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진정한 '기념'은 올바른 증언과 추모가 거침없이 이뤄지는 날"
국제평화 르네상스 2. 한국사회와 다크 투어리즘 ⑬전쟁기념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1가 8번지에 위치한 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은 일제하에서는 일본 조선군 사령부가 위치했으며, 해방 이후부터 1988년 8월까지 대전의 계룡산으로 이전하기까지 육군본부로 사용됐던 서울의 용산동 1가에 건립됐다. 1988년6월 노태우 대통령의 순시에서 국방부가 '전쟁기념관 건립계획'을 보고한 것이 전쟁기념관 건립의 시발점이었다. 그로부터 약 2년후인 1990년 9월에 착공식을 갖고, 1994년 6월에 개관했다. 전쟁기념관은 호국자료의 수집, 보존 및 전시, 전쟁의 교훈과 호국정신을 배우는 산 교육장, 선열들이 호국위훈 추모가 목적이다. |
전쟁기념관은 성벽의 방어용 해자(垓字)를 상징하는 연못을 지나면 원형 광장이 나오고, 이를 통과해 본관의 중앙홀로 진입하도록 돼 있다.
이 원형 광장의 주위에 한국전쟁과 월남전 등에서 사망한 군인과 경찰 16만여명의 명비를 기록한 회랑(回廊)이 배치해 선열에 의해 보호받고 있음을 상징하고, 그 신성성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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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전쟁 상징조형물. | ||
기념관은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대형장비실, 방산장비전시실 등 총 6개의 실내 전시실과 옥외 전시실로 구분되며, 총 9500여점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여기에는 삼국시대로부터 현대까지의 각종 호국전쟁 자료와 위국자들의 공훈 등이 복제품·기록화·영상 등의 전시기법에 따라 입체적으로 전시돼 있다.
특히 6·25전쟁실은 6·25전쟁 발발의 배경과 북한의 남침, 유엔군의 반격, 중공군의 개입, 휴전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무기, 장비, 실증자료, UN실, 피난생활실, 전장체험실, 종합영상실 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사건 중심의 서사구조의 형태를 보여준다.
옥외전시관에는 B-52전략폭격기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항공기, 미사일, 장갑차, 전차, 각종화포, 함포, 레이다 등 150여점이 전시돼 있다. 또 장갑차, 항공기 등의 내부로 들어가 직접 앉아도 보고 만져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옥외전시관에는 '형제의 상' '평화의 시계탑' '6·25전쟁 조형물' 등 상징조형물들이 있다.
한 소녀가 안고 있는 전쟁의 시계가 6·25전쟁 발발과 함께 멈춰버린 시간을 상징하고 있는 '평화의 시계탑' 은 원폭의 공습을 기억하게 하는 일본 평화박물관들의 '멈춰버린 시계'와 유사하다.
#'공원 속' 기념관
전쟁기념관의 한해 예산은 약 80억원. 이중 정부가 26억원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전쟁기념관이 자체조달하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자립도는 70%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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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 어린이들을 소재로 한 조각작품. | ||
이에 대해 이경은 전쟁기념관 홍보담당은 "전쟁기념관은 수익사업은 기념관입장료, 시설임대수입, 뮤지엄웨딩홀 운영비 등이 포함된다"면서 "특히 연간 관람객수가 100만명(학생 50%, 외국인 10%, 일반인 등 40%)에 이르는 등 기념관입장수익만 보더라도 전쟁기념관의 자립도는 여타 국립박물관에 비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전쟁기념관은 이외에 어린이·청소년 연극공연,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 태권도 체험교실, 현직 교사대상 문화교실 운영, 나라사랑 그림그리기 대회, 평화사랑 글짓기 공모 등 문화행사도 다채롭게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연극도 전쟁기념관 내에 320석 규모의 전용극장에서 마련되고 있다. 특히 참전 21개국의 국가원수, 정치인, 관료, 참전용사, 언론인 등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반드시 관람하는 명소 전쟁기념관일 정도로 수많은 인사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작년 10월 기념관을 둘러싸고 있던 철제담장 250m를 철거해 기념관 전경을개방, '공원 속의 전쟁기념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전쟁을 기념해?
전쟁기념관은 "가로공원화 사업을 통해 국민 곁으로 더욱 다가서는 기념관으로 거듭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핵폭탄의 참혹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평화기념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군국주의를 강화시키는 추세다.
전쟁의 숱한 희생자들을 위무하는 추모관이 아닌, 기념해야 한다는 뜻이 암암리에 도사리고 있는 전쟁기념관의 명칭부터 해소되지 않은 불편함은 잔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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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인 학생들이 '장갑차'전시물 내부를 돌아보고 있다. | ||
전쟁기념관의 한 관계자는 전쟁기념관이 전쟁을 호도하는 기념관이 아니라, 전쟁의 참혹상과 피폐상을 후세대에 올바르게 알리고 비참한 전쟁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 전쟁의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한다는 차원에서 기념관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시물을 보는 관람객은 전쟁의 교훈보다 전쟁 그 자체가 '기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지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전쟁기념관의 전시물들은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보다, 민간인학살과 전쟁이 가져다 준 비참한 역사의 흔적보다, 부국강병과 엄청난 군비의 투자를 통한 전쟁 능력의 향상을 지향(정호기 저 「한국의 역사기념시설」)하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지향점을 보여준 또다른 사례가 옥외전시장 분수대를 장식하고 있는 조형물이다. 원형면에 조각된, 전쟁기념관을 관람하는 국내외 어린이들을 직접 촬영, 조각(신한철 작. 2003)했다는 이 작품은 장갑차를 뒷배경으로 하고 있다. 뭔가. 천진난만한 지구의 어린이들의 평화를 가공할 무기, 전쟁으로 지키겠다는 것인가. 조형물을 보는 순간 섬뜩했다.
사회학자 정호기의 언급은 전쟁기념관의 존재를 또다시 곱씹게 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진정한 '기념'은 한국전쟁에서 발생한 학살관련 증언과 조사 그리고 추모가 아무런 거침없이 이뤄지는 날부터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