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울 일 없는 '백수' 되길 꿈꿉니다

[험한세상 다리되어] 김경미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장

2009-12-04     오경희 기자

   
 
  김경미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장  
 
 활짝 웃는 모습이 바라보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들었다.

 김경미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장(44)은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이다.

 김 소장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여성 그리고 '장애'. 어느 누구보다 여성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에 '소장'이 아닌 고민을 공유하는 '친구'로써 상담소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그 역시 장애인(지체장애 1급)이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원래 인권활동가였다. 1984년 고등학교 3학년때 '소철연합단'이라는 봉사단체를 조직, 동갑내기 친구들과 수화공연을 시작했다.

 1989년 결혼을 하면서는 '소철어린이집'을 운영했다. 지체장애 4급인 남편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장애인 부모의 자녀들을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삼촌이 집에 오면 무척 좋아했어요. 삼촌이 오면 몸이 불편한 엄마, 아빠대신 함께 밖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도 알았어요."

 장애인 부모를 둔 자녀들은 집안의 세상이 전부였고, 김 소장은 그런 아이들에게 바깥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4년 동안 소철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김 소장에게 남은 건 1억원이 넘는 빚이었다. 그 빚은 지금도 갚고 있고 앞으로도 갚아야 할 '행복한 빚'이다.

 그런 그도 어느덧 한계에 부딪혔다. 인권운동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는 지인의 권유로 상담을 받았고, 지체장애인협회의 도움으로 2001년 교육을 받고 2003년 개소한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에서 상담원으로 활동했다.

 김 소장은 "'장애'라는 이유로 직업은 꿈도 꿀 수 없었다"며 "상담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받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장애인들은 두 가지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여성과 장애인.

 김 소장은 "한 지적장애 여성이 직업이 있음에도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양육권을 부여받지 못하자 도운일이 있었다"며 "결국 그 여성이 양육권을 인정받았을 때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또한 장애여성들은 홀로서기의 어려움 때문에 가정폭력에 생각보다 많이 노출돼있다고 했다.

 때문에 김 소장은 여성장애인을 장애인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써 여성의 복지가, 여성장애인의 복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김 소장을 가장 속상하게 하는 것은 여성장애인의 어두운 모습만 보여지는 것이다. 무능력한, 보호받아야할, 폭력피해자 등등. 나름의 자기세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장애인에 대한 조명이 없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부부가 아름답게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고, 비장애인과 다를 것 없이 곳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우리 사회는 어두운 면만을 비추려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여성장애인 활동가 리더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어느 분야든 자신만의 소소한 성공을 일궈낸 사람들을 조명하고 싶어서다.

 그는 50이 되면 소장을 그만두고 다시 인권활동가로 일할 생각이다.

 김경미 소장은 "인권이 소멸된 복지를 본다. 주체가 당사자가 돼야 하고 의견이 반영된 복지가 필요하다"며 "도움을 줄 일이 없어서 '백수'가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오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