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을 넘어 육지로, 그리고 대륙으로 간 화가

[전은자의 제주바다를 건넌 예술가들] 69. 한국화가 문봉선

2010-12-13     제민일보

화가로 대성할 수 있는 소중한 인연 중학교 때부터 시작
문인화의 정신세계와 연결시켜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열어


   
 
  문봉선  
 
# 시대는 그림을 만든다

짧은 지면으로 한 예술가의 인생을 조명한다는 것은 취사선택된 라이프 스토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특수사로서 예술가의 생애사는 작품과 관련하여 다루기 때문에 보편적인 역사를 다루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보편사인 경우 이미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거나 편년체로 다루는 방식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예술사인 경우, 양식을 중심으로 한 '인명 없는 예술사'나 시대의 예술의지를 중시여기는 정신사로서의 예술사, 그리고 작품에서 시대사(時代史)를 해석하는 '도상해석학'적인 방법론을 수용하기도 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가와 동시대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대가 문화를 창조하고, 다시 시대가 그 문화를 변형시킨다. 예술세계에서도 시대정신을 반영한 하나의 사조(思潮)가 일어나고, 시간이 흐르면 다시 다른 사조에 의해 대체된다. 한 화가의 작품 또한 시대 속에서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비록 변화의 동기가 자신의 내적 원인에 있다고 하더라도 시대적인 이유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오래전부터 한국화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해마다 많은 화가들이 배출되고 수많은 작품이 쏟아져도 한국화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들 한다. 예술가들은 전통과 당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전통이란 과거로부터 집적되어온 보고(寶庫)다. 그러나 전통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전 시대의 양식만을 추구하게 됨으로써 길이 막히게 된다. 전통의 양식 자체를 본받기 보다는 그 정신의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유수(流水), 70x138㎝, 2001.  
 
#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예술가


문봉선(1961~  )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납읍초등학교, 제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홍익대 회화과 학부와 석사를 졸업, 중국남경대학교 예술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동아미술상, 1987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였다. 개인전 15회. 2010년 아르코 아트페어(마드리드), 2009년 싱가포르 아트페어(선텍스), 2008년 한·중수묵화전(대북시립미술관), 2007년 평론가 선정 현대작가 55인전(한가람 미술관), 2006년 북경 국제아트페어(북경국제무역센터) 등 국내외 주요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2006년 《새로 그린 매·난·국·죽(전2권)》을 발간하였다. 화집으로는《북한산(1994)》,《문봉선(1994)》,《설악산(1996)》,《문봉선(2010)》등이 있다.

문봉선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붓글씨 잘 쓴다는 얘기를 들었다. 초가 밖거리 벽에는 숙부 문석환(文錫歡)이 쓴 글이 빛이 바래도록 붙어 있었다. 글씨 잘 쓰던 숙부는 동경 일본대학 예술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발병하여 52년 돌아가셨다. 

그가 화가로 대성할 수 있었던 소중한 인연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제주에서 강광, 이근칠, 조석춘, 문기선, 소암 현중화(素庵 玄中和), 고영석, 강요배, 김관옥 등과 만났다. 당시 오현고등학교 미술교사였던 강광은 교내미전에 출품한 문봉선의 작품을 보고 '특이한 그림'이라고 칭찬하였다. 그 인연을 계기로 시립 인천대학교 교수로 추천받았다. 제주중학교 미술교사였던 이근칠은 일본수묵화교본을 빌려주었다. 다시 조석춘 선생을 소개해 주어 동양화의 기초를 닦도록 하였다. 특히 소암 선생의 20분 정도의 첫 번째 가르침은 200시간, 2000시간 이상 값진 배움이었다. 붓 잡는 법, 벼루 다루는 법, 글 쓰는 자세. 너무도 당연한 이 세 가지는 화가로 살아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배움이었다. 소암에게 서예 기초를 1년 배우고 나니 바로 대나무에 응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봉선은 초·중·고 때 상을 휩쓸었다. 상 받은 다음 날이면 상장 뒤를 모두 그림으로 채웠다. 달력 뒷면에도 그렸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을 구입하여 고등학교 때 모두 마스터하였다.

홍익대 입학후 동양화과에 적을 두었다. 서양화와 조각을 공부하였다. 겨울 방학 때 제주시 산천단에서 솔잎을 지펴가며 얼음을 녹여 소나무를 그렸다. '꼭 같이 그린다고 소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깨달았다. 현장에서 그리라는 강요배의 가르침이 생생히 다가왔다.

