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강인한 제주여인 진면목
나사렛국제병원 이순자 병원장
고학 끝 의대 진학… 인천에서 제주인 긍지 선봬
재경 4.3진상규명 함께 해와… '제주는 제주답게'발전해야
![]() | ||
| ▲ 의대 진학을 위해 7년간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던 이순자 병원장은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간직, 제주와 관련한 일에는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
연수구에서는 처음 개원한 양방·한방 협진체제 병원이며, 양한방 협진으로서는 국내에서도 몇 안되는 규모에 속한다. 암, 심장질환과 더불어 한국인의 3대 사망률의 하나인 뇌혈관계 전문병원으로 뇌졸중의 예방과 치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개원한 병원답게 트렌드를 반영, 환자 중심의 편의시설과 안락한 환경으로 병원특유의 소독냄새, 병원에 대한 거부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종합건강검진실, 재활치료실, 수중 치료실을 아우르는 최첨단 의료장비는 물론 건강검진에서부터 최대한 동선을 줄이는 등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월13일 개원식은 특별했다.
병원측은 개원식 당시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를 벌여 축하화환 대신 모은 쌀과 축하기금 2000여만원을 지역 내 결식아동 및 어려운 노인에 전달, 사회와 함께 하는 병원임을 인식시켰다.
그리고, 이곳 나사렛국제병원·송도풍한방병원의 병원장은 제주 출신 이순자씨(62)다.
# "늦깎이 여대생 화제"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 여자로서 타향에서 의사가 되고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학비를 벌기 위해 직장생활을 하다 7년만에 의대에 들어갈 수 있었죠"
이 병원장은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한번도 장학금을 놓쳐 본적이 없다. 그러나 대학은 학비 때문에 잠시 뒤로 미뤘다. 언니는 "돈을 벌고 대학을 가면 되지 않느냐"며 공무원 시험을 제안했다.
그렇게 시작된 직장생활이 7년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이래저래 안주할 수도 있겠건만 이 병원장은 "진학에 대해 늘 생각해와서 고민은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공무원 생활이었지만 오히려 이 병원장은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남편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고학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 만난 남편은 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고 회고한다.
남편은 나사레의료재단 이사장이자 한의사로, 이씨와 함께 병원을 꾸려가고 있다. 이씨의 의대 진학 역시 남편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우여곡절 끝 대학 문턱을 밟았으나 늦깎이 여대생의 대학생활은 쉽지 않았다.
이 병원장은 "당시만 해도 (저처럼) 늦게 대학을 들어간 여학생은 없었다"며 "나이 많은 여학생이 들어왔다고 해서 화제가 되서 대학신문사에서 취재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임신과 출산, 학업을 병행하는 일이었다. 당시 적지 않은 나이 탓에 대학생활은 결혼과 동시에 진행됐다.
이 병원장은 "강의가 4시간, 5시간 연속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임신 탓에 입덧은 심하고 헛구역질은 몇시간 동안 참아가며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를 난 이후에도 애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남편이 도움이 컸다"고 회상했다.
#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듯, 드러나지 않는 미덕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이 병원장은 서울에서 제주출신 지식인들이 4·3진상규명을 위해 각종 사업과 행사를 할때마다 남몰래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인품에 대한 주변의 칭찬은 자자하다.
이 병원장은 "어느날 우연히 고희범 전 사장과 연결이 됐다. (4·3진상규명을 위한 일들을) 몰랐었는데 알게 된 만큼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오히려 이렇게 고마운 이들이 있구나 싶었다"며 말을 아꼈다.
그리고 4·3 광풍을 피해간 이들이 많지 않듯이 이씨 역시 4·3 유족이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4·3때 돌아가셨다. 그러나 4·3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금기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입을 꼭 다무셨다. 이 병원장은 나중에서야 본지 '4·3을 말한다'를 통해서야 아버지의 죽음을 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병원장은 "나 또한 4·3 유족"이라며 "적어도 폭도라는 누명은 벗어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나 억울한 일이며, (4·3해결은)유족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라고 말했다.
# "인구는 적지만 힘은 열배 되길"
비록 타향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고향, 제주에 대한 자긍심, 애정은 그 누구 못지 않다.
현재 재경제주여고 총동문회장이기도 이씨는 "후배들이 (우리때와 달리)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란다"며 "학교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도 맺고 싶고, 선배로서 후배들을 위한 사업도 고민중"이라고 밝혔다.
이 병원장은 의사로서 최근 달라진 제주의료환경에 대해서도 크게 기뻐했다.
이 병원장은 "제주지역 병원들의 기술도 좋아지고 제주대병원도 생겨서 의료사각지대에서 벗어난 것 같아 든든하다"며 "다만 최근 쉽고 돈되는 과만 선호하는 의료환경 탓에 지방에서는 외과, 산부인과 등의 의료진 확보가 힘들텐데 그것이 걱정"이라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최근 추진되는 제주도의 의료산업 정책과 관련해서는 "도민 전체의 입장에서 결정하는게 바람직한 것"이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 병원장은 이어 "장기적으로 제주를 찾는 관광객 한사람 한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제주가 됐으면 좋겠다. 제주는 육지의 별볼일 없는 관광지와는 다르다"며 "특히 무조건적인 개발보다는 제주만의 특징을 잘 살려 '제주가 제주답게' 발전했으면 좋겠다. 인구는 비록 100분의 1이지만 힘은 10분의 1이 되는 때가 오길 바란다"는 바람을 밝혔다.
* 이순자 병원장 프로필 *
이순자씨는 애월읍 하귀 1리 출신으로, 하귀초등학교·귀일중학교·제주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 의대·경희대 대학원 의료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현 나사렛 국제병원 병원장, 인천광역시 여의사회 부회장, 재경제주여고 총동문회장, 재경4·3 유족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