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제주인의 삶, 후대들이 기억해야 해요"

부부 민속사진가 강만보·임재현씨

2009-12-13     현순실 기자

 '1989년 겨울 오일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 주변에 번듯한 건물은 찾아볼 수 없는 허허벌판. 상인들이 좌판을 벌인 곳마다 사람으로 북적댄다. 물건을 파는 이와 사는 이 사이에 값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눈이 펄펄 날려 이들의 소리와 세상의 소리를 다 집어삼킨듯 하다. 옛 서정이 물씬 풍긴다. 대형마트가 상권을 장악한 지금의 살풍경스런 시장분위기와  대조적이다. 삶의 모든 것이 집약된 곳, 서민들이 애환이 깃든 곳, 남녀노소 신산한 인생사를 읽고 푸는 곳. 오일장의 옛 맛은 그대로 아련하다. 20년이 지난 옛 사진이 새롭게 다가온다. 부부 민속사진가 강만보·임재현씨는 시대의 기록물인 사진에 몰입해 제주인의 사라져가는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일본사진작가 찍은 사진이 운명이 될 줄이야

   
 
  부부 민속사진가 강만보·임재현씨  
 
사라져가는 제주출가해녀들의 진솔한 삶을 기록한 사진집 「동해안의 제주해녀」를 낸 민속사진가 강만보씨(62).

그는 이 사진집을 펴내기 위해 부산에서부터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울릉도를 거쳐 최전방 강원도 고성군 해안에서 물질하는 제주해녀들의 삶의 현장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강씨의 앵글은 제주인의 삶에 맞춰져 있다.

「영 허멍 살아 왔수다」「남해안의 숨비소리 제주해녀」등 그의 사진집들은 "민속사진가로서 제주인의 사라져가는 삶을 먼훗날 후대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한다"는 바람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진과 인연을 맺은 건 그가 7살로, 일본에서 생활하던 시기. 집에서 혼자 놀고 있는 소년을 한 사진작가가 지나가다 사진을 찍고 그것을 소년의 어머니에게 전해주면서부터다.
소년은 그때부터 사진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고, 고교시절에는 "기록적 차원에서 사진을 찍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80년, 한라문화제(현 탐라문화제)때 입선을 거두면서다. 감자 캐는 우도 소녀의 감자분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 사진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그는  제주환경사진연합회, 풍경사진가회, 민속사진연구회 등을 잇달아 창립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당시 그의 가슴을 뛰게 한 인물이 있었다. 앨프레드 스티글리츠(1867~1946). 미국 근대사진의 아버지로 불린 그로부터 회화적인 사진을 반대하고, 카메라 기능에 충실한 핀트에 의한 리얼리즘 묘사를 추구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다른 이들이 '풍경' 사진에 몰입하고 있을 때, 그는 사라져가는 제주사람들의 일상사에 앵글을 고정시켰다. 그는 사진은 예술작품이기 전에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록물이고, 역사이며, 민속자료라고 주장한다.

강씨는 "풍경은 현재에 살고, 민속은 미래에 산다"는 말로 자연과의 대화로 은유되는 풍경사진보다  '인간이 들어가고 시대상을 반영한' 민속 사진이 사람의 가치, 동시대인들이 함께 호흡하는 매력을 훨씬  많이 지녔다고 강조한다.

한편 그의 인생 동반자인 임재현씨(45) 역시 민속사진가다. 지난 2001년부터 가게('만재카메라')를 도맡아 운영하느라 사진작업을 잠시 접고 있는 그녀이지만, 20대 초기에 남성 전용이다시피했던 제주사진작가협회에 들어가 여성 사진작가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임씨는 제주YWCA사진팀과 함께 '88올림픽 기념전'을 개최해 제주도내 사진예술가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그녀가 사진에 매료된 이유는 80년대 당시 여성이 자기 취미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 사진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녀는 새벽 5시의 출사(사진촬영), 제주사진작가협회에 가입하기 위해 제주-경지도 평택을, 그것도 비행기, 버스를 수차례 갈아타면서도 '호된' 교육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두 부부는 부족한 사진예술에 지식을 얻고자 제주관광대학 사진영상과를 함께 졸업했고, 사진인의 저변확대와 창작활동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사진은 예술작품 이전에 기록물"

   
 
  강만보 민속사진작 '1989년 1월 오일장 모습'  
 
이들 부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강만보씨가 애타게 찾았던 초등학교(그는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 일본 오사카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동창생을 일본에서 극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학창시절에 치고 박고 싸웠던 짝꿍이 그는 한없이 그리웠다고 한다. 짝꿍의 이름은 김일성, '만보'란 그의 이름과 함께 사람들의 추억에서 지울래야 지울수 없는 이름이다. 

이 계기로 강씨는 2007년 제주여성들의 삶을 담은 '영 허멍 살아 왔수나' 민속사진전을 친구의 도움과 일본 덕산물산 초대로 일본 오사카 현지에서 개최했고, 당시 아사히·요미우리·마이니치 신문에 잇따라 보도되면서 큰 성공을 거둔다. 이 초대전에는 특히 재일동포들이 대거 참가했고, 전시장은 제주인들의 삶과 지난한 역사를 보며 감동한 인파들이 연일 '눈물바다'를 이뤘다.

한라일보 일본 특파원, 제민일보 코리아뉴스 취재부장이란 명함도 민속사진작가로서 그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강만보씨는 내년에는 '서해안의 제주해녀'를 촬영하고, 일본·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주해녀를 수소문해 카메라에 담고 싶어한다. 그리고 '제주해녀'의 유네스코 등재담론이 왕왕 보도를 타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회가 된다면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제주해녀'민속사진전을 열어보고픈 열망도 있다.

5~10년 이후 '부부사진전'을 계획하고 있는 강만보·임재현씨는 제주 사진작가들에게 '사진 복덕방'으로 유명한 가게(만재카메라)를 운영하면서 사진애호가들에게도 세계 유명작가의 사진작품을 비교교육 시키면서 제주사진문화 부흥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