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험한 세상 다리되어] 장애인 무료 요금 택시기사 장성심씨

2009-10-09     오경희 기자

   
 
  장애인 무료 스티커.  
 
   
 
  장성심씨. 장씨는 고된 일과 속에서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힘을 얻는다.  
 
 우연히 잡아탄 택시. 겉으로 보기엔 보통의 택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의 택시를 탄 사람들은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택시 앞뒤 좌석에 붙은 스티커 한 장 때문이다.

 '장애인은 무료'. 장성심씨(39·여)의 택시에 붙어있는 스티커 문구다. '장애인 무료'라는 문구에 "진짜냐"며 반문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물론 진짜다. 장씨는 장애인 손님이 타면 거리에 상관없이 요금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주변에서 주제넘게 볼까봐 걱정된다"며 "장애인 손님에게 요금을 받지 않는 것은 그저 내가 하고 싶었던 일 중에 하나 일 뿐,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손사레를 치던 그녀지만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장씨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집안 형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여름엔 식당, 겨울엔 감귤 선과장에서 일을 했고, 20대 초반 일본에 건너가 하루 16시간씩 일을 했다. 그리고 11년 전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택시 운전으로 생업을 이어오던 그녀가 장애인 손님을 무료로 태워주기 시작한 건 지난해 이모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고서부터다.

 1년 전 미국에서 40년 동안 연락 없이 지냈던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씨의 어머니가 보고싶다"는 전화였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라 미국에 갈 엄두가 안 났지만 죽음을 앞둔 이모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 곳에서 장씨는 이모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스쳤다.

 피붙이 하나 없는 곳에서 외로움을 안고 세상을 떠난 이모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음에만 담아뒀던 일들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오자마자 시작한 일이 '영어공부' 그리고 '장애인 택시요금 무료'였다.

 처음 '장애인 요금 무료' 택시를 운영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몇몇은 "감동적"이라며 응원을 보냈지만 다른 몇몇에게는 "지원을 받는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지금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래도 장씨는 '도울 수 있다는 것'에 힘이 난다.

 장씨는 새벽 5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일을 한다. 그중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영어학원에 다니고, 나머지 시간은 택시 운전을 한다. 잠을 자는 시간은 하루 3~4시간이 고작이다.

 그런데도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정말 좋다, 행복하다"는 웃음이 앞선다.

 40을 바라보는 나이.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는 아직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 이제 그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시 미국도 가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전 세계를 여행하며 택시 운전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
 또 장씨는 50~60세 즈음에 "하루 세끼 먹고 살 수 있으면 장애인 요금 무료에서 일반인 무료 택시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택시에 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각박해진 세상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다고.
 가장 큰 바람은 장애인에게 요금을 받지 않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장성심씨는 "마음은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함께 나누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오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