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과 해안지역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

[곶자왈 대탐사Ⅱ: 객원기자 김대신의 곶자왈 10년 생명을 읽다] <12> 다른 세계, 다른 생태계 곶자왈

2012-01-27     제민일보

▲ 교래곶자왈 팥배나무
지난 편에서 곶자왈지대는 다양한 식물상에서 희귀식물과 특산식물들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제주도의 동서지역 식물상을 구분하고 특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살펴봤다. 곶자왈 식생의 특이성과 중요성은 곶자왈이 세상에 알려지는 궤를 같이 하여 인정받고 있다. 알려졌다시피 곶자왈은 지반이 흙이 아닌 암괴덩어리, 즉 돌무더기로 구성돼 있어 토양의 발달이 빈약하다. 이런 전석지대의 특성은 깊은 토양층을 요구하는 식물이나 대나무와 잔디처럼 길게 뻗으면서 자라는 종류들은 적응하기 매우 어렵고 지형특성상 수생식물이 자라기에는 매우 힘든 조건이다. 때문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을 곶자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수한 지형에는 독특한 식물들이 적응하게 되는 이유다. 이는 특정지역에 자라는 식물들의 생활형 분석으로 주변지역과의 식물에 있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 독특한 생활형

식물의 생활형(Life form)은 식물들이 기후대나 지역적인 특성과 환경에 순응하여 살아오면서 오랫동안에 걸쳐 만들어낸 모양과 기능을 유형화한 것으로 식물이 환경이 가장 좋지 않을 때 견딜 수 있는 겨울눈의 위치에 따라 지중식물, 지상식물, 반지중식물, 지표식물, 수생식물, 1년생식물 등으로 구분한다(Raunkiaer, 1934년). 일반적으로 사막에는 1년생 식물이 많고, 열대 다우림에는 지상식물(地上植物)이 많으며, 아한대 다우 기후에는 반지중식물과 휴면아(休眠芽)가 땅속에 있는 다년초로 겨울에는 지상부가 마르는 지중식물이, 한대기후에는 휴면아가 지표면의 0∼30㎝ 이내에 있는 지표식물(地表植物)이, 온대 지방에는 휴면아가 지표 바로 밑에 있는 반지중식물(半地中植物)이 많은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곶자왈지대의 경우를 살펴보면 지상식물은 많고 수생식물은 적은 편으로 기반지형이 크고 작은 암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제주도에 분포하는 전체 식물의 생활형과 비교해보면, 곶자왈지대의 식물들은 지상식물의 비율이 높은 반면 수생식물의 비율은 낮아 차이를 보이며, 큰 차이는 없지만 착생식물의 비율도 조금 높은 것이 특징적이다. 수생식물이 빈약한 이유는 지질의 영향으로 곶자왈내에 빌레가 발달한 선흘곶자왈지역을 제외하면 습지가 형성된 지역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곶자왈지대의 특성상 용암제방, 용암원정구 등 특이 지질구조가 많고 다양한 크기의 암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변보다 높은 공중습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착생식물의 분포가 많다.

곶자왈지대에서는 함몰지형의 사면을 따라 암괴들 사이로 길게 뿌리를 뻗치며 자라거나 장근(張根)을 세워서 자라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열악한 기반지형에서 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방식으로 열대지방에서 볼 수 있는 판근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편평한 빌레용암류가 혼재하는 지역에서는 넘어진 나무를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이는 토양층 형성이 양호한 다른 지역과 달리 곶자왈지대에서는 수목들의 주근(主根)이 발달할 수 없기 때문에 강한 바람에 넘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곶자왈지대에 분포하는 식물들의 생활형 중 지하기관 즉, 뿌리부의 형태에 따른 생활형을 보면 지하나 지상부에 연결체를 형성하지 않는 식물들이 52% 정도로 가장 많은 편으로 이는 곶자왈지대가 지형지질 특성상 토양형성이 빈약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식물 지상부의 형태와 생육의 상태를 유형화한 생육형(Growth form)을 보면 지상부에 주축이 분명한 종류인 직립형이 50%로 가장 많고 줄기가 타물에 감기거나 기어 올라가는 넌출형도 20% 이상이 분포하고 있어 특징적이다.

# 곶자왈지대의 한정분포식물들

▲ 꿩의비름
곶자왈지대는 국내 어느 지역보다 독특한 지형 지질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만 적응하고 있는 식물들이 있다. 제주고사리삼, 곶섬잔고사리, 밤일엽아재비, 백서향, 빌레나무, 숫돌담고사리, 큰톱지네고사리, 이팝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는 제주고사리삼, 밤일엽아재비, 빌레나무는 그 지역의 특이한 지질구조와 맞물려 독특하고, 제한된 지역에만 자라고 있어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백서향, 가시딸기, 이팝나무처럼 곶자왈지대에 고른 분포를 보이는 종류도 있다.

이외에도 제주도내 다른 지역에도 자라지만 그 분포나 자생지 대부분이 곶자왈지대를 중심으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시딸기, 개가시나무, 밤일엽, 무환자나무, 녹나무, 섬다래, 약난초, 난티나무, 큰봉의꼬리, 섬다래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곶자왈지대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식물은 곶자왈지대를 상징하는 식물처럼 인식되고 있으며 앞으로 보다 작은 마을단위의 곶자왈들을 대표하고 상징할 수 있는 소재들이 될 것으로 보아진다.

# 생물다양성의 한축, 곶자왈

제주도의 식물상처럼 곶자왈지대도 다양성과 독특함이 공존하고 있다. 현존하는 식물상을 보면 특히 계곡과도 많은 공통인자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제주도의 식생대로 볼 때 곶자왈지대에 자라는 식물은 그 제주도의 대표적인 난대식물들과 온대성 식물도 상당수가 포함되어 그 다양함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곶자왈지대가 고유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어 해발고도에 상응하는 식생이 형성되어 있으며 인위적 또는 자연적인 간섭에 의해 형성된 2차림과 주변식생요소들이 혼재되는 추이대나 주연부 및 지대 등 다양한 요소들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전체 식물상을 보면 곶자왈지대의 가치와 역할을 충분하게 느낄 수 있다. 제주식물의 특별함과 고유함을 자랑하는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에는 약 550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곶자왈지대에도 약 600종류 이상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 곶자왈지대가 식물다양성을 받쳐주는 충분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곶자왈지대는 고산지역과 해안지역을 이어주는 충분한 '소통의 공간'으로 다양성을 유지하는 바탕이 되어 중요한 생태축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