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무형문화유산’을 만들다
[무형문화유산, 역사의 ‘새숨결’ 불어넣다] 6. 단오박사 최선복씨
‘단오박사’ 공무원 활약 두드러져…유네스코 아태무형문화유산센터 특채
가치를 제대로 알고 평가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그 평가를 공론화하기 위해 정리하는 손도 필요하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내용을 견인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강릉단오제는 이런 힘의 결집이 낳은 긍정의 결과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사람’이 있었다.
현재 제주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임돈희 동국대 석좌교수는 유네스코 전 한국측 심사위원으로 강릉단오제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진두지휘했다. 임 석좌교수는 유네스코 등록과정에서 심사 자료 제작, 심사과정, 국제사회 동향 파악과 조언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도 제주해녀·해녀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을 세우는데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임 석좌 교수는 현재 제주특별자치도가 고민하고 있는 제주 해녀·해녀문화 정체성 정립에 대해 무형문화유산의 성격과 최근의 경향 등을 근거로 제주해녀 물질 또는 해녀 마을 등 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무형문화유산의 틀을 만들 것을 조언하고 있다.
임 교수 외에도 지역 대학 교수 등 학계가 똘똘 뭉쳐 강릉단오제의 전통성을 부각시키고 당위성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전문적인 부분을 책임졌다. 물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문화재청 등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중 유독 눈에 띄는 직함이 있다. 당시 강릉시청 ‘공무원’(행정 6급)이던 최선복씨다.
지난 2003년 강릉시청 향토문화담당으로 발령받을 때만해도 ‘적당히’자리를 지킬 요량이었다. 하지만 막상 ‘강릉단오제’를 만나면서 생각은 달라졌다.
강릉단오제의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 노력은 2000년 10월 문화재청에서 열린 문화재위원회가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판소리에 이어 단오제를 국내 3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록후보로 선정하면서 시작됐다.
2년 주기로 실시되는 유네스코의 세계무형문화유산 등록이 2006년부터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체계로 유산등록 방식이 변경되기 때문에 사실상 ‘2005년’이 마지막 기회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01년 첫 심사때는 전세계 36개국 신청 유산들 중 19개가, 2003년 두번째 심사 때는 63개 유산 중 28개가 각각 선정됐지만 이번 심사에는 85개국(2개 국 이상 공동신청 포함) 75개 유산이 등록을 신청해 어느 해보다 경쟁이 더 치열했다.
추진과정에 어려움도 많았다. 강릉 단오제 유네스코 등재 업무는 문화에 대한 지식과 외국어, 국 제업무 능력이 필요한 전문 분야였다. 하지만 당시 향토문화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향토문화담당이란 이유로 추진한 일이어서 처음부터 공부하며 시작했다. 유네스코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유무형 문화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문화 분야 업무를 시작했다. 부지런히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찾아 다녔고 무형유산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으며 공부했다. 6개월이 지나서야 간신히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 ‘무형문화 세계화 대가’ ‘행정의 달인’
우리시간으로 2005년 12월 24일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걸작으로 선정되던 순간 최씨는 심사가 진행되던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있었다.
공식 출장이 아니라 ‘지독한 몸살’을 핑계로 휴가를 받아 참석한 자리다. 그 때의 감동을 최씨는 절대 잊을 수 없다.
강릉 단오제를 있는 그대로 유네스코에 알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는 어려웠던 까닭에 세계 굴지의 무형문화재를 간직한 국가 간 도시들의 모임을 제안했던 것도 최씨였다. 2004년 강릉시가 제안해 2008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첫 창립총회를 가진 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ICCN)이 그것이다. 이후 강릉시는 사무국 지위를 유지하며 세계 속의 무형문화유산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단오박사’ ‘무형문화 국제화 전문가’라는 별칭까지 얻었지만 이후 최씨는 강릉시 왕산면 부면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올 4월 명예퇴직한다.
이후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 아태무형문화유산센터 ‘기획관리실장’로 특채되는 행운을 얻는다.
아태무형문화유산센터에서 만난 최 기획관리실장의 눈빛은 반짝였다.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최 기획관리실장은 “누가 시킨 일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공무원이라는 위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큰 의미가 되기도 하고 그저 자리만 지키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고 회상했다.
강릉단오제를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후 인사 등의 이유로 업무를 계속하지 못하게 됐을 때에 대한 기억은 억지로 끄집어내기 싫은 눈치다. 하지만 최 기획관리실장은 “일이라는 게 뜻하는 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검증받기도 어렵다”며 “제주가 제주해녀·해녀문화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노력하고 있다면 그 것을 특정한 누군가가 해줄 거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적 인프라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전반적인 과정을 지역이 함께 해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최 기획관리실장은 “주변에 평가받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이란 위치가 편하지만은 않았다”며 “묵묵히 자리를 지킨 것만으로도 불편한 시선을 감수해야 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