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정체성 상징 대표 무속 문화 접근 필요
[무형문화유산, 역사의 '새숨결' 불어넣다] <2>칠머리당 영등굿
2011-07-20 고 미 기자
화려한 수식어 불구 허술한 전승 시스템…체계적 지원 절실
지난 6월 제주를 방문한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가 바쁜 일정에도 제주 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와 전수회관을 찾았다. 가장 제주다운 것을 만나기 위한 걸음이다. 이 자리에서 보존회원들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칠머리당영등굿을 알고 싶다는 벽안의 외국인에게 제대로 설명한 자료도 부족했고, 통역을 통해 전해진 내용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이 것이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대표목록 중 유일한 '무속 문화'이자 제주인의 정신문화를 계승해온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의 현주소다.
#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유명무실
1980년 11월 17일 당시 제주도는 큰 선물 두 개를 얻었다. 다름 아닌 '탕건장'과 '제주칠머리당굿'의 국가 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이다. 제주에서는 처음 국가 차원의 무형문화재 인증을 받은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제주시 칠머리당영등굿 전수회관은 전수 교육이 진행되는 외에는 인적이 뜸했다.
2009년 2009년 9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총회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포함됐다며 흥분했던 기억은 억지로 끄집어내도 찾아지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 국가 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 30주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1년, 칠머리당굿 초대 기능보유자이자 인간문화재로 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 1대 회장인 안사인 심방의 20주기까지, 의미가 컸던 한 해를 조용히 보낸 여파가 컸다.
제주영상문화센터 개관에 맞춰 특별 시연을 진행할 때만해도 '상설 공연'등의 기대감을 키웠었다. 하지만 관련 예산이 줄어들면서 유야무야 사라지고 말았다.
아예 지난해 초 시작됐던 칠머리당 보수 계획은 아직까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사설 하나 장단 하나 보유자의 지도를 받으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지만 이들이 바라보는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는 단순히 전수 조교나 장학생들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 아이템 하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집중적인 관리 대책과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사실상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을 활용한 문화마케팅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이 주도한 사업인데다 국가 지정 문화재라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현실 앞에서 보존회 스스로 자구책을 만드는 것 역시 어려운 상태다.
제주의 전승문화유산 중 가장 핵심적인 무형문화유산은 오랫동안 제주민중의 삶과 궤를 같이해온 '무(巫)'문화이다. 전(前) 역사과정을 지닌 제주의 무(巫)문화의 하나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된 것은 역사적으로 변방의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무형문화를 영위해온 제주 문화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이자 세계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후속 작업이 더뎌지며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 왜 칠머리당 영등굿인가
제주 문화 특성 상 1만 8000신과 자연·사람을 연결하는 무속 문화의 역할은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칠머리당영등굿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칠머리당에서는 해마다 영등달 초하룻날이 돌아모면 제주를 찾아오는 내방신(來訪神)인 영등신을 맞이하여 '영등환영제'를 하며, 영등달 열나흘날(음력 2월 14일)에는 영등신을 떠나보내는 영등손맞이 '영등송별제'를 한다.
제주시 건입동 칠머리당은 영등굿을 당굿으로 하는 당이며, 칠머리당의 당굿은 제주의 대표적인 영등굿이다. 제주의 영등굿 중 제주칠머리당의 당굿(본향당에서 하는 마을굿)은 제주의 영등굿을 대표하는 마을굿으로 국내외 학자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계절제(季節祭)로 바람의 섬 제주에 남아있는 영등굿의 뿌리가 되고 있다.
칠머리당 영등굿의 구성은 일반굿으로서의 영등굿과 잠녀굿의 기본이 되는 요왕맞이, 어부들의 풍어굿인 영감놀이, 마을의 본향당굿에 이르는 복합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칠머리당 영등굿은 당굿을 겸하고 있으며, 선박을 가진 선주와 어부들이 많기 때문에 '영감놀이'가 굿 중 놀이굿으로 삽입되어 있다.
영등굿은 기본형이 초감제→요왕맞이→씨드림·씨점→배방선재차로 이뤄진다면 초감제와 요왕맞이 사이에 '본향듦', 씨드림·씨점과 배방선 사이에 '영감놀이'가 삽입되어, 제주 지역에서는 가장 규모가 있는 영등굿으로 확대된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제주도내에서 행해지는 영등굿 가운데 칠머리당영등굿만 지니는 독자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한때 미신으로 치부됐던 굿은 수난을 겪으면서도 민간을 중심으로 무병, 치병, 소원 성취를 위해 꾸준히 맥을 이어왔다.
1980년대 일부 굿이 문화재로 인정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인 제주굿과 당은 지키고 보존해야할 '무속문화'로 새로운 인식이 요구됐다.
그런 흐름 속에서 제주시 건입동 본향당굿인 칠머리당 영등굿이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됐고, 이후 제주칠머리당굿보존회가 창립됐다.
칠머리당굿보존회는 칠머리당굿이 중요무형문화재 71호로 지정된 이래 1981년부터 매년 한라문화제 칠머리당굿 시연회를 갖고 있다. 매년 사라봉 칠머리당(비가 올 때는 서부두 수협어판장)에서는 영등송별대제일(음력 2월 1∼15일)을 지정해 공개발표회도 갖고 있는데 초하루에는 환송제,열나흘날에는 송별제가 치러진다. 송별제때는 하루 종일 큰 굿이 베풀어져 해녀와 선주 등 바닷일을 하는 이들 뿐 아니라 도내·외에서 굿에 관심 있는 이들의 발걸음이 모아져 명실상부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는 제주의 열두본풀이자료집 「제주도무속신화」를 집대성하는 등 사라져가는 제주문화를 되살리는 일에도 한몫하고 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는 인간문화재 김윤수 심방을 비롯해 조교 고순안,전수교육보조자 이용순,이수자 이용옥 고산옥 마치순 김연희,전수생 신순덕 강연순 정공철 신복만 이문자 고덕유씨 등 한때 40명에 가까운 회원이 활동했으나 현재는 그 절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 "대를 이어 지켜온 문화 자산" ●인터뷰=김윤수 심방 김 심방은 "언제나 말만 앞서도 달라지는 게 없다"며 "무속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아예 이해할 생각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지난해 칠머리당 보수 계획이 논의되는가 싶더니 지방 선거 후 쑥 들어갔다가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살려야 한다는 지적에 조심스럽게 구체화됐을 때만 해도 기대가 컸다. 하지만 그 때뿐. 보수 계획은 여전히 '추진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고 칠머리당영등굿을 4개국어로 소개하는 얄팍한 소책자 외에는 별다른 자료를 만들지도 못했다. 김 심방은 "이럴 거면 아예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이 아닌 편이 낫다"며 "아직껏 입간판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국가 지정 문화재'라는 상대적 홀대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국가가 지정했다고 '제주의 대표 무속문화'라는 사실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심방은 "칠머리당 영등굿은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필요에 따라 소개용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지켜온 자산"이라며 "글로 기록하거나 영상 자료를 남긴다고 정신까지 계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심방의 눈이 계속해 전수조교와 장학생들에게 향한다. 아직 뒤를 맡길 후계자를 정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네가 해라'하고 덥썩 맡기기에 현실이 너무 퍽퍽하기 때문이다. 김 심방은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은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정치적이거나 행정적 잣대로 볼 것이 아니라 미래를 전제한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