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선배 든든한 후원 맥(脈) 새기다
[마을의 역사와 함께하는 제주의 학교] <12> 귀덕초등학교
1940년 개교…역사는 192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각교실·체험학습·NIE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귀덕리는 예부터 석천촌(石淺村)이라 불렸다. 마을 사동마을 앞바다에 '큰여' '작은여'라고 부르는 돌섬 2개가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해서 '석천도(石淺島)'라 부른데서 유래했다. 고려 희종때인 1212년에 제주에 현을 설치하면서 이 지역은 석경현(石鏡縣)으로 명명하고 늬커리(四肢洞)와 중동(都舍洞)에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았다는 기록도 있다. 지금의 '귀덕'이라는 지명은 서기 1300년 고려 충렬왕 16년 제주도에 14현을 설치하면서 이곳에서 무인과 학자들이 많이 배출됐다하여 중국 중경지방의 지명을 따서 귀덕현으로 이름지으면서 등장한다.이후 1609년에 제주판관 김치가 현제를 폐지하고 방리제를 실시하면서 귀덕리가 되었다.
사립 귀덕심상소학교(초대 교장 강석순)는 일제강점기 때인 1940년 4월 16일 설립 인가받아 1940년 4월 25일 개교했다.
그러나 역사는 이보다 앞선 192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대 재래의 서당을 개량해 근대적 초등교육기관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고, 1920년대에 들어와 민족주의 계열을 중심으로 농촌계몽운동·문맹퇴치운동 등이 전개되면서 교육열이 높아졌다. 덩달아 신구학문에 두루 능통한 교사와, 한문과 유학 외에도 국어·산술·지리·일본어·역사 등 새로운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개량서당이 증가하게 됐다.
구우면(한림면) 교학일지는 귀덕에도 1920년 귀덕리 1361번지에 4년제 서당 '취신학숙'이 설립됐고, 이 서당이 1940년 4월 6일 개설한 귀덕심상소학교의 전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취신학숙'은 귀덕에서 세워진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교사는 김석우, 강석방, 이창인, 고호진, 김태희, 고운창, 강방현, 현주선 등이 있었다.
1938년 조선총독부 제3차 조선교육령 공포 이후 사립 학교 설립은 다소 활기를 띠어 일제강점기 때인 1940년 4월16일 사립 귀덕심상소학교(초대 교장 강석순)로 설립 인가되어 1940년 4월 25일 개교했다. 설립 당시에는 김창우, 홍순옥씨 등의 공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1941년 4월1일자로 사립 귀덕심상소학교가 사립 귀덕국민학교로 개칭돼 8·15 광복 때까지 사립학교로 남았다.
그 후 1946년 10월3일 공립 귀덕국민학교로 교명이 바뀌고 1958년 4월15일에는 12학급이 편성된 후 1979년 561명을 정점으로 조금씩 줄어들다 현재 1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996년 3월 귀덕초등학교로 개칭된 이후 현재 학생수는 6학급 97명, 총 졸업생수는 4235명이며 올해 21명이 졸업할 예정이다.
학교 북쪽 울타리 안에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인 귀덕연대(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18호)가 공덕비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좌측 첫 번째 비석은 귀덕초 전신인 개량서당 취신학숙의 교사로 근무했던 김석우의 공덕비로, 김(金)자 글씨가 6각형으로 패인 채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일제의 압력으로 창씨개명했다가 해방되는 날 한국식 성으로 고쳐쓴 역사적 아픔이 담겨 있다. 두 번째 비석은 초대 교장 강석순 공덕비이다.
귀덕초 2회 졸업사진을 보면 앞에서 2번째 줄 왼쪽에서 4번째가 2대 교장 홍완표 선생(귀덕리 출신)이다.
1948년 대정교로 전출돼 대정중과 대정초 교장을 겸하던 홍완표 선생은 그 해 11월6일 군토벌대에 의해 속칭 '진개 동산'이란 곳에서 억울하게 총살됐다. 당시 대정중 촉탁교사인 공민담당 이승진(김달삼)이 4·3의 주동자로 지목됐고 대정중 학생들이 무장대로 입산한 책임을 물어 벌어진 사건이었다.
현재 홍완표 교장의 위패는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 모셔져 있다.
귀덕초는 이와 같은 학교의 역사를 모아 현재 「귀덕초등학교 70년사」발간을 준비중이다. 양영철 총동창회장이 발간위원장을, 이승학 애월중 교감이 간사를 맡아 귀덕초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게 이어온 학교의 맥을 현재는 새기고 있다.
귀덕초의 특색활동중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서각교육이다. 학생들의 정서순화와 예술적 소양을 키워주기 위해 지난 2006년부터 일주일에 두 번, 초중고급반으로 편성해 운영하고 있는 서각교실에는 전교생이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다.
평생을 조각칼과 망치를 들고 오직 새김질에만 매달려 '제주 서각의 대모'로 불리는 강영자 한국서각협회 제주지회장(한국서각협회 부회장)에게 직접 배우는 특권까지 얻었다.
실력도 금방 늘어 지난 2009년 전국서각공모대전에서 금·은·동상에 16명이 입상했고, 이듬해 대회에선 대상을 더해 12명이, 올해에는 모두 27명이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또 학생들이 출품한 40작품은 오는 8일부터 27일까지 일본 산다시에서 열리는 '서각 및 절화작품 4개국 교류전' 한국대표로 현해탄을 건넌 상태다.
학생들의 작품은 복도에서부터 체육관을 연결하는 긴 회랑을 채우고 있다. 하나의 열린 갤러리인 셈이다.
또 하나의 특색활동으로 생활한자 익히기 프로그램이 있다. 귀덕연합청년회가 매년 후배들을 위해 구입해준 수준별 한자교육교재를 가지고 생활한자 익히기 1인 1인증 통과하기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자 인증 능력평가를 연 2회 실시, 목표점수에 도달한 학생들을 시상하고 있다. 지난 1학기에는 전교생의 76%인 74명이 인증을 통과하는 등 성취감과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 국외 체험학습 매년 운영
귀덕초는 지난 2006년부터 해외로 수학여행을 간다.
귀덕초 출신의 익명의 독지가가 매년 3000만원 가량을 쾌척, 후배들에게 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울 국외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해준 덕분이다.
졸업을 앞둔 6학년 학생들은 매년 3박4일 일정으로 일본, 중국 등을 견학하며 세계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있다.
창의력을 배양하고 자신의 꿈을 디자인할 수 있게 하는 독서명품 프로그램도 귀덕초의 자랑이다.
특히 매년 실시하고 있는 평화책전시회는 일주일간 학년별로 평화책을 읽어주고 느낌을 서로 이야기하며 화분 만들기, 엽서 꾸미기 활동과 전교생이 커다란 광목천에 평화를 상징하는 그림 한가지씩 표현하기 등을 통해 평화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귀덕초는 또 경제교육 시범학교로 2012년 2월까지 운영하고 있다.
자기주도적인 경제교육프로그램과 경제에 대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경제교육협회와 경제교육프로그램 운영 및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을 통해 신문을 활용한 학습(NIE)을 전개하고 경제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받아 활용하고 있다.
김재필 귀덕초 교장은 "즐겁게 공부하는 습관을 바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찾고 서로 도와가면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봉철 기자 bckim@je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