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에서 ‘활용’으로…무형 중요성 부각

[무형문화유산, 역사의 ‘새숨결’ 불어넣다] <5>문화재청과 무형문화재 정책

2011-09-13     고 미 기자

문화재청 출범 50주년…‘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합니다’
문화재보호법 등 개정 추진, 무형문화재가치 평가 무게

 

▲ 지난 2009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칠머리당 영등굿, 처용무.

솔직히 말해서 제주에서 ‘문화재청 50년’의 체감도는 그리 높지 않다.

문화재청은 올 10월로 출범 50년을 맞는다. 문화재청은 오는 19일부터 28일까지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기·예능 중 선정한 무형문화재의 유네스코 전시와 공연을 진행한다. 26일에는 문화재행정 50주년 특별전과 국제심포지엄이 열려 주요 사료·기록물·영상물 등을 통해 문화재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볼 예정이다. 그래도 제주와는 조금 거리가 있게 느껴진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9년 제주의 칠머리당영등굿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중 등재시키며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무속문화로의 자부심과 가치를 확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해를 문화재 환수 원년으로 삼는 등 다양한 계획을 내놨지만 중국이 ‘연변 조선족의 아리랑’을 자국의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크고 작은 진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재 정책의 중심으로 그에 거는 기대는 여전히 클 수밖에 없다.

# 반세기, 녹록치 않은 시간

올해는 문화재청이 1961년 10월 2일 문화재관리국으로 출발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문교부 외국으로 있다가 1999년 5월 24일 문화재청으로 승격했다.

문화재청이 그동안 해 온 일은 국민 공모로 선정한 50주년 기념 캐치프레이즈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합니다’에 잘 함축돼 있다.

지난 반세기 문화재청을 중심으로 추진된 문화재 행정의 성과는 ‘문화유산의 발견과 보존’으로 정리할 수 있다. 사라지거나 훼손된 문화재를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것이 주업무였다.

물론 걸림돌도 있었다. 문화재 원형 보존에는 사유재산권 제한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고, 문화재 출토로 개발이 제한되는 여러 사례 속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기도 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국보나 보물 등 국가 지정 문화재에 비해 지방 문화재 관리가 소홀한 것도 그 중 하나다. 지난 2005년 각 지방자치단체로 지방문화재 관리 업무가 이관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이나 재원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기 어려웠다. 현재 현재 문화재 전담 부서가 있는 곳은 광역단체 3곳(서울 인천 경북), 기초자치단체 3곳(경주시 공주시 김해시)에 불과하고, 지역 개발이 우선시 되면서 문화재는 정책 순위에서 늘 뒤로 밀린다. 시ㆍ도 지정 문화재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문화재 행정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지방문화재 관리 예산인 분권 교부세는 오히려 감소 추세인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자체 등에서 지방문화재를 우선하고 국가지정문화재를 홀대하는 웃지못할 상황도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훼손된 문화재의 복원’에 힘이 실리면서 유형문화유산 비중이 커진 것 역시 문화재청이 직면한 문제 중 하나다.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통틀어 무형문화유산 담당 부서는 각각 문화재 관련 15개 과 가운데 1개 과, 그리고 7개 연구소 중 1개 연구소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유형문화재를 취급하는 곳이다.

# 살아있는 역사문화로의 변화

변화의 조짐도 느껴지고 있다. 문화재 행정의 방향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그것이다. 단순한 외형 보존에 그치는 것이 아리나 스토리텔링을 통해 속을 채우는 것은 물론이고 디지털화를 통해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국내를 넘어 세계로 확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문화유산의 ‘활용’을 통해 박제화 된 역사·문화가 아닌 살아있으며 계속해 발전하고 있는 역사·문화를 만들겠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최근 전통적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법률적 보호 근거를 담고 있는 ‘무형문화재법’ 강화를 위한 분법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정기국회 입법 상정을 목표로 한 이 법안에는 무형문화유산과 인간문화재 등에 대한 권리보호 강화 등을 담고 있으며 법안이 통과되면 전통적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가적 관리도 가능해 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배경에는 일본에 전통주 막걸리의 특허권이 넘어간 사례와 무형문화유산인 아리랑이 중국에 의해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는 등 체계적 관리 부족이 문제점으로 부각됐던 아픔이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전통 기법에 대한 특허 무효심판 청구 등이 잇따르는 등 향후 유사한 사례의 분쟁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법제도의 정비가 요구됐었다.

문화재 보호법도 개정작업 중이다.

세계무형유산에 이름을 올리려면 먼저 해당 국가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는데 아리랑은 물론이고 제주잠녀 등 가치와 진정성에 있어 차별화(outstanding)·독창성(unique)을 지니고 있는 무형문화유산이 문화재보호법에 발목이 잡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형문화재를 지정할 때 기능 보유자를 선정하라고 규정한 24조다. 공연이나 공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를 문화재로 지정할 경우 무엇을 보존해 전승할 것인지 애매하기 때문에 ‘원형성’을 담보할 보유자나 보존단체를 선정하라는 조항이 등장했지만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보유자를 선정하지 않고도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도록 문화재 보호법 개정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형문화재 목록’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로 상징성이 있는 것을 문화재로 지정하자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또 무형문화 자산에 대한 국가적 데이터베이스(DB)구축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특정 단체나 특정인들에 의한 독점적 사유화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제주잠녀·잠녀문화 '가능성' 충분  
●인터뷰/김인규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학예관

▲ 김인규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학예관
"제주에서 하루에 적어도 네 번 전화가 옵니다. 그만큼 무형문화유산과 제주잠녀·잠녀 문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냐"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김인규 학예관은 제주에서의 방문이 그리 불편하지 않은 표정이다. 하지만 최근 제주에서의 관심 때문인지 조금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김 학예관은 "제주 잠녀·잠녀문화가 생업을 바탕으로 생겨난 독특한 문화현상으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의 모델이 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며 "살아있는 문화로 변이가 가능하고 지속가능하다는 점 등에 공감은 했지만 지정문화재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칠머리당영등굿만 먼저 대표목록에 포함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김 학예관 역시 칠머리당 영등굿의 근간이 되는 제주 잠녀의 가치가 중요하다는데 공감했다.

대표문화 상징으로 제주잠녀를 포함시키는 작업에 대해서는 "조금 여유를 가질 것"을 제안했다.

김 학예관은 "현 문화재 보호법이 특정한 누군가를 보유자로 인정하는데 따른 문제가 있고, 같은 지역 내에서도 다양성이 있다는 점 등 보완해야할 부분이 많다"며 "그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상징성있는 문화유산을 목록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관련 학회를 통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학예관은 "제주는 지금까지 충분히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준비를 해왔던 만큼 목록 기준이 정해지면 바로 신청이 가능하리라 본다"고 단언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작업에 있어서도 김 학예관은 "무엇보다 공동체 차원의 보존의지와 지자체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자발성을 가지고 노력하는 모습, 지자체 차원의 다양한 지원책 발굴 노력 등이 평가에 반영된다. 제주의 제주잠녀·잠녀문화 세계화 워킹그룹 활성화 등은 노력했다는 증거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