문봉선은 대학생활 내내 청바지에 흰 고무신을 신고 다니면서 교정의 꽃을 모두 그렸다. 대학 3년 때 전국대학미전 최고상을 받은 <닭장>은 중학교 미술책에 게재되었다. 그는 수업시간 빼고는 밖에서 그림을 그렸다. 카메라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남이 보든 말든 주저 없이 현장에서 그렸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졸라 청나라 때 서화가이자 양주팔괴의 한 사람인 정판교(鄭板橋, 1693~1765)의 책을 사서 대나무와 여러 화초 그림을 보았다. 그 인연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만든 정판교의 책을 구입하는 동기가 되었다. 정판교에 관해 대학원 논문을 썼다. 1996년 '양주시팔괴기념관'을 처음 가봤는데 바로 양주시는 청나라때 문화의 중심도시였다. 양주팔괴기념관 관장의 친구인 설봉(薛峯)과 남경예술학원 주적인(周積寅) 교수와의 인연으로 중국에 유학할 수 있었다. 주적인 교수는 평생 정판교를 연구한 사람이다. 이처럼 그의 인연은 대륙으로 이어졌다.

   
 
  자연, 한지에 수묵담채, 189x126㎝, 작가소장, 1990.  
 
# 문봉선의 작품세계
 

한 화가의 내면에는 과거의 경험이 내재되어 있다. 문봉선은 어릴 때부터 집요함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워 온 붓글씨가 오늘날 문봉선의 필력을 형성하는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3년때 사군자의 묘법(描法)을 통해 흑백의 원리를 터득하였다. 흑과 백은 대비이기도 하지만 상호·보완적인 하모니를 이룬다. 전각은 대학원 때부터 시작하여 이후 15년간 공부를 하였다. 전각은 작은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과도 같아 바로 화면의 원리를 철저하게 이해하게 한다. 전각에서 배운 치밀한 계획성은 이후 대작을 제작하는 데 빈틈없는 구성력을 제공하는 힘이 되었다.  

한국화에서 여백의 문제는 묘사의 문제와 긴밀하다. 여백은 단지 형상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을 채우고자 하는 공간이다. 면과 선 또한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 간다.

1977년부터 시작한 <대>그림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천착해온 서예에서 비롯된다. 힘차고 빠른 운필(運筆)의 선들은 <자전거>에서 극치를 보인다. 이는 사물의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과 현장성이 만날 때 가능한 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임사(臨寫)란 모본(母本)을 넘어서기 위한 수행의 한 과정이자 모본의 사의(寫意)를 깨닫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임사는 임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임사를 통해 보다 높은 단계에 이르는 표현력의 습득에 있는 것이다. 가령《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은 지난 시대 여러 화가들의 묘사법을 집대성하여 후대로 하여금 같은 전통에 머물지 말라는 경구(警句)로 이해해야 한다. 보고 잘 그리는 것은 눈에 보인 것만을 본 것이다. 본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전통을 임사하는 깊은 뜻일 것이다.  

문봉선의 <동리>연작에서는 묘법보다는 수묵과 채색의 혼합적 방법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어쩌면 이는 전통적으로 남종화와 북종화가 서로 분리된 채 양대 산맥이 되어 존재하는 형식을 '전통의 재구성'이라는 과업으로 풀어보고자 한 노력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노력은 단순한 혼합이라고 부르기 이전에 수묵이 이루어내지 못한 효과, 반대로 채색이 이루어내지 못하는 분위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곧 이러한 시도는 따로 존재하는 전통 수묵법과 채색법을 넘어서는 길이다.

<자연>시리즈는 수묵과 채색의 장점들이 만나 이루어낸 초월적 신비감을 열어주었다. 먹은 추상적 요소를 강화시키고 채색은 구상적 생명감을 부여한다. 색채의 여운과 수묵의 번짐, 부분과 전체의 구분, 쏠림과 버팀의 끌어당김, 흩어짐과 모아짐의 국면들은 추상을 구상으로, 구상을 추상으로 서로 견제하면서도 생동감으로 통일시키고 있다.

고원법(高遠法)과 여백의 치밀함을 보여주는 <북한산>시리즈, 우아한 선의 기교와 빛나는 물결의 어울림을 보여주는<유수(流水)>, 먹의 농도로 처리되어 단순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지(大地)>, 그리고 자연의 기운을 문인화의 정신세계와 연결시킨 <운무(雲霧)> 등은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열어나간 문봉선식 회화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화는 문봉선에 의해서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고 있다. 살아있는 전통은 가장 세련되고 시대와 같이 호흡하며, 현대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가는 영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 애월 바닷가에서 본 보이지 않는 수평선에 대륙의 지평선을 중첩시키며, 문봉선은 섬과 대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다시 전통을 떠올리고 있다.
제주대학교박물관특별연구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