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은 내 글쓰기의 뗄래야 뗄 수 없는 악연의 벗"
[허영선이 만난 사람] 소설가 현기영
소설가 현기영은 1941년 제주시 출생. 오현고,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교사생활을 거쳤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 문단에 나왔다. 1978년 강요된 망각이었던 제주4·3을 테마로 쓴 소설 「순이삼촌」을 출간, 강렬한 파장을 일으킨 이래,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등을 펴냈다. 장편소설로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 타는 섬」,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젊은 대지를 위하여」, 「바다와 술잔」 등. 제5회 신동엽창작기금(1986)과 제5회 만해문학상(1990), 제2회 오영수문학상(1994), 제32회 한국일보문학상(1999) 등을 받았다.
'악연의 벗'이라 했다. 그렇게 아무리 벗어나려해도 걸려들었던 4·3을. 소름이 흘렀던가. 20대의 내가 그 소설을 몰래 이불속에서 읽으면서. 그것을 쓴 작가가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도 모른채. 70년대 끝자락 그 소설 「순이삼촌」은 4·3의 상징어였다. '순이삼촌'은 어둠 저 편에서 잠들어있던 4·3의 뼈들을 깨워냈고, 억울한 죽음들을 불러내고 있었다. 소설 한편이 진실의 힘이 되고, 제주인들의 위안이 되었다. 시대의 작가 현기영. 올해는 그의 「순이삼촌」탄생 30년이었다. 이 의미깊은 해에 작가는 또한번 상처를 입었다.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에 그의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등재된 것. 지난 정권때 정부기관의 문화수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지금 장편 「누란」의 갈무리에 들어가고 있다. 이 해가 가기전 반드시 그를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수염을 허한 외모는 흡사 헤밍웨이를 연상케한다, 온화하나 명징한 눈빛, 여전하다. 맵찬 서울거리에서 만난 그는 어떤 억압에서 해방된 자처럼 보인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자 같다. 글쓴다는 것은 자유이며 해방이다. 모든 형식과 격식에서 벗어난다. 스스로 노인으로의 변신을 간구하는 사람같다고 느낀 것은 그가 '노인이 되니까 노인이 보인다'고 얘기할 때였다. 흡사 정신의 전환점을 찍는 사람처럼. 물론 우리도 모두 노인이 될테니까. 대화는 '노인'으로 시작됐다.
"노령에 이르면 내가 수염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다른 자기가 개척한 삶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 노년이란 것이 비참하고 젊음 앞에 늘 종속당하고 멸시당하죠. 늙었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니까 늙음이 위엄이니 품격이니 이런 것을 조금만이라도 회복하려면 노인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고 봐요. 또 사회에서 그런 역할을 해야하는 거예요."
그에게 노인은 홀로서기를 해야하는데 쉽지 않은 존재. 당장 급하게 할 일이 없는 사람, 시달림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더구나 제주도 노인들은 노인의 트라우마를 겪는 존재가 아닌가. 그 노인들, 인생의 절정기에서 4·3으로 좌절당하면서 용케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런 정신외상, 이런 것이 다시 생활 속에서 잊어버린 것이 살아나는 것이죠. 그러면 자식이 알아줘? 자식은 밥 벌어 먹기 때문에 노인을 섬기고 노인의 존재를 의식하기 어렵죠." 허나 그는 노인의 삶을 통해서 '가난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런 삶도 있었구나' 오히려 거기에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 두권짜리 분량 4·3 장편 하나는 써야죠
섬세하고 예민하던 유년, 그에게 4·3은 억압이었다. 화광이 충천하던 4·3을 겪은 참혹한 인연. 그것은 실어증을 앓을 정도로, 더듬이가 될 정도로, 제줏말로 '중치멕히는'거였다. 일종의 트라우마로서의 억압이랄까. 그런 내면의 억압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4·3문학은.
말을 잘했으면 아마 정치를 했을 것이라는 현기영.(실제로는 말씀을 잘한다) "학교에서 열린 만담대회에 지원하기도 해봤죠. 아이들이 웃긴 웃었는데, 내가 하도 말을 잘 못하니까. 아, 이거 안되겠구나해서 글을 선택 한거지. 중학교 3학년때부터." 강박관념에 의해서 속박당하는, 안하면 욕먹을 것 같은. 엎드렸던 원혼들마저 용기를 얻은 4·3소설 「순이삼촌」과 현기영은 한 몸이다. 그런데도 '순이삼촌=현기영'으로서의 부담감은 없을까.
"4·3은 나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이면서 나의 삶에 어쩔 수 없는, 일생을 같이할 악연의 벗이면서 그래요. 자꾸 멀리하려해도 끝내 안떨어지는. 사실 글쓰는 사람은 인간의 감성하고 관계하는 것이잖아요. 인간의 감성이나 이성에 호소해서 즐겁게 해드리고 위무하기도 하고, 계몽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억압으로서의 4·3을 터뜨려야 속이 후련하고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중단편 3편만 쓰고 그만둬야지 한 것이 지금까지 왔지요."
그의 글쓰기는 말하자면, 우리시대의 용감하고 존엄한 분투였다. 그는 「순이삼촌」도 그렇고 현대사적으로 「변방에 우짖는 새」등 중요한 근세사를 직접 취재하며 썼다. 그러나 학문적인 연구들은 그리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장편? "4·3은 한꺼번에 껴안을 수 없어요. 총체적 소설이라는게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분량에서 두권짜리는 한편 써야하지 않을까해요. 접근방법은 스토리텔링 스타일이 아니라 문학적인 글이겠지." 의외였다. 4·3소설 그만 쓴다할 줄 알았다. 숙명처럼 어둠을 접수한 늙은 나무처럼, 그의 문학적 운명이 된 땅, 화산회토의 제주섬을 모태로한 작가라는 사실을 잊을 뻔 했다.
