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 주민들의 '힘' 학교 살려내

[마을의 역사와 함께하는 제주의 학교] <17> 저청초·중학교

2011-11-29     김봉철 기자

▲ 저청초·중학교 전경 /김봉철 기자
학교, 단순 교육기관 아닌 마을 구심점
훈훈한 끌어주기 경쟁, 변화 이끌어내

소규모학교 통폐합이 도내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통폐합만이 대안이냐"는 의견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오래 전 주민 주도로 통합을 이룬 저청초·중학교의 사례가 현재의 학교통합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 두 번의 통합 겪어

저청초등학교(교장 김정호)는 두 차례 통합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50년 저지국민학교와 청수국민학교가 합쳐진 것이 첫 번째, 1999년 저청초등학교와 저청중학교가 합쳐진 것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통합은 주민들의 주도로 이뤄졌다. 1938년 한경면에 처음으로 현대적 교육기관인 조수사립신성학교가 인가됐고, 1939년 조수심상소학교가 인가·개교함에 따라 사설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던 저지, 청수, 산양, 낙천, 월림 지역 학생들이 학교에 편·입학했다.

원거리 통학에 불편을 느끼던 저지리와 청수리 주민들은 지역 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광복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학교 설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저지국민학교는 1946년 4월1일 속칭 '허리왓'(현재 오름휴게소 인근)에, 청수국민학교는 1947년 3월1일 당시 청수리 2구(수룡동)에 문을 열었다.

현재 옛 저지국민학교 교사는 소실돼 그 자리에 일반 주택이 들어섰고, 청수국민학교는 팽나무를 옆에 낀 공터로 남아있다. 1948년 제주4·3의 화마가 이들 두 학교를 휩쓸고 난 뒤의 일이다.

1949년 고향으로 돌아온 주민들은 저지국교와 청수국교를 통합·복구하기로 뜻을 모으고, 양 지역의 중간인 저지리 1517번지에 1950년 6월1일 저청국민학교로 새롭게 출발했다.

# 초·중 통합, 학교 살리기 위한 선택

두 번째는 통합은 이농현상으로 대표되는 시대·환경의 변화가 원인이 됐다.

1998년 7월, 도교육청이 농어촌 학교의 교육환경 개선과 학교 운영비 절감을 위해 학생수가 73명에 불과했던 저청중을 폐교하고 학생들을 인근 통합학교에 수용키로 한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마을에서 어렵게 부지를 내놓아 문을 열었고, 또 수십년간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해온 학교를 폐교시키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며 중산간지역에 대한 교육·문화적 배려차원에서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학교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닌 마을의 정신적 구심점이라는 데 공감한 양 지역의 원로들을 중심으로 학교살리기추진위원회를 결성, 학부모들을 일일이 만나며 동참을 호소했다. 당시 박태보 학교살리기추진위원장은 "중학교가 문을 닫으면 이 곳 학생들은 왕복 10㎞가 넘는 통학길을 다녀야 한다"며 "폐교보다는 마을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중학교가 다른학교와 통합돼 사라지면 초등학교 역시 그 뒤를 따를 것이라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폐교 논란의 이유가 됐던 학생수 늘리기가 학교살리기의 중심이 됐다.

▲ 저청 초·중학교 학생들이 지역내 골프장에서 골프교육을 받고 있다.
당시 학교살리기추진위 사무국장을 맡았던 임안순 청수리장은 "교육청의 폐교 방침 때문에 신입생 유치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하지만 IMF사태라는 국가적 악재가 이 곳에서는 호재가 됐다. 직장이나 삶의 터전을 잃은 가정을 대상으로 제주에서의 제2의 인생을 권유해서 학생수가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주민들의 정착을 돕기위해 5년간 무상으로 집을 빌려주고,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필요한 급식비와 운영회비도 지원을 약속해 학생을 유치하자는 의도였다. 이를 위해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약정한 금액이 3억원에 이르렀고, 여기에 당시 북제주군의 '돌아오는 농촌 만들기사업' 지원금 1억원이 보태졌다. 주민들은 쓰지 않는 집과 창고 등을 자발적으로 내놓고, 직접 리모델링을 하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쏟아부었다.

전국 279개 기초단체에 모집 공문을 보낸 결과, 2000여 세대가 신청서를 냈으며 이중 38세대(187명)가 이 지역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신입' 초·중학생 50여명을 확보했고, 이후 초·중학교를 통합운영하는 것으로 교육당국의 폐교 방침을 막아냈다.

이 모든 게 주민들의 힘이었다.

▲ 다육식물화분 가꾸기 공예교실 수업 모습
# 관광교육으로 지역 미래 가꾸기 동참

어렵게 지켜온 학교를 미래에도 잃지 않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저지에서는 현대미술관이 서각 강사를 지원해 학교에서 서각교실을 운영하고 있고, 지난달부터는 지역내 위치한 라온골프장의 협조로 골프교실까지 열게 됐다. 지난 7월 이장단회의 때부터 김상원 저지리장의 주도로 골프장 측과 꾸준히 만남을 가지며 추진해온 결과였다. 청수도 이에 질세라 학교의 각종 체험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한편, 승마체험학교에서 승마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마을에서 펼쳐진 훈훈한 '끌어주기' 경쟁은 학교의 변화도 이끌어 냈다. 저청초는 문화와 체험관광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적 특색을 살려 '관광교육'을 테마로 잡고, 지난해 도교육청 및 도관광협회와 제휴해 관광교육시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평화박물관과 방림원, 생각하는 정원, 낙천 아홉굿마을, 예술인마을, 올레코스 등 지역에 위치한 문화·관광 현장을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며 지역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나아가 미래를 가꿔나가는 데 동참하고 있다.

강정림 교감은 "'하이, 하이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습관을 갖추도록 하고, 인성교육의 최적지라는 환경적 장점을 살려 인성과 창의성을 두루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다른 어느 곳 보다도 학교에 많은 관심을 쏟아준 지역주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는 전인교육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