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해안의 까만 돌들이라도 그대로 놔둬야 해요"
[허영선이 만난 사람]도시계획·환경계획전문가 이덕희
30년 앞을 내다보는 도시계획을 연구하던 사람이 어느날 거꾸로 걷기 시작했다. 오래된 신문을 뒤져 깨알같은 글자들을 읽어내고, 옛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렇게 뒤지다보니 잘못 알려진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부풀려지고 과장된 것들, 알려져야 할 것들이 숨어 있었다. 1993년부터 한국인들의 하와이 이민사. 물론 철저하게 조사 연구하다보니 소설보다 재밌다. 이덕희. 40년 이상 하와이에 살고 있는 그는 국내에 도시계획 전문가, 이민사연구자로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특히 이 섬, 제주도에 마음을 준다. 친정처럼 오간지는 오래됐고 지인들도 꽤 생겼다. 얼마전 잠시 제주를 찾은 길. 그는 섬속의 섬 마라도와 우도의 변화하는 몸짓에 너무나 놀랐고, 안타깝다했다. 60대의 그는 여전히 밝고, 물음표가 많다.
# 제주사람 하와이 이민 기록 찾아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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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희는 1941년 평양출생. 도시계획, 환경계획 전문가. 이민사연구가.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 1963년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미 버클리대에서 사회학 석사, 미 남가주대에서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도시계획학 석사. 호놀룰루시 도시계획국에 근무했으며, 주지사가 임명하는 자리인 하와이주 기획실에서도 일했다. DHM inc 환경계획연구소의 대표를 지냈고, 2003년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부회장. 무라바야시 장학재단 이사장. 하와이 토카이대 이사장. 100년 전 하와이로 이민 간 한인들의 직업·결혼·교육·종교 등 일상 생활사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하와이 이민 100년,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중앙M&B). 「제주의 도대불」 출간. 월간 애비뉴(Avenue)지의 가장 영향력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500인 중의 한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
이제 증언 채록할 1세는 다 세상을 떴다. 2세는 기억이 다 희미하고. 그래서 남아있는 사람 인터뷰 몇 명 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 그는 1차 자료를 찾는데 애쓰고 있다.
신문 영인본은 반 사이즈여서 그 낱알같은 글씨를 확대경 놓고 다 읽는다. "얼마나 재밌는지 소설보다 재밌어요. 여성사, 여권 신장 주창하지만 100년전 1909년에 조그만 교회에 부인 교육회란 것을 결성해요. 거기서 여자 자신도 교육해야 되고 자녀들도 교육해야 한다는 취지서가 신문 한페이지에 다 나와요. 요새 여성들 다 고개숙여야 해요. 첫 번째가 '평등하다'예요. 만주 독립군에 후원자금 보내는 일 등을 해요. 지금 애국한다고 하지만 그때 조국애는 말을 못해요. 1909년 신문을 보면 모국의 재난 동포들한테 기금을 보내는 기록도 있고, 100년전 우리 여자들 다 했어요. "
그는 늘 스스로 질문한다. 100년전 이민 간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그렇게 소외되었던 이민사의 복원으로 한국 여성사의 한페이지가 보태졌다. 이 연구가 힘들지만 당시 숫자적으로 더 많은 재일동포 여성들의 활동과 비교연구를 하고 싶다.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데 뭘 어떻게 했을까. 그는 요즘 이들의 생활사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금껏 생활사는 전혀 소외됐죠. 생각해보세요. 7000명이 이민을 가서 100년을 지내오면서 그 사람들이 매일 독립운동만 한 것은 아니잖아요."
# 제주도와 20여년 '제주의 도대불' 펴내
아무도 눈을 돌리지 않을 때였다. 섬의 도대를 응시한 것은. 세계의 첫 등대가 로마에 있지만, 이 섬에도 사닥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불을 지폈을 것이다. 분명 현대식 등대 이전에 밤바다를 밝혀주던 빛이 있었다. "섬에 와서 보니까 이 캄캄한 밤에는 예전에는 어떻게 했을까. 밤에 바다로 나가진 않았겠지만 혹시 나갔다가 못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도대를 찾아 돌기 시작했다. 열 여덟 개 찾았다. 그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하고 인터뷰도 했다. 2년 여. 섬을 한바퀴 돌았다. 그렇게해서 1988년 「제주의 도대불」이 나왔다. 섬의 아름다움이 그때 다시 찾아왔다.
허나 그 책 이후 도대의 운명이 달라진 것을 안 때는 4∼5년전이다. 대학의 은사인 사회학자 이효재 선생과 다시 둘러본 그는 철렁했다. "그 도대불이 텔레비전에 여러번 나가니까 중요한 것을 인식해서 복원을 해놨어요. 복원한 사람 군수 이름 쓰고. 그냥 허물어져 가는 모습 그대로 놔둬야 하는데. 두 기가 있는 것은 하나는 사라져버렸더라고. 개발하면서. 그러곤 새것을 만들어요. 오래된 것의 중요성을 몰라요. 그런게 얼마나 많이 이뤄지고 있는가 말이예요. 그렇게 되리라곤 생각을 못했지요."
# 우후죽순 우도의 펜션에 깜짝 놀랐다
지난 4월엔 우도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펜션이란 펜션은 다 허가 해놓고 환경 망가진 것은 말할 것도 없어요. 10년전 우도플랜했지만 그러려고 한 것 아니거든요. 그 곳을 유일하게 자전거의 섬으로 하려 했어요. 동네에서 운영을 하고. 걸어도 오래 안걸리는데. 가족자전거, 둘이서 타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얼마나 좋아요." 또 그때만해도 넙미역을 안 따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팔고 알려야 한다고 했다. 땅콩 한 두사람만 할 땐데 땅콩을 해야한다했다. "2년 후에 갔더니 많이들 재배했어요. 산학에서 도와줘야한다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 이번에 가보니 볶지 않은 땅콩의 경우 그것에 대한 조리과정이 없는데, 그런 것도 넣었으면 해요."
