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으로 희망을 선물

<험한세상 다리되어> 제주보건소 서부보건지소 김재옥 간호사

2010-01-08     오경희 기자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에게 가발을 선물하기 위해 4년간 정성스럽게 기른 머리를 자른 김재옥씨는 앞으로도 머리카락 기증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4년을 기른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나갔다. 긴 머리카락 사이로 미용사의 손이 스칠 때마다 누군가를 위한 희망이 움트고 있었다. 짧아진 머리에 마음 한 켠은 허전하지만 김재옥씨(51)는 행복하다. 그는 그냥 머리카락이 아닌 희망을 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보건소 서부보건지소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재옥씨. 김씨는 지난해 12월 16일 오후 4시 제주시내 한 미용실을 찾았다. 4년동안 길러왔던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서다. 추운 겨울을 넘기고 조금 더 길러도 됐을 머리카락이다. 하지만 새해 희망을 선물하고 싶었기에 그는 서둘러 머리카락을 잘랐다.

 김씨는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길러왔다.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는데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사연이 방송되고 있었어요.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한창 뛰어다닐 나이에 아픈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그는 4년전 성인 남성에게 머리카락을 기증했던 터라 아픈 아이들에게 머리카락을 기증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머리카락을 기증하고 싶다고.

 "4년전 성인 남성에게 머리카락을 기증했을 때는 그냥 기른 머리카락이었어요. 별 다른  생각 없이. 하지만 아픈 아이들에게 선물할 머리카락이라는 생각에 기르는 동안 마음이 뿌듯했어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랄까."

 하지만 오랜 시간 머리카락을 기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자라면 예뻐지고 싶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단발머리, 파마머리 등 머리카락을 기르는 동안 자르고 싶은 생각도 잠시, 이내 아픈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씨는 "저도 여자인데 자르고도 싶었죠. 그래도 아픈 아이들 누군가에게 꼭 선물을 주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정성껏 관리하고 길러왔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마음은 올해 1월초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 한 명에게 전해졌다.

 박철영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제주동우회장(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이사)을 통해 서울 협회로 보내진 이씨의 머리카락은 가발업체인 하이모㈜의 후원으로 아픈 아이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박철영씨에 따르면 머리카락 기증은 흔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가발 하나를 만들려면 제작비용만 보통 150만원이 든다. 아픈 아이들과 부모에게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박씨는 "도내에도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여럿 있다. 애써 기른 머리카락을 기증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에 김재옥씨의 머리카락 기증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김재옥씨는 계속해서 머리카락을 기증하고 싶다.

 김씨는 "머리카락은 수없이 기르고 자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희망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뿌듯하다"며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이 생겼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의 가장 큰 바람은 따로 있다. "지금 내리는 창 밖의 눈처럼 아이들도 훨훨 자유롭게 뛰어다니길 바랍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 머리카락이 전해진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뛰고 싶어요" <글·사진 오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