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지키기 위해선 문화 주인 돼야
[무형문화유산, 역사의 ‘새숨결’ 불어넣다] <12> 잠녀·잠녀문화 세계화 어디까지
5개년 계획 추진 박차 축제.문화센터 등 외형 치중 내실 주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살아있는 유산의 힘과 문화적 다양성은 정말 중요하다. 이 것이 무형문화유산 보호가 필요한 이유다"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1999년부터 두 차례나 유네스코(UNESCO) 사무총장을 지낸 마츠우라 고이치로씨(74)는 이 말로 '무형문화유산'을 설명한다. 무형문화유산 뿐만 아니라 '문화'라는 범주 안에 우리가 유산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중요하다. 그는 무형유산 보유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을 주문했다. 그것이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자연자원 관리 토대를 만드는데 큰 힘을 준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 무형문화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
마츠우라 전 사무총장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그가 2003년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탄생시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세계 각국이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최초의 무형유산 보호 국제협약인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이 채택될 때까지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사무총장을 지낸 1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역시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채택을 꼽는 그다.
무형문화유산협약 체결 이후 2006년부터 본격 시행해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적 노력의 기틀을 세웠다. 임기를 마친 2010년부터는 유네스코 특사를 맡아 유네스코 산하 각종 문화재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에 무형유산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그를 바탕으로 제주 잠녀?잠녀 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디딤돌을 놓기 위한 이번 취재 과정은 마츠우라 전 사무총장의 말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유네스코가 오랫동안 공들인 보존 대상은 유형문화였다. 최근에야 주목의 대상이 된 무형문화유산은 살아있는 사람들로 전승되는 문화를 말한다. 지구 어디에 살든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고 향유해 왔다. 유적이야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을 겪지 않는 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무형문화는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 번 고리가 끊어지면 그 문화는 결국 인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 '살아있는'에 대한 해석 중요
몇 번이고 강조했던 이야기를 연말 다시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올해 제주잠녀 잠녀문화의 세계화를 중점 사업으로 제시하며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일단 여기까지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후의 작업에 있어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다. 도의 작업은 앞서 유네스코 자연과학 부문 3관왕과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이라는 '성적표'를 챙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프트웨어적인 부분 보다는 일단 하드웨어나 눈에 보이는 부분에는 다소 성급하다 싶을 만큼 속도를 낸다.
올해 역시 잠녀문화세계화 선언 이후 진행된 것은 전승보존위원회를 출범하고 '해녀축제'를 규모화 했으며 2013년까지 20억원을 들여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해녀박물관' 인근에 '해녀문화센터'를 건립한다는 것이 전부다.
아직 잠녀나 잠녀 관련 문화가 문화재로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이나 불턱과 해신당은 자연 유산 범주에 집어넣었고, '해녀공연' 상설화가 가능한 공연시설이 포함된다.
유네스코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해 '살아있는 문화'라는 조건을 못 박고 있다. 전통을 지키려면 당연히 '잠녀'가 문화의 주인이 돼야 한다.
잠녀와 그를 둘러싼 공동체에게 잠녀문화 유네스코 등재 등과 관련한 목소리를 듣겠다는 워킹그룹은 단 한차례 모임을 가진 뒤 유야무야됐다.
문화재청은 내년부터 2020년까지 9년간 우리 민족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종합조사에 들어간다. 지난 1968~1979년에 실시된 제1차 전국민속조사에 이은 후속조사로서, 약 40여 년이 경과한 현재 시점에서의 삶의 양식변화, 무형유산 기초자원, 전승실태를 파악하여 합리적인 보전·지원 정책 개발에 활용될 예정이다. 그동안 음악·무용 등 예능 부문과 공예 부문으로 한정되어 있던 무형문화재의 분야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의 분류체계와 같이 구전 설화, 전통 표현, 민간신앙, 의·식·주 생활문화, 통과의례, 전통지식 등으로 확대하여 조사가 이뤄질 계획이다. 그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양동마을서 세계문화유산 배운다 좌혜경(문학박사·민속학)
이 중 경주 양동(良洞)마을은 양반 집성촌으로 조선 중종 때의 관료인 월성손씨(月城孫氏)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1463-1529)과 사림 오현(士林五賢) 중의 한사람인 여강이씨(驪江李氏)가문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으로 대표되는 유학자와 관료로서의 영광을 자존으로 지켜나가고 있었다. 조선조 양동마을의 손, 이씨는 경주권의 대소과 합격자와 관리를 많이 배출하여 사림을 조직하고 동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토지, 노비로 대표되는 확고한 경제적 기반을 토대로 조선 성리학의 중요한 산실인 옥산(玉山)과 동강(東江)서원을 설립하여 활발한 정치, 사회적 활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그 문화적 자취를 남겼다. 양동마을이 1984년 12월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후 과거 학자와 선비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후손들은 버린 것 놓친 것 없이 과거와 현재의 모습 그대로 조상의 얼을 잘 간직하고 보존하였다.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안강들의 풍요를 배경으로 위풍당당한 고택들과 함께 그 곁을 장식이라도 하듯 듬뿍 정을 담은 아담한 초가들이 마치 동양화 여러 폭을 펼친 것 같은 정경이다.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과 중요민속자료들은 후세대 교육과 유교정신의 기반이 되고 있다. 여강이씨 종가인 무첨당(無?堂, 조상에게 욕되지 않는다), 월성손씨 종가 서백당(書百堂, 하루에 참을 인자를 백번 쓴다)은 대종가의 정신적 맥을 담고 있으며, 관가정(觀稼亭)이나 이언적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향단(香壇)등은 뛰어난 건축미학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 세대를 통해 내려오는 가문의례인 묘제나 문중행사 등에서 후손들은 옛날 격식을 갖춘 행사에 참여하며 종가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고 대종가의 일원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조선조 화려한 유교의 맥은 미래의 삶의 가치로서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관광지가 아닌 불편한 마을'을 지향하는 이지관 마을 이장님의 말씀처럼, 그곳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의 힘은 살아 숨 쉬는 원동력이 되어 전통의 빛이 바라지 않고 그대로다. 우리의 성읍민속마을은 조선조 500년 동안 정의현의 현청소재지인 마을로, 중요민속자료 6건, 중요무형문화재 1건, 도지정 유?무형 민속자료 등을 합치면 24건에 이른다. 제주지역의 전통적인 경관과 다양한 문화가 유지되고 있어 1984년 6월 국가중요민속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으나 민속적 전통의 맥과 가치 보존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관광지로 인식되면서 많은 변형이 이루어졌다. " 세상과 같이 흐르면서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양동마을"처럼, 지역주민 공동체가 가진 제주민요를 비롯한 전통주 빚기, 걸궁과 마을 포제 등 일련의 세시민속행사, 초가 등 유?무형유산의 지속적 보존이 이루어져 진정성 있는 제주 전통마을로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겨지며, 이후 세계적 보물 양동마을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