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일류교사들 너도나도 찾았던 학교"
마을의 역사와 함께하는 제주의 학교 5)가파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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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의 섬 속의 섬 가파도에 위치한 가파초 전교생 7명과 교직원, 유치원생이 누런빛으로 익어가는 보리밭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가파초는 1922년 설립된 신유의숙을 모태로 하고 있다. 장공남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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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파도 출신으로 3.1운동을 폈던 김성숙 선생의 주도로 가파초의 전신이 신유의숙이 설립됐다. 가파초 교문 옆에서 세워진 김성숙 선생 동상. 장공남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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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파도 청보리 축제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며 관광명소로 부각되고 있는 가파도에 위치한 가파초 전경. 가파초 | ||
# 우수 교사들이 찾던 학교
가파초등학교의 모태는 지난 1922년 설립된 근대식 교육기관인 신유의숙이다. 신유의숙은 가파도 출신으로 경성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 3·1운동 참여했던 회을 김성숙 선생의 주도로 이응신, 이시화, 김옥천, 김한정, 이도일 등의 공로로 설립됐다. 강중오는 학교 농지(실습지)를 내 놓았다. 박영복 가파리 노인회장은 "농지에서는 농사를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김성숙은 가파도에 더 좋은 교육을 펴기 위해 제주읍에서 교사를 초빙해 본격적인 교육활동을 폈다. 당대 지식인들도 민족의 자긍심을 화두로 설립된 신유의숙의 교사가 되기를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영복 가파리 노인회장은 "제주시에서 일류 교사들이 가파도에 왔다고 들었다"며 "김성숙 선생이 교사를 모셔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교사들에 의해 가파청년회, 부녀회, 새별소년회가 조직됐다.
특히 김성숙이 만든 '신유의숙가'에는 '화려하다 우리 학교여/ 무궁화 새 가지의 꽃이 아닌가/ 아 잘 배양합시다'라는 후렴구가 있다. 이처럼 신유의숙은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였다.
신유의숙가의 내용과 함께 무궁화 도안 모표(帽標) 사용으로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32년 4월부터 1933년 1월까지 1년 가까이 경찰서의 명령에 의해 중도 폐교되는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신유의숙은 가파도의 문맹 퇴치를 위해 야학을 운영했다. 야학의 불빛이 일제 강점기 순사가 사무를 보던 모슬포 주재소 쪽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을 가려 공부해야만 했다.
최근 발간된 「근·현대 제주교육 100년사」를 보면 신유의숙 야학의 호롱불을 위한 석유 값은 마을에서 모금을 통해 마련해 마을 공동체의 단결력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현재 가파도에는 글을 모르는 노인이 없다고 한다.
이성하·박영복씨 등 가파리 촌로들은 "글 모르는 할머니들은 야학을 다녔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며 "가파도 노인들 중 글 모른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신유의숙은 1930년대 교명을 신유서당으로 변경해 운영해 오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공립 가파국민학교 설립이 인가돼 리립(里立)에서 공립(公立)으로 전환됐다.
1996년 '황국신민의 학교'를 의미하는 국민학교는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차원에서 초등학교로 변경. 가파초등학교로 교명이 변경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전교생 7명의 소규모 학교
올 2월 가파초 제64회 졸업식에는 1명의 학생이 졸업장을 받았다. 가파초를 거쳐 간 총 졸업생은 1130명에 이른다.
지난 3월 신입생 1명이 입학해 올해 총 학생 수는 7명에 불과하다. 교직원 수는 8명으로 도서지역 소규모 학교다. 이 때문에 1·4·6학년이 합반하는 3복식 2학급으로 편성돼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가파리의 총 인구수는 250명(120세대)다. 이중 65세 이상의 노인인구는 85명에 이른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파초는 학생 수가 적은 학교가 아니었다. 1946년 개교 이래 1949년 총 학생 수는 152명이 이르는 것을 비롯해 1960년과 1970년에는 학생 수 173명을 기록하며 정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1989년에 학생 수 86명으로 100명 이하로 줄더니 이후 급격하게 학생 수가 감소해 1997년 32명, 2002년 22명, 2005년 14명, 2011년 7명 등으로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에 따라 가파리 주민들은 마을 차원에서 젊은 층을 마을로 불어들려 학생 수를 늘여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 학교 살리기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마을 이장, 청년회장, 학교운영위원장, 어촌계장 등은 올해만 해도 3차례나 학교 살리기를 위한 회의를 열었다.
박영복 가파리 노인회장은 "예전 가파리 인구수는 700~1000명으로 학생 수는 100명이 넘었었다"며 "가파도에서 수확한 해산물은 모슬포에서 팔았다. 젊은 사람들이 아이들 교육 때문에 밖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사교육 없는 공교육 모델 실천
제주지역 초등학생들이 학교가 끝나면 학원 차량에 올라 학원에 가거나 학교에 남아 방과후 학교에 참가한다.
가파도는 섬 지역 특성상 제주도의 다른 초등학교와 달리 학원이 없다.
이 같은 섬 속의 섬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가파초는 다양한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마련해 모든 학생에게 균등하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정규수업이 2개 반으로 나눠서 진행되는 반면 방과후 학교는 전교생이 참여한다.
영어회화반 등 11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피아노교실은 지난해부터 개설해 운영했다. 올해에는 바이올린 교실을 신설해 학생들에게 음악적 소양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기초한자반은 교장이 직접 맡는다. 또 컴퓨터반, 오카리나반, 독서논술반, 창의미술반 등은 교사가 강사를 맡고 있다.
이와 함께 바이올린교실반, 영어회화반, 피아노반, 태권도반, 영어회화반은 외부강사를 초빙해 운영된다.
외부강사가 참여하는 방과후 학교는 가파도와 모슬포를 잇는 여객선 시간을 고려해 정규 수업 시간을 일부 조정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가파초는 정규 수업, 방과후 학교 외에 매주 화·목요일에는 특별보충 과정으로 반딧불이 교실을 운영해 학생 수준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을 펴고 있다. 복식학급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맞춤형 1대 1 수업이란 비책을 내놓고 있다.
장원배 가파초 교장은 "영어나 재능교육을 강화시켜 사교육 없는 공교육의 모델을 만들고 싶다"며 "어린이가 와서 즐거운 학교, 자기들의 재능과 실력을 마음대로 키워갈 수 있는 학교, 학부모가 만족하는 학교가 학교의 가치다"라고 말했다.
# 마을과 함께하는 학교
지난 5월 6일부터 8일까지 제3회 청보리 축제가 열린 가파도는 청보리의 푸른빛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넘실댔다.
국토 최남단에서 전하는 봄소식이 청보리 밭 위에서 푸르게 물결쳤다.
가파초는 지난 7일 개막식 식전행사에서 전교생 7명과 유치원생 4명 등이 참여해 앙증맞은 풍물 실력을 뽐냈다.
또 가파초 교문 옆 회을공원에 어린이들의 그린 그림을 전시해 관광객들을 동심의 세계로 초대했으며 학교운동장에서는 물로켓 날리기 행사를 열어 축제의 흥을 돋웠다.
가파도 청보리는 누렇게 익어 계절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라산과 산방산 그리고 제주바다가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다가서는 가파도의 계절은 시계 바늘처럼 서서히 순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