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서 전통무용으로 '대학 동아리의 꿈'

<우리문화 지키는 사람들> 16. 신세대 전통춤꾼 '춤을락'

2009-11-22     현순실 기자

   
 
  ▲ ‘춤을락’은 지난 1일 열린 제79회 전국무용예술제에 ‘처용무’로 참가, 한국전통무용부문 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청년들이 일을 냈다. 제주대 탈춤연구회 소속 김현호·김대준·김창수·부혜진 학생이 주인공이다.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 시절, 선배들이 "탈춤연구회에 들라"고 꼬드기는 바람에 무작정 가입했던 동아리였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이들은 수년간 탈춤 활동 끝에 전통무용으로 영역을 넓혀 전문 전통춤꾼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직 '까마득한' 초년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전국무용예술제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둬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들은 '춤을락'이란 전문 전통춤단체명을 갖고 제주 예술계가 '추물락(깜짝 놀랄)' 할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탈춤연구회로 인연을 맺다

김현호·김대준·김창수 학생은 26살 동갑내기다. '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패를 이룬다'는 의미의 '동아리' 만큼 이들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말도 드물 듯하다. 

각각 컴퓨터공학과, 전자과, 식물자원환경전공을 전공하고 있는 이들은 탈춤연구회 동기로 처음 만났다.

탈춤연구회 선배들로부터 배움도 컸다. 우리 민족의 역사이며 얼굴이 탈이며, 탈의 표정 속에는 우리 선조들의 애환과 해학이 담겨 있다는 것 등등. 하지만 탈춤연구회 활동 속에서 탈춤 이론을 공부하는 시간보다 공연무대를 갖는 시간이 그들에겐 더 많았다. 탈춤을 추는 가운데 남녀노소 관객들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읽으면 저절로 신명이 나서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탈놀이에 흠뻑 빠지곤 했다.

이들은 군입대, 휴학을 하면서도 탈춤연구회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6여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각종 공연무대를 뛰어다니면서 돈독한 우정과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동아리 활동이 학과 전공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원래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는데, 잇달아 공연무대를 뛴 이후에는 성격이 많이 활발해졌고, 남 앞에 나서도 떨리지 않아 무척 즐거웠습니다."(김현호)

하지만 대학졸업을 앞둔 이들에겐 취업이란 커다란 고민이 버티고 있었다. 진로 걱정과 탈춤연구회 활동 사이에 갈등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어느 날 희소식이 전해졌다.

제주도문화진흥본부에서 올해 문화예술분야 청년인턴을 모집한다는 정보였다. 이들은 청년인턴사원에 지원했고, 오디션을 거쳐 지금은 제주도립무용단 소속 전문 무용수들과 함께 공연무대를 섭렵하고 있다. 탈춤에서 한국전통무용으로 영역을 넓히는 기회를 맞게 됐다.


△전국무용예술제서 돌풍 일으켜 

올해 6월 제주도립무용단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이들은 장구, 북, 꾕과리 등 탈춤연구회에서 이미 익혀온 악기 외에 '오고' '바라' 등 새 악기와 함께 무용의 기본자세를 익혔다.

 탈춤에 길들여진 '몸'들이 한국전통춤을 익히는 '몸'으로 거듭나야 했기에, 이들은 주 5일 근무 외에도 주말이나 여유분의 시간은 무용 연습에 모두 투자했다. 제주도립무용단과 첫 공연무대를 갖게 된 것은 입사한 지 3개월만이다. "제주자연사박물관에서 도민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설공연이었습니다. 공연프로그램이 '봉산탈춤' '처용무' 이었는데, 열심히 춤을 췄지요. 공연을 보시던 할머니들이 함께 무대로 나와 춤을 추시고, 저희 손도 잡아주셨습니다. 그때 동아리에서 첫 공연했던 추억이 떠올랐어요. 순간 가슴이 벅차고 설레었어요. 코끝이 찡해지더군요."(김대준)

그들의 '가슴 벅참'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 11월 1일 사단법인 중앙무용문화연구원  주최로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79회 전국무용예술제에 출전해 한국전통무용부문 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춤을락'이란 이름을 갖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처용무'로 경연에 참가해 이 같은 영예를 안았다.

숱한 전문 무용수들과 단체들이 경연을 벌인 이번 대회에서 '까마득한' 초년 무용수들이 경연에 참여한 것도 놀랍지만, 우수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둬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짧은 연습기간에도 불구, 이들의 '금상' 수상은 제주도립무용단의 양성옥 안무가, 고춘식 지도위원, 그리고 이흥구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 기능보유자의 지도가 없었다면 결코 일궈낼 수 없는 성적이다.

△"'춤을락'을 기억해주세요"

 제79회 전국무용예술제는 이들에게 '금상'과 더불어 향후 활동에서 큰 화두를 던졌다.

바로 '춤을락'이란 단체명으로 본격적으로 예술활동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김현호·김대준·김창수 학생은 대학 동아리(탈춤연구회) 선·후배들과 주변인들을 찾아다니며 '춤을락'의 취지를 알리고, 동참을 권유하고 있다. 부혜진 학생(21·제주대 사학과)은 '춤을락'의 새로운 멤버다.

이들의 열정적인 권유 탓에  '춤을락'에 대한 주변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자발적인 단원'모집도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김현호 학생은 "오는 12월 31일 자로 청년인턴사업이 마무리되지만, 기회가 된다면 제주 무용발전을 위해 무용가로서 공연무대를 펼치고 싶다"면서 "신세대 춤꾼들이 모여 만든 예술단체인 만큼, 좋은 예술작품으로 사람들을 '추물락(깜짝)' 놀라게 하겠다. '춤을락'을 꼭 기억해달라"며 바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