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터', 삶의 풍요와 평화가 있는 미학
[전은자의 제주바다를 건넌 예술가들] 68. 강 광
2010-12-06 제민일보
이 시대 멀어져 가는 평화 위해 아름다운 터 지키는 호랑이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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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광 화백 | ||
예술은 비록 경험적 현실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존의 기반이 현실이고 현실은 실존의 고뇌를 흔들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대면하는 무수한 시선과 사건들은 어떤 것은 기억이 되고, 어떤 것은 의식이 모르게 침잠되었다가 꿈을 통해 환기(喚起)된다. 초현실적인 표상은 현실세계를 이해하는 상상적 기반이 되기도 한다. 이 상상적 기반은 현실세계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이미 경험되었으나 자아가 기억하지 못한 삶의 시간들과 연관이 되어 있다. 따라서 상상력은 의식적으로 건져내지 못한 무의식의 형상들과 관계가 깊다는 점에서 작가에게는 낯설지 않은 형태로 떠오른다.
이런 점에서 초현실적인 요소가 단지 내면의 미학을 드러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외면의 현실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리얼리즘 요소가 되느냐, 아니면 반리얼리즘 요소가 되느냐로 귀결된다. 우리의 개체적인 몸은 현실적 삶에서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리되지만, 몸이라는 지각의 구조물은 다시 그 몸을 통해서만 현실과 관계를 맺는 이중적 형식을 취한다. 이때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들은 얼핏 볼 때 불가해한 형상일지라도 그것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일 뿐, 사실은 자신의 삶이 만들어낸 매우 친근한 형상에 다름 아니다.
강광(姜光, 1940~ )은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1959년 경복고등학교, 196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군에 입대하여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만기 제대하였다. 강광이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내려온 것은 1969년 4월. 1982년 2월 제주를 떠날 때까지 약 13년 동안 오현중·고등학교 미술교사와 1년 정도 제주대학 미술교육과 강사를 지냈다. 제주 거주 시기인 1978년 경희대 미술교육학과 석사 과정을 이수하였다. 제주를 떠난 이후 개인전은 1983년 유경채·강광 2인전을 비롯하여, 1984년 강광 유화작품전 등 2007년까지 12회를 열었다. 그가 제주에 거주할 때의 개인전으로는 강광 유화소품전(소라다방)과 강광 유화전(산호다방전시장)이다. 이 다방전시는 당시 제주도의 현실과 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단체전으로는 1976년 창작미협전을, 관점동인창립전(1977), 오늘의 한국미술(1984, 프랑스),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초대전(2001), 인천문화재단 1주년 특별기획초대전(2005) 등으로 국내외 대형기획전에 초대되었다.
인천미술대전 초대작가, 창작미술협회 회장, 아시아국제미전 한국위원, 인천문화재단 이사로 활동했고, 시립인천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와 부총장을 역임하였다. 민예총인천지회장, 우리겨레 하나 되기 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강화도에서 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그가 인천의 젊은 인사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2010년 12월 7일 인천문화재단이사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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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III, 캔버스에 오일과 아크릴릭, 170×130㎝, 1980~1995. | ||
강광의 작품세계는 편의상 제주시대와 인천시대로 나눌 수 있다. 1969년 4월부터 1982년 2월까지를 제주시대로, 1982년 2월 이후를 인천시대라고 할 수 있다.
강광의 제주시대는 1977년 강광을 주축으로 한 '관점(觀點)'동인의 창립이 의미가 깊다. '관점(view point)'은 새로운 비전, 즉 변화의 의미를 나타낸다. '관점'의 창립은 섬이 지정학적으로 고립되고 정체되기 쉽기 때문에 변화와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79년은 그가 제주도에 내려온 지 10년이 되는 해이자 창작을 시작 한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제주시 산호다방에서 열린 '강광유화전'에서 모두 26점을 선보였다. 이때 제주의 자연을 반영한 서정적인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1980년 서울 청년작가회관에서 열린 '관점미술동인전'에 출품된 강광의 <그림 80-I, II, III> 연작에서는 극도로 단순화된 인물의 둥근 얼굴에는 두 눈만 그려진 형상이다. 사람의 머리에는 까마귀 같은 새가 앉아 있다.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에서 강한 메시지가 느껴진다. 이후 이런 분위기는 강광의 개성으로 돋보이기 시작하였다. 둥근 동산들은 제주 오름의 형상이다. 그는 아름다운 제주에 관해 "동부지역에서 본 오름군들은 마치 신라시대의 고분군 같았다. 4·3을 알기 때문에, 그 아픔이 땅에서도 느껴지는 듯하다. 따라서 아름다운 풍광만으로는 제주를 온전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강광의 제주시대는 일면 청회색의 시대라고 할 수도 있다. 강광은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희미합니다. 뚜렷한 동기 없이 밝은 색이 싫어지대요. 밝은 색을 사용했다가는 여러 번 지우기를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의 그림이 단조로울 정도로 절제된 것은 이미지가 확산되지 않고 집중되도록 형태의 단순화를 꾀한 때문이었다. 1980년부터 등장하는 초생달과 두 눈 만 있는 사람, 낮고 완만한 오름. 이런 형상은 제주의 자연에서 원형적(原形的)인 모티프를 얻었고, <들에서…>의 연작으로 탄생하였다. <들에서…>연작시리즈는 "사회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떠나 일종의 국외자(局外者)의 입장" 이라고 하면서 당시 자신의 작품을 한마디로 매듭짓는다.
