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수난사에 무지한 사람들을 향한 칼바람 "역사의 진실을 알라"

국제평화 르네상스 2. 한국사회와 다크 투어리즘 제주편 <16>알뜨르비행장 일대

2009-03-30     현순실 기자
   
제주의 봄길에 나섰다. 하모해수욕장에서 무릉리까지 제주올레 11코스다. 이 길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길이다. 근대사화 현대사가 녹아있는 올레다. 길은 외줄기지만 그 길은 생채기로 아로새겨진 제주 역사지도다. 가도 가도 끝없을 듯 아픔의 길. 길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제주올레의 아름다움을 엿보러 왔지만, 수난사로 얼룩진 제주땅에 치유와 평화의 기운을 염원하고자 했다. 섯알오름과 백조일존묘, 비행기격납고 등을 지나는 4시간의 도보여행이었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뺨을 때렸다. 비극의 땅에서 유채, 감자 등 뭇 생명은 여지없이 나고 자랐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길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해수욕장. 제주올레 11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제주올레 11코스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길이다. 근대사와 현대사가 녹아있는 올레다.

   
알뜨르 비행장 가는 길
   

제국주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의 공군 병력을 집결시켰던 야욕의 현장인 알뜨르 비행장을 비롯해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길이다.

하모해수욕장에서 출발한 여행객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섯알오름이다. 섯알오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전국적으로 보도 연맹원을 학살할 때, 모슬포를 중심으로 한 제주도 서부지역의 예비 검속자 210명을 이곳에서 학살했다.

이곳은 2001년 2월, 유족들이 희생자 시신과 유물들을 재발굴하면서 그 전에 일부 메워졌던 현장을 모두 파헤쳐 놓아 큰 구덩이가 형성돼 있다. 현장 입구에는 사건 개요를 설명해주는 안내간판이 설치돼 있다.

   
섯알오름 희쟁자 부분잔해가 묻혀있는 곳
   

다음 코스가 알뜨르 비행장이다. 대륙침략을 위해 항공기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일제는 제주가 중국과 일본의 중간 거점이라는 점에 착안, 1926년부터 대대적인 비행장 건설 공사에 들어갔다. 일제는 중일전쟁 후 오무라의 해군 항공기지를 이곳 알뜨르 비행장으로 옮기고 규모를 132만 ㎡으로 확장했다. 지금은 일제의 잔혹상을 보여주는 '역사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제가 구축했던 비행기 격납고가 '염탐꾼'처럼 낮은 포복으로 위치해 있는 곳을 지나자 백조일손묘지가 나왔다. 이곳은 1950년대 모슬포 경찰서 관내에 거주하던 순박한 농민, 마을유지, 교육자, 공무원, 청년단체장, 학생 등을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경의 자의적 판단에 근거, 구금됐던 곳이자 무고한 양민이 사법적 절차없이 정부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한 132위의 원혼이 영면한 곳이기도 하다.

알뜨르비행장 일대는 이밖에도 정약용의 조카딸이자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아내로서 '바람의 땅'대정읍에 유배돼 살다가 생을 마감한 정난주 마리아의 묘와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는 모슬봉 등 제주역사를 증언하는 현장이 산재해 있다.

#평화가 쓰나미처럼 오길

   
일제가 구축한  비행기 격납고를 여행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비극의 땅에도 어김없이 꽃피는 계절이 왔다. 유채가 유난히 노랬고, 감자는 강한 바람에도 허공을 향해 어린잎을 흔들었다. 송악산과 산방산이 손에 잡힐 듯 아름다운 이곳이 예전에는 역사의 칼바람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섯알오름에서 만난 바람도 예사롭지 않았다. 뺨을 두드리는 바람은 그 곳의 역사에 무지한 이들을 향해 역사의 진실을 알라며 호통을 치는 듯했다. 동행했던 하자센터 사회적기업준비모임 아시아공정여행팀 관계자 11명과 아리랑 TV 기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익히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라고만 알고 있던 몇 명 관계자는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평화의 섬이란 말이 무색하다는 표정 일변도였다. 여행객들은 백조일손묘를 보며 마음 아파했고, 민간인의 무고한 학살에 대한 내용을 보고는 우리와 후손에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거나 물려주지 말기를 간절히 바랐다.

대학시절 4·3을 특집으로 다루려고 제주에 왔다가 제주사람들로부터 제주수난사를 들으며 크게 분개했다는 한 여행객은 이제 사람들이 분노와 아픔과 슬픔을 유쾌하게 풀어내면 어떨까 주문도 했다.

4시간여의 도보여행은 때로 힘겹고 눈물겨웠다. 인생의 고통은 쓰나미처럼 온다고 했던가. 비극의 땅에 평화가 쓰나미처럼 오길 여행객들은 염원했다.

   
"다시는 아픈 역사 깃들지 말았으면 해요"

인터뷰/ 권혁란 하자센터 아시아공정여행팀


"여행은 강입니다. 일부러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죠. 자연스런 여행의 길에서 여행지의 역사와 사람이 녹아들 수 있게 해야죠. 길에서 배우는 역사야말로 살아있는 교육 아닐까요"

공정여행의 화두로  다크 투어리즘(역사교훈여행)을 답사코스로 정하게 됐다는 권혁란씨(하자센터 아시아공정여행팀)는 제주올레 11코스를 여행한 소감을 이렇게 남겼다.

권씨는 제주올레를 걷기 전엔 제주에 그렇게 큰 비극이 있었는지 사실 몰랐다고 했다. 소설「순이삼촌」으로 간접적으로 알았을 뿐이라고 했다.

권씨는 "섯알오름에서 100여명이 포승줄에 묶여 죽었다는 얘기와, 백조일손묘의 잔혹한 역사를 접하니 도보여행이 정말  '다크'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무고한 주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가 역사적 굴곡으로 점철된 땅이자 비극의 땅인 만큼, 평화라는 화두역시 소중히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제주가 아픔의 땅이기에 평화가 더욱 간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시는 이 아름다운 제주섬에 어두운 역사가 깃들지 말길 간절히 바라며, 평화를 사랑하는 올레꾼들이 제주길을 걷길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