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몰지형으로 남은 은밀한 곶자왈
[곶자왈 대탐사Ⅱ: 객원기자 김대신의 곶자왈 10년 생명을 읽다]<9> 상도-하도곶자왈용암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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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암제방 손고비군락 | ||
상도-하도곶자왈은 대부분 목장의 중간중간 움푹 패인 함몰지형으로 존재하고 있어 사람들은 이곳이 곶자왈인줄 모른다.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상도-하도곶자왈의 존재는 풍문처럼 떠돈다. 사람들에게 가장 개방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존재 자체가 숨겨져 있는 곶자왈. 이런 역설은 제주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곶자왈중에서 이곳을 가장 은밀한 곶자왈로 만든다.
제주 동부 지역의 곶자왈은 지질학적인 특성에 따라 구좌성산곶자왈대는 종달-한동곶자왈용암류, 세화곶자왈용암류, 상도-하도곶자왈용암류, 수산곶자왈 등으로 구분됨을 말한 바 있다. 이 네종류의 용암류들은 숲이 빈약한 동부지역의 중요한 종피난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상도-하도곶자왈은 목장지대에 지하밀림으로 존재해 있어 주변의 숲의 부재로 오갈데없는 많은 종들에게 '매우 귀중한 종피난처'라는 말이 더없이 실감난다.
상도-하도곶자왈용암류는 용눈이오름 북동쪽 2㎞ 지점에서 지미봉 근처까지 분포하고 있는데 대부분 지역에 방목지역에 둘러싸여 그 존재는 인접한 지역까지 가야만 그 실체를 만나게 된다. 호위병처럼 여러 겹으로 둘러싼 가시덤불숲을 뚫고 곶자왈숲에 이르러도 지형적인 영향으로 전진하는게 힘들어진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어느 곶자왈보다 식물상을 조사하기가 까다롭고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 꽁꽁 숨겨진 곶자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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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돌담고사리 | ||
특히 상도하도곶자왈에는 이런 용암제방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로인해 식물상에도 차이를 보인다. 용암제방의 바닥에는 후추등이나 더부살이고사리가 군락을 형성하기도 하며 드물게 손고비군락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벽면을 따라서는 숫돌담고사리가 작은 폭포수처럼 자라기도 하여 이 지역 곶자왈의 독특함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궁극에 사방으로 펼쳐진 용암제방과 협곡과 같은 이 지역 곶자왈의 지형 특징은 특히 습도를 요하는 식물에 있어 요긴한 생육 장소를 만들어 준다.
# 작지만 강한 곶자왈
구좌-성산곶자왈지대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 지역 역시 상록활엽수 특히 녹나무과 식물이 우점하는 특징이 있다. 참식나무, 생달나무, 센달나무 등이 우점하며 함몰지형의 규모가 커지고 중심지역에는 구실잣밤나무, 종가시나무 등이 생육하지만 상대적으로 낙엽활엽수의 분포는 다양하지 못한 편이다. 동백나무, 사스레피나무 등이 겨우 있을 뿐 관목류의 분포도 빈약한 편이다. 하층식생은 함몰지형을 중심으로 다른 지역보다는 그 생육 규모는 작지만 빼곡하게 더부살이고사리, 후추등, 가시딸기, 골고사리 등이 분포하며 특히 밤일엽, 나도은조롱, 숫돌담고사리 같은 식물들도 분포하고 있어 구좌-성산곶자왈지대의 다른 지역과는 차이를 보인다. 또한 서부지역의 곶자왈과 비교해볼 때도 숫돌담고사리, 백서향, 밤일엽, 가시딸기 등 공통적으로 분포하는 식물들도 있지만 나도은조롱, 주름고사리, 애기꼬리고사리 등은 이 지역 곶자왈에서만 분포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여타의 곶자왈들과 비교해 볼 때 해발고도가 비교적 낮은 이유도 있으며, 용암제방 같은 특이 지형으로 인한 미기후의 차이가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 곶자왈지대의 호위병
상도-하도곶자왈은 인간의 손을 많이 탔기 때문인지 가시덤불이 많다. 눈 앞에 곶자왈이 보이는데도 막아서는 가시덤불 때문에 곶자왈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곳을 이야기할 때는 가시덤불을 빼놓을 수 없다. 곶자왈지대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자체 지형지질의 특성 때문도 있지만 숲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주연부의 호위식물의 위용 때문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숲 주연부에 일반적으로 무시무시한 가시를 가진 식물과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간 덩굴식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찔레꽃, 두릅나무, 머귀나무, 실거리나무, 산초나무처럼 잎이나 표피가 변해 만들어진 식물들도있지만 보리수나무, 산유자나무 처럼 어린가지가 가시로 변한 식물들도 있어 숲 가장자리를 통과하는 것이 매우 힘들어진다. 여기에다 개다래, 다래, 섬다래, 노박덩굴, 줄딸기, 으름덩굴, 댕댕이덩굴 등 다양한 덩굴식물들이 바닥에서부터 교목류의 수관부에까지 엉켜있어 발을 잡는다. 뿐만 아니라 혹쐐기풀이나 애기쐐기풀처럼 털에 포름산 같은 화학물질을 가져 사람이나 동물에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다양한 무기들로 천연의 호위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의 수간을 휘감은 덩굴식물은 생존을 위한 노력의 산물로 뭔가 어수선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과거와 현재의 식생변화 등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숲의 가장자리는 숲을 보호해 주는 역할도 하지만 궁극에 이 숲이 주인이 될 식물들이 안정적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주연부에는 장차 이 숲의 주인공들이 자라게 되며 일정시간이 지나면 아낌없이 그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나무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밀어낸 종들이지만 그들로 인해 보호를 받으니 감사해 할 일이며 인간도 옷이나 피부를 찔러오는 가시덤불을 귀찮게만 여길 일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