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작가 심산의 제주올레 사랑고백]<7>6코스 쇠소깍-외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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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올레 제6코스는 해안올레와 도심올레가 조화롭게 이어져 있다. | ||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가 첫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모자라는 잠이야 비행기 안에서 깜빡 졸면 그만이다. 제주공항에 내려 샌드위치를 먹으며 콜택시를 부른다. 하도 제주의 이곳 저곳을 쏘다니다 보니 이제 지역별 콜택시 전화번호쯤이야 아예 핸드폰에 입력되어 있다. 오늘의 출발지인 쇠소깍으로 가려면 서귀포 콜택시를 불러야 한다. 달리는 택시안에서 미리 제주에 와 있던 일행들과 접선약속을 잡는다. 이런 식으로 내달리다 보니 서울 마포의 집 현관을 나선지 채 세 시간도 안되어 제주의 쇠소깍에 도착한다.
먼저 도착한 내가 김밥을 챙기고 있을 즈음 다른 일행들이 들이닥친다. 오늘의 동행은 사진작가 김진석과 시나리오작가 김영희 그리고 이태리와인 전문수입사 비노비노의 양영옥 대표다. 김영희와는 수년 전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돈 적이 있는데, 당시 그녀가 착용했던 빨간색 햇볕 가리개 두건이 화제였다. 동네에 접어들 때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어젖히며 "빨간 두건이다!" "여자 쾌걸 조로다!"하고 외쳐댔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녀가 예의 그 두건을 착용하자 길 위에 웃음꽃이 터져 나온다. 올레를 걷다보면 누구라도 동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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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지기오름 정상의 벤치에서 한 여자아이가 단잠을 자고 있다. 저 아래로 보이는 것이 섶섬이다. | ||
제지기오름에서 섶섬을 내려다본다. 굳이 이중섭의 그림을 논하지 않더라도 더 없이 회화적이다. 난해한 추상화도 아니고 근사한 수묵화도 아니다. 그저 천진한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쓱쓱 그려놓은 밑그림 같다. 때로는 어린아이의 눈이 본질을 꿰뚫어보는 법이다. 단잠에 빠져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달콤한 자태 위로 섶섬이 겹쳐지고, 섶섬의 조악하나 단순한 조형미 위로 이중섭이 겹쳐진다. 그렇다면 이중섭은 다시 단잠에 빠진 어린아이와 겹쳐지는가? 그렇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중섭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노는 아이들' 중의 한 명이 지금 저 벤치 위에서 늘어져라 단잠에 빠져있는 셈이다.
쇠소깍에서 외돌개에 이르는 제주올레 제6코스는 어쩔 수 없이 '이중섭의 길'이다. 우리에게 이중섭이란 무엇인가? 미술평론가도 미술사학자도 아닌 나는 그의 작품세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를 좋아했지만 과연 내가 '화가 이중섭'을 좋아했는지는 의문이다. 나는 '고은(高銀)이 쓴 이중섭'을 좋아했다. 고은이 쓴 「이중섭 평전」은 내가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었던 매혹적인 텍스트다. 훤칠한 미남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그의 사진도 오랫동안 내 책상머리를 지켜온 추억의 소품이다.
나는 이중섭에게서 '가난'과 '동심'을 읽는다. 그리고 그의 천진한 동심 따위야 코웃음도 짓지 않고 단숨에 짓밟아버린 저 참혹했던 '시대'를 읽는다. 나는 그를 당대의 희생양으로 본다. 그의 저 유명한 폭음과 거식증 그리고 자학적 유머는 그래서 가슴 아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다만 '비참하게 살다 간 불운한 예술가' 정도로 받아들이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의 삶과 그가 남긴 그림들은 강요된 가난과 짓밟힌 동심 사이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남긴 초라하나 아름다운 은지화(銀紙畵)를 보며 애잔한 미소를 짓게 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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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당시 화가 이중섭이 그의 가족들과 함께 머물렀던 사글셋방이 이중섭미술관 앞마당에 복원돼 있다. 벽에는 그가 남긴 유일한 시가 붓글씨로 쓰여 전시돼 있다. | ||
제주올레 제6코스는 시심(詩心)으로 가득 차 있다. 서귀포 구시가지를 통과할 때는 향수에 젖고 이중섭거주지에서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젖는다. 소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 앞에 서면 그 우렁찬 기상에 창(唱)이라도 한 자락 뽑아내야 할 것만 같다. 코스가 끝나갈 때쯤 만나게 되는 조각공원에는 아예 제주와 바다를 읊은 시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성산포의 시인 이생진의 시도 좋지만,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 조미미의 노랫말도 좋다. "동백꽃 송이처럼 예쁘게 핀 비바리들/콧노래도 흥겨웁게 미역 따고 밀감을 따는/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하지만 내게는 이중섭이 너무 커다란 존재다. 그가 남긴 유일한 시,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암송했던 시, 이중섭거주지의 쪽방에 아직도 붙어있던 그 시가 여전히 긴 여운을 남긴다. 제목은 '소(牛)의 말'이다. "맑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가슴 환히 헤친다." 그렇다, 곤궁한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의 마음까지 곤궁했던 것은 아니다. 제주올레 제6코스를 걸으며 애틋한 향수에 젖어 생각한다. 이 파렴치한 오욕의 시대에도 어딘가에는 분명히 맑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글 심산(작가·심산스쿨 대표)/ 사진 김진석(사진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