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 교육으로 제주 옛것의 가치 재발견했으면"
<우리문화 지키는 사람들> 27. 제주전통 목기구 연구가 김동필
"당신에게 취미가 무엇인가라고 물을때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취미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정말 즐길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삶에 있어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남의 취미를 따라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취미 하나쯤 갖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좋은 취미란 때로 삶을 즐겁게 해주고, 어려울 땐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 법. 김동필씨의 경우도 그러했다. 12년째 제주전통 목기구 만들기에 뛰어들고 있는 김동필씨는 '제주 전통문화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과 함께 내 영혼을 살찌우고 더욱 풍요로운 삶을 돕는 취미를 꼭 가져볼 것'을 적극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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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전통 목기구 연구가 김동필씨 | ||
서귀포시 중문동 출신의 제주전통 목기구 연구가 김동필씨(63). 그가 '나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2년전부터.
등산이 취미인 그는 어느날 산 계곡에서 쓰러진 나무들을 발견한다. 먹구슬, 머귀낭, 솔피낭 등 제주 목기구 재료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것들이다. 그
나무들이 버려지듯 빗물에 쓸려와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찰라, 그는 무릎을 쳤다. "그래 이 나무들을 가져다 목기구를 만들자!"
평소 옛것에 관심이 많았고, 관찰력과 기록능력이 출중했던 그는 어릴 적에 마을 어르신들이 만들어 쓴 당그네(멍석 등에 곡류를 넣어 말릴때 고르게 건조시키는 도구)며, 도께(콩, 메밀 등을 장만할 때 끄는 도구), 새치기(띠를 곱게 골라내어 빗질하는 도구) 등 65종에 이르는 전통 목기구들을 기억해냈다.
"제주전통 목기구 만들는 법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요. 제주자연사박물관만 해도 목기구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했어요. 때문에 옛 제주사람들이 썼던 목기구를 찾아내 연구하고 제작하고… 만드는 과정이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목기구를 만들때 마다 마음은 뿌듯했지요. 제주의 옛 문화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역할을 제가 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저 스스로 대견했습어요."
그는 목기구들을 직접 제작하며 모든 과정을 노트에 기록했고, 그 결과물을 「제주전통 목기구 연구서」란 제목을 달아 간직하고 있다. 연구서를 펼치니, 수십가지 제주전통 목기구들이 열병식해 있었다.
"연구서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실패도 많았답니다. 65종류의 목가구 중 지금까지 40여종을 시도했는데요, 못을 전혀 쓰지 않아 오직 나무로 잇대는 작업을 하면서 정신집중을 하지 않아 나무에 결이 나거나 깨어진 적도 부지기수였죠. 하지만 옛 조상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직접 목기구들에 대한 설계도면을 기록하며 새삼 느낀 겁니다. 저는 옛 것을 지키는 정신이 타고난 것 같아요(웃음)."
#생애 첫 전시회…후세 교육으로 전통문화 계승되길
'옛 것을 지키는 정신'의 소유자인 그는 제주어 연구, 초가집 연구, 보존에도 수십년의 경력을 지녔다. 20여년전에는 제주 전역을 돌며 초가집들을 비디오로 촬영했다. 초가집이 사라지기 전에 옛 모습이라도 남기고픈 까닭에서다.
그가 생애 첫 전시회를 열었다. 제주관광공사 주관으로 26일까지 제주웰컴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제주전통 목기구 전시회'가 그렇다. 김씨는 이번 전시회에서 자신이 직접 손으로 제작한 200여점의 제주전통 목기구들을 전시, 현대인에게 제주사람들의 실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제주의 세시풍습 등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수백점의 목기구를 만들기까지 김씨의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제주시 도남동에서 18년째 떡집을 운영해오며 틈틈이 제작한 목기구들이 거실은 물론이고 다락방, 계단에까지 '점령'하고 있다. 이러다간 집안 전체가 '목기구 박물관'이 될 판이다. 목기구 재료 구입도 힘든 과제다.
산에 버려진 나무를 가져오는 것이 벌채로 인정돼 처벌을 받는 현실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후세들에게 전통문화 체험의 장을 만들고 싶은 꿈을 접지 않고 있다. 후세들이 기억해주지 않으면 제주전통문화는 연기와 같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김씨는 "제주지역에 선조들의 생활모습과 미적 감각을 생생히 느끼며 체험할 수 있는 '제주전통 목기구 박물관'이 생겼으면 한다"며 "자재구입이 용이해져 후세들이 옛 것을 창작하면서 제주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시대가 오길 기대해본다"고 바람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