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웃과 하나되서 ‘우리’를 알려요
하나로국제공연단
결혼이주여성과 남편·지역주민 주축 올 초 창단 ‘제2회 세계인의 날’ 첫 무대 
▲ 결혼이주여성과 지역주민이 함께 만든 하나로 국제공연단이 풍물연습을 하고 있다.
서툴지만 ‘흥’통해 한국과 제주 익혀…오는 11월부터 어르신 위한 공연 계획
계단을 하나 오를 때마다 귀에 익숙한 가락이 커진다. 가만히 살피니 딱 맞아떨어지는 가락은 아니다. 하지만 ‘더엉더엉덕 쿵덕’하는 소리는 이상스레 가슴에 감긴다.
조금 빠른 입장단 뒤를 장구 장단이 띄엄띄엄 따라간다.
살짝 문틈으로 엿본 연습실에는 다양한 얼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나이도 제각각, 표정도 제각각이다. 결혼으로 제주 사람이 된 외국인 여성의 옆에는 60은 되어 보이는 어머니가 있다. 금방이라도 밭일을 하러 나갈 기세로 작업복을 입은 채의 남편도 자리를 하고 있다.
국제가정문화원은 지난 2007년부터 결혼이주여성과 그 가족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이 함께 하는 풍물·공연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말부터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 우리 나라 전통악기와 마주한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남편과 이웃이 함께 하면서 조금씩 용기를 냈고 ‘흥’을 배웠다.
결혼이주여성만이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변화가 나타났다. 남편들이 나서 공연단을 구성하자는 의견을 모았고, 올초 ‘하나로 국제 공연단’을 창단했다.
15명의 단원 중 남편과 지역주민이 4명이고 필리핀과 베트남 등 결혼이주여성이 주를 이룬다.
강사인 양혁준씨와 지역주민으로 통역에 큰 힘이 되는 고미선씨까지 연습실은 늘 화기애애하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전통악기를 제법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은 보는 이들도 즐겁게 한다.
그냥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힘이 될 터다. 거기에 자기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1시간 여 힘든 전통장단과 씨름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붉게 상기돼 있다. 지난달 제2회 세계인의 날을 기념한 행사에서 첫 공연을 하고 나서는 자신감도 붙었다.
서툰 장단에 잔뜩 긴장을 하기는 했지만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됐다.
고미선씨는 “처음에는 출신나라별로 끼리끼리인 경향이 적잖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조금이라도 실력이 나은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가’를 묻는 등 달라졌다”고 귀띔했다.
강사에게도 “어떻게 하면 우리 고유 박자를 따라갈 수 있는가”를 제일 많이 묻는다.
함께 풍물을 배우는 어르신을 통해 동네 사정도 배우고 살아가는 법도 듣는다. 길에서도 먼저 인사를 건넬 만큼 이곳 사람이 다됐다.
제주댁이 된지 꼬박 3년을 채운 투이씨(23)는 남편 이상호씨(42)와 공연단에 합류했다.
이씨는 “그냥 생활하는 것 외에도 대화할 거리가 하나 더 생겨서 좋다”며 “주변과 친해지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파프리카 농장일을 돕거나 하는 데도 더 열심”이라고 말했다.
공연단은 올 여름 내내 담금질을 하고 11월부터는 지역 경로당 등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내 며느리’라고 잔뜩 자랑할 시부모님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굿거리니 휘모리니 하는 것은 잘 모른다. 이전 익숙했던 가락과는 사뭇 다른 한국의 전통 가락이지만 조금씩 고향 느낌이 난다. “아직 잘 못해요”부끄럽게 웃는 그녀들은 이제 다문화가정을 사회에 알리는 진정한 전도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