#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된 「지상에 숟가락 하나」
밥벌이로 소설가의 길을 걸을 수는 없을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전업작가로 나서는 사람이 부럽다. "교사가 비교적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하지만 괴로운 구속이 되는 거거든. 주말작가, 방학작가라는 이름이." 전업작가가 된 지금은? "쓴 분량이 똑같애요. 학교 선생하면서 쓴 분량이나 전업작가가 돼서 쓴 분량이나. 술, 친구를 좋아해서." 술자리도 민주화운동이 되던 80년대, 그는 후배들이 찾는 영순위 선배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그렇게 설레고, 그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 문학생애의 반고비를 돌아오는 동안. 4·3을 벗어나고 싶어 썼던 글이었다. 현기영 문학은 서늘하도록 아름다운 제주대자연의 음영까지 품격있게 살려냈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단박에 눈물 콧물 범벅으로 읽는 이들의 앞을 막았다. 베스트셀러! 45만부가 팔렸다. 그런데, 그 소설이 잠자다 일어나보니 불온도서라니. 국민들이 신뢰할만한 부처라는 국방부가 선정한. 몹시 더운 어느날이었고, 때문에 혹시 오보가 아니었을까 했다는 현기영. 이 시대, 어느 평론가는 역사와 자연이 적절하게 배합된 그의 문학을 두고 당대 그처럼 빼어난 단편을 넘어설 작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했던 그 작가였다.
"처음엔 방망이로, 맥주병으로 뒷통수 맞은 것처럼 멍해서 이게 도대체,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은 것 같았죠. 「순이삼촌」때문에 고초를 당했는데 다시 불온도서 작가라? 지난 20년동안 민주화과정을 착실히 거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읽었는데 역시 불온한 작가구만. 편견의 눈으로 나를 보겠다 싶은 거지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 이것은 책을 읽은 사람들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었다.
"자, 배는 이미 항구를 떠나서 수평선을 가물가물 가는데 돌아오라 역사의 뱃길을 잘 가는 배를 돌아와라 하고 역사의 팽작업을 한다니!" 그는 작가를 지지하는 언론들과 열두번의 인터뷰에서 그것의 부당함을 전했다.
# 「누란」의 막바지…"제주도, 자연 파괴도 살육"
그는 지금 소설 「누란」의 막바지에 와 있다. 「누란」은 6세기에 타클라마칸쪽에 있었던 나라. 실크로드의 한 도시국가였으나 멸망했다. 관념적인 소설일 수 있다. "사막의 이동에 의해서 모래속에 묻혀버리는 누란처럼 사라질 도시. 이런 기분 되게 나쁜 소설을 쓰는 중이지요." 그는 이 딱딱한 관념에 재미를 입히며 쓴다. 주인공 캐릭터들이 서로 부딪혀가면서 나누는 이야기들 속에서.
"당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도시의 삶은 내가 판단하기에는 진정한 의미의 삶이 아니다. 허구적 삶이다는 거죠. 지금 미국발 금융대란으로 크게 경제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 왔어요. 고스톱 판이 정상적인 삶이 아닌 것처럼, 도시의 삶이 정상적이 아니다는 얘기죠. 그러면 노름꾼이 망하듯이 이 도시도 망한다라고 나는 보는거죠. 여기서 제주도가 희망이겠죠."그는 제주도에서 자치도란 이름 자체가 중앙에 종속되지 않고 나름대로 자치를 한다면 옛날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지방자치 단체장들이 임기 중에 뭔가 하나 공적을 세우겠다고 하지말고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아달라'고 하고 싶다. 세계가 좋아하는 제주도는 손상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제주도. 그 몸을 다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 "살육이란 것은 인명을 파괴하는 것만 살육이 아니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도 살육입주. 노자가 답하기를 무위, 아무것도 하지말라. 무사. 아무것도 일없이. 무위로서 정치하라했어요"
# 4·3,평화교육 운동으로 승화돼야
올해 그는 말많던 4·3평화재단 이사장에 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상징적 존재'로 떠올랐었다. 껄끄럽지만 물었다. "재단은 여야 어느쪽에 의해서 휘둘림을 당하고 그러면 안되고 4·3은 자존스러워야해요. 3만의 죽음을 생각한다면 그 죽음이 얼마나 존엄한 것인지, 어떤 정권의 이념, 이익에 의해서 이렇게 4·3위원회 문제도 막 이렇게 나가면 안되지요. 우선 제주도 주민들부터 시작해 세계인들이 음미해야 한다는거죠. 4·3운동은 평화교육 운동으로 승화해야합니다." 재단은 세계를 향해서 평화를 외치는 기지로 어떻게 새겨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쓰고 싶은 글을 반도 못쓰고 노인이 된다"는 우리 시대의 거목 현기영. 그가 새해에 바라는 희망 하나. "이 정권이 우선 경제에 힘쓰고, 역사의 문제랄지 이념이랄지 이런 것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연구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지요. 우리도 밝은 희망을 가지고 투쟁하면서도 온화한 목소리로 집권세력을 향해서 설득도 해보자. 여기만은 평화의 이념을 남겨둬라. 그러면 너무 지나치게 드라이브 걸었던 것들을 풀지 않을까요."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