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신용을 바탕으로 이룬 성공신화
한일년 ㈜서원인쇄 대표
고등학교 중퇴 후 아버지 찾아 밀항선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인쇄회사 사장 되겠단 꿈을 키워 20년만에 최고 회사 만들어
주먹은 한사람만 이기지만, 머리로 싸우면 수많은 사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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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년 서원인쇄 대표가 지난 18일 서귀포시 롯데호텔제주에서 열린 제2회 글로벌 제주상공인대회에서 제18회 제주상공대상 특별대상을 시상하고 있다. 사진=강승남 기자 | ||
한일년씨(67·일본)는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롯데호텔제주에서 열린 제2회 글로벌 제주 상공인 대회에서 제주상공대상 최우수해외기업인상(특별대상)을 받았다.
그는 제주시 삼양 출신으로 일본 대판(大阪)에서 ㈜서원인쇄를 설립, 운영하면서 남다른 노력과 근면 성실함으로 재일동포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기업가다.
한씨는 현재 일본에서 서원인쇄를 경영하면서 모범적이고 유능한 한국인 기업가로서 지역사회 봉사에도 적극 참여, 각계의 존경을 받고 있다. 1994년 재일본대한민국민단대판부포시지부의 국제과장을 시작으로 부단장, 감찰위원장, 지단장을 역임해 현재는 상임고문으로서 민단조직 강화와 권익신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고향발전을 위해서도 남다른 관심과 노력으로 고향 후학을 위한 장학사업과 발전기금 기탁 등 제주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정성을 쏟고 있다.
# 일본말과 글을 배우기 위해 
▲ 한일년 대표.
한일년씨는 그가 17세이던 해인 1961년 이버지를 찾기 위해 밀항선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20세 때 일본인이 운영하는 인쇄회사에서 일하면서 인쇄회사 사장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고, 21년 후 비로소 20세 청년의 꿈을 실현시켰다.
한씨가 운영하는 ㈜서원인쇄는 현재 100명이 넘는 직원과 10억엔 이상의 설비를 갖추고 연 매출 22억엔을 올리고 있다. 특히 서원인쇄는 100곳이 넘는 일본 동대판(大阪府) 지역 인쇄회사 가운데 매출이나 규모면에서 2위를 달리고 있다.
한씨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에 올랐을 당시엔 각자 다양한 사연을 갖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목숨을 건 밀항 길에 올랐던 한국 사람들은 돈이 되는 일은 뭐든지 했다. 하지만 20세 청년 한씨는 돈을 많이 주는 곳이 아니라 일본말과 글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가 찾은 곳은 인쇄소였다.
당시 한국 사람들은 플라스틱 공장을 선호했다. 플라스틱 공장은 당시 일당이 500엔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인쇄회사는 고졸 수준 일당은 500엔 가량이었지만, 그 이하는 320엔이었다. 그는 320엔을 선택했다. 또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회사는 '조센진'이란 차별도 받지 않고 돈도 많이 받을 수 있지만, 그는 차별이 심하고 돈도 많이 주지 않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인쇄회사에 들어갔다.
그는 "당시 일본을 움직이는 것은 인쇄라고 생각했다"며 "일본을 움직이는 것은 기록이요, 책이기 때문에 그 기록과 책을 찍어내는 인쇄만이 일본을 움직이는 산업이라고 생각했다"고 입을 열었다.
또 "한국 사람이라고 차별 받는 것보다 일본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 일본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라며 "일본말과 글을 배우고, 일본을 움직이는 책을 찍어내는 인쇄업은 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 동대판에서 최고의 인쇄회사로
인쇄 회사에 들어간 그는 돈을 버는 것 보다 오로지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만 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선 무엇이든 닥치는 데로 해야 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성실히 하다 보니 일본 기술자들도 그에게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인쇄 회사에서 5년여를 보내면서 일본말과 글을 배웠고, 인쇄 기술도 일본 기술자만큼이나 습득했다.
현재 일본 인쇄업은 2만5000개가 넘는 업체가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컴퓨터 등 디지털화로 인해 인쇄업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서원인쇄는 3300㎡가 넘는 부지에 3층 규모의 공장건물, 초현대화된 설비, 자동화를 위해 로봇을 설치하는 등 인쇄업의 불황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수천만엔이 투입된 디자인을 위한 컴퓨터 설비는 일본 인쇄업계에서도 최고라 평가받는다.
일본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미술전람회 포스터, 상품 안내서, 가정에 배달되는 통신판매용 책자 등 서원인쇄는 일본 인쇄업계에선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미술전람회 포스터는 상당한 수준이 요구되는 부가가치가 높은 인쇄물로 알려졌다. 이런 제품을 24시간 자동화된 기계로 생산하고, 로봇이 인쇄된 제품을 정리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한씨의 과감한 시설투자가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한씨는 "일본인 인쇄회사에서 일할 때 나를 보며 '조센진' '조센진'이라 놀리는 저놈들을 꼭 내 밑에서 일을 시키리라 마음먹었다"며 "인쇄회사 사장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지 21년만에 인쇄 회사 사장이 됐다"고 말했다.
또 성공비결에 대해 "첫 번째는 기술이고 다음은 신용이다. 돈은 그 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며 "기술이 뒷받침되고 신용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기술자가 됐다"고 강조했다.
# 배우지 않으면 성공은 없어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밀항선에 올랐던 학생은 이제 성공한 기업가로서 고향 후배들에게 넓은 세상으로 나가 배울 것과 제주도를 위한 상품을 만들 것을 조언했다.
한씨는 "주먹으로 싸우면 한명밖에 이길 수 없지만, 머리로 싸우면 수많은 사람을 이길 수 있다"며 "누구든지 배우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충고했다.
또한 그는 "일본사람들은 한국의 김치를 만들어 팔면서 돈을 벌려고 한다"며 "무심코 지나쳤던 것을 다시 한번 세심하게 살펴보고 제주도에 와야만 사거나 볼 수 있는 제주만의 특별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씨는 "나는 일본에서 일하고 있지만, 당시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다"며 "제주의 젊은이들은 제주도를 떠나 다른 곳 보다 제주도에서 일해주길 바란다"고 소망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한씨는 "제주의 젊은이들은 꿈을 갖고 이것 하다 안되면 다른 것 하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돈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신용을 지켜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