도시계획전문가로 그는 제주도를 20년 다녔다. 그렇다면 이 도시계획 전문가가 본 제주도는 얼마나 변했을까. "외형적으론 많이 변했어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예요. 형편없이 환경을 개발한 것은 부정적인 개발이죠.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순수하다는 것이죠. 이것은 긍정적인 면이고, 옛날 그대로 마음이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은 부정적이죠. 말은 국제환데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행정이 특히 그래요." 그는 제주의 발전계획에 참여한 사람은 아니고, 이렇게 해선 안된다 제시한 사람일 뿐이란다.
"가령 경관도 경관이지만 해안선을 건드려서는 안된다했어요. 또 완전히 모래언덕 사구를 건드리면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느냐. 개발하지 말라는 것은 아닌데 개발할 때 어떻게해야 그걸 건드리지 않고 할 수 있는지 제시를 해왔지 여기를, 이 건물을 지어라 한 사람이 아니예요."
그가 예를 든다. 표선민속촌이 사구지역인데 그곳을 개발한 것이 사례란 것. "바람부는 날 가보면 길거리에 모래가 자꾸 쌓여요. 그걸 건드렸기 때문이야. 함덕도 마찬가지죠. 건드리면 안되는 거야. 해안가에 자라는 풀을 심어줘야해요. 우리는 벌써 자꾸 덮어야 하고. 텐트같은 것 치고. 답답한 것은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그걸 알았어. 그래서 안 건드렸어요. 구름을 보고 바람을 보면 폭풍이 몰아치겠다 알았어요. 요새는 그것을 관찰하는 태도도 능력도 없어졌어요. 기상청만 바라보는데 만날 틀려요."
# 해안도로, 길을 넓힐 때의 악영향 얘기안해
그는 제주 해안도로도 이해할 수 없다. 하와이는 그렇게 가까이 있는 해안도로는 없단다. "호놀룰루가 있는 섬은 해안도로를 완전히 못 돌아요. 해안도로가 없어서 못 도는 게 아니야. 한쪽 끝에 보존해야 되는 풀이 자라고 있어요. 그 잘난 보존식물 하나 때문에 못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그것때문에 새가 날아오고 그래서.
"미국의 경우도 처음엔 늪지대를 많이 없앴다. 나중에 중요한 것을 안 후 그게 판명이 되면 새로운 늪지대를 옆에 만들어야한다. 돈 몇 푼 벌금 내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똑같은 늪지대가 형성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 주변에 그만한 늪지대를 복원시켜주어야 된다는 것. 허나 그게 잘 안된다.
"제주도는 분명 하와이완 다른 바다색을 갖고 있지요. 해안선은 남아있는 것이 없어. 돌덩어리만 남아 있어요. 그 까만 돌들, 암석들이 그나마 남아있는데 그것은 보존해야돼요. 그 풍경이 좋잖아요. 바다가 있고. 그것을 10m도 안남기고 다 집을 지어놓으니까 바라볼 수도 없지. 가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되는거죠. 그나마도 오름이란 것은 남아있는데 중간 중간에 펜션이 서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안보이죠."
제주도에 62층 고층빌딩? "주변을 녹지로 놔둔다는 보장이 있으면 가능하지요. 경관평가는 깐깐하게 해야해요. 나가서 제주도 오름보고 그러는게 제주도의 매력인데. 경관을 완전히 망친다면 그건 기본이 아니지요." 그가 보기에 지금 환경영향평가는 따로 놀고 있다. 종합이란 말을 안써도 환경영향은 종합이다. 사회·문화·경관 다 들어가야하는.
"길은 잘 뚫려있어요. 가시적인 것에다 투자를 너무 하는 거지요. 넓은 길이 중요한데도 있지만 산간에는 필요 없어요. 길을 넓힐때는 물이 흘러내리는 것, 땅으로 스며들어가는 속도 전부 계산을 해야해요. 물론 정체가 없어지겠지만 그 악영향도 얘기를 해야해요. 그러면 2차선으로 할 것을 1차선으로 하는 것이 나와요. 또한 그것을 쓸 사람,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하고 얘기를 다 해야해요. 공청회를 해도 정작 사람이 오도록 하는 노력은 안하지요. 외딴데에 주민이 누가 가요? 다 된 다음에 나타나면 서로 갈등이 오고. 계획하고 환경영향이라는게 동시에 일어나야해요. 삶의 방식에 대해 제주사람들이 결정해야하는 거지요."
# 해마다 제주대생에 장학금
제주도를 처음 만난 것은 1960년. 농촌계몽반을 따라서 왔을 때였다. 적극적인 제주도와의 인연은 1985년. 관광개발과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하러 왔을 때였다.
그는 무엇보다 지역 젊은 인재를 키워야한다는 생각이다. 매해 한명씩 제주대 학생들에게 9000불의 등록금을 대주며 하와이에서 1년간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다. 7년째.
도시계획을 하기위해선 미래를 보는 안목 위에 열정과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이덕희. 남의 나라에 간다는 것은 모험이었던 1963년. 시험치르고 미국유학길에 올랐고, 거기서 가족을 일궜고, 하와이에서만 이제 43년. 어려서부터 미국은 아버지 오빠가 나가 있었던 탓에 먼 나라가 아니었다는 그녀. 하루의 일과를 그는 인터넷 검색부터 시작한다. 도자기 빚는 것이 취미인 그는 한국에 오면 꼭 영화관을 찾는다. 아직도 탐구하는 눈빛, 시들지 않는 열정이 빛난다.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