 스트로브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모형물 앞에 초등학생 1명이 어머니와 함께 원폭에 깨어진 돌조형물을 만진다. 어머니가 학생에게 뭔가 열심히 설명한다.
#시민생활과 밀착한 역사교육장
의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 위로 원폭당시 상황이 영상을 통해 소개됐다. 조성윤 교수가 한마디 거든다. "이곳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이 개관된지 40∼50년은 됐는데, 첨단기기가 도입된 것을 보니 정기적으로 전시물과 기계들이 꾸준히 교체되고 있네요. 각종 모형물과 전시물만해도 참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유기적인 전시기획력은 전시공간이 입체감보다 평면감에 치우쳐 있는 제주4·3평화공원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 | ||
| ▲ '흰벽에 남은 검은비의 흔적' | ||
밖에 연결된 평화기념공원을 찾았다. 이곳에는 국립 히로시마 원폭사몰자추도평화기념관과 원폭사망자위령비, 한국인인원폭희생자위령비, 원폭돔 등이 세워져 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과 모토야스 강에 인접해있는 원폭돔. 1945년 8월 6일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피해로 반파되고 남아있는 전쟁유적이다. 원래 히로시마 시의 상업전시관인 이곳은 1996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 | ||
| ▲ 원폭돔 | ||
평화기념공원, 원폭돔이 있는 아이오이 다리 일대에는 시민들이 위령비를 찾아 머물며 추념하고, 산책하고, 강아지와 자전거를 끌고 와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시민생활권과 동떨어져 4·3주간 같은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찾을 일이 없는 제주4·3평화공원과는 크게 비교된다.
시민의 일상 속에 들어온 과거의 역사가 어떻게 후대에 기억되는지,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과 평화기념공원은 침묵 속에서도 집요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밤이 되니, 원폭돔 주변 모토야스강으로 유람선이 미끄러져 강을 따라 흐른다. 강이 속삭인다. "기억하는 건 만나는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