1980년은 5·18광주민중항쟁을 겪었다. 예술가들도 동요하였다. 이 시기 강광은 1980년을 기점으로 그림이 달라진다. 80년 이후의 그림들은 내면에서 여과되었지만 사회적인 시각에 한결 다가선 느낌을 받는다. 강광에게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시각을 부여한 것은 광주민중항쟁의 충격이었다. 1980년대 강광의 내면적 의식은 활화산처럼 폭발하면서 은유적으로 사회적인 발언을 하고 있었다.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시대의식은 미학적인 구조를 갖추면서 호소력을 더해 주었다. 그의 작품 <풍경>, <홍수>, <오월의 노래>, <들에서> 등은 당시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를 독창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은유와 상징을 암시의 기법으로 활용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사실적인 어떤 그림보다도 현실의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리얼리티가 내포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강광의 작품세계를 조심스럽게 상징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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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킴이, 캔버스에 오일바와 아크릴릭, 162×130㎝, 2008. | ||
어두운 회색의 제주시대는 인천시대가 되면서 서서히 밝은 색으로 대체된다. 제주라는 땅에서의 회색빛이, 개인적인 고뇌와 시대적인 사건을 만나면서 어두워진 것이라면, 밝은 빛으로 전환하는 인천시대는 강광의 활기찬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의 그림에는 여전히 모노크롬이 지배하고 있지만 색조는 갈색 주조(主調)로 바뀌었다. 주제는 달, 별, 꽃나무, 해, 달, 새, 구름, 비, 남녀, 물고기로 대체되고, 형식은 색면, 드로잉적 표현, 비례, 대칭으로 생명의 메타포를 전한다. 이 시기는 발랄함으로 생명의 기쁨을 전하고 시간의 순환을 강조하며, 아련한 몽환적 분위기가 대기의 기운처럼 화면에 퍼지기도 한다. 우주의 상징과 만물의 생명을 예찬하고 있는 것이다. 도상은 대칭과 반복을 통해 단순미로 나아가고 색채는 과감히 오방색으로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밝음은 당시 사회적인 반영이었다.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점차 남북의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통일의 전망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미학에 관심을 쏟았다.
1990년대가 우주와 자연과 삶의 경이로움을 표현하고 있다면, 2000년대는 1980년대를 다시 떠올리며 더욱 폭넓은 작업 속에서 상징적인 리얼리즘의 세계로 회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아름다운 터>의 연작은 1990년대의 만개한 꽃의 결실로 나타나고, 그 결실은 삶의 텃밭, 곧 아름다운 터가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터는 삶의 풍요와 모순 없는 세상, 웃음이 절로 나는 행복한 마을을 상징한다.
역사의 경험에서 보았듯이 아름다운 터는 그냥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강광이 <비조(飛鳥)>(03), <불꽃놀이>(09) 등에서 보여주듯 아름다운 터에는 아름다움을 위협하는 존재들이 상존하게 된다. 강광은 그에 대비하여 호랑이 부적을 지킴이로 상징화하였다.
요즘 강광의 작품들은 80년대의 암울한 시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는 2004년 김구를 그린 <미완의 초상>에서 자주·평화·통일이라는 과제를 남겨두었다. 이 시대에 멀어져 가는 과제를 위하여 강광은 아름다운 터를 지키는 호랑이로 살고 있다. 예술은 마음에서 일어나서 현실의 실천을 통해 열매를 맺는다.
제주대학교박물관 특별연구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