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역사의 공간에 발 멈추다
제주, 길에서 묻다-모슬포 알뜨르 ‘눈물길’
조선 시대 유배의 기억 넘어 근·현대사 그늘 벗어나지 못해
일제 군사기지·섯알오름 ‘백조일손’ 등 아릿한 동통과 동행
무언가가 땅 밑으로 끌어내리는 느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 길에만 서면, 그저 그 길만 생각하면 그렇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사연이 많기도 힘들다. 어느 순간 편하게 마음 한 번 내려놓지 못하고 하릴없이 걸음만 옮기게 되는 길. 섬을 감싸는 길에서 역사를 읽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지만 온전히 대면하는데 보통 내공으로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바닥은 평평하지만 칭칭 가슴을 옭아매는 친친한 기운에 제대로 발을 딛기가 어렵다. 역사가 만들어낸 깊은 골이다.
# 외세 거친 발길 ‘못살포’
길을 나섰다. 일제의 대미 최대 일선 대공방어기지에서 민간 학살의 현장으로 다시 한국전쟁 당시 군사시설로, 제주 서남부 대정읍 모슬포 알뜨르 땅은 기억해야할 역사의 공간으로 제주 근·현대사의 한 가운데 서있다. 하지만 섬의 바람은 그보다 더 멀리 가야 한다 연신 등을 떠민다.
요상한 기계음을 휘날리며 시간을 되돌려 찾아간 그 곳은 회한과 원한 따위로 범벅이 돼 있다. 그냥 길을 걸을 뿐이다. 제주 섬에서 가장 모질게 바람이 불어서, 태평양을 향한 넓은 가슴 탓에 외세의 거친 발길에 뭇매를 맞은 탓에 ‘못살포’라 불리는 그 곳은 쉽게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다.
공들여 찾아간 길, 어김없이 바람이 불고 짙은 안개 끝에 추적추적 비까지 흩뿌린다. 잔뜩 웅크린 어깨에 어설프게 뜬 눈 앞으로 흐릿한 그림자가 지나간다. 하나가 아니다. 둘, 셋 아니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인간 군상이 무리를 지어간다. 애를 써도 표정을 읽을 수 없다. 대신 아릿한 동통이 후벼 파듯 가슴을 때린다. 아프다.
근·현대사의 상처는 무딘 날로 만든 상처마냥 쉽게 아물지 않는다. 사실 그 길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많은 역사를 품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하는 묘한 느낌의 올레 11코스며 집념에서 인연, 사색으로 이어지는 추사 유배길이 동맥처럼 과거를 실어 나른다.
# 아직 아릿한 근·현대사의 상처
휘적휘적 마을 안으로 들어서다 멈칫 발이 멈춘다. 시계는 ‘1950년 8월 20일 새벽 4시’를 가리킨다.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제주4·3이 진정된 후인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예비검속된 210명의 마을 쥔들이 감금됐던 을씨년스런 고구마 저장소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생활용품 매장으로 모습을 바꾼 지 오래다. 앞으로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이른 새벽 끌려 나갔던 사람들은 까닭도 모른 채 목숨을 잃고 암매장됐다.
송악산의 바닷가 해안절벽에는 일제 강점기의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이 미군의 본토 상륙에 대비하기 위해서 제주도 구축한 ‘결사항전’기지의 흔적이 남아있다.
거친 바닷바람에 제주에서는 흔한 귤나무 하나 제대로 볼 수 없는 황량함의 상징인 이곳은 단지 태평양을 향해 있다는 이름으로 근·현대사의 굴곡을 뒤집어썼다.
아직도 남아있는 알뜨르 비행장의 흔적은 중국을 폭격하는 중간기지에서 전쟁말기 ‘결7호 비밀작전지역’으로 미국 상륙에 대비한 군사력 집중기지였던 아픔으로 점철된다. 해안진지 동굴, 19개의 격납고, 잔디밭 활주로 등 일제의 흔적은 ‘근대 건축문화유산’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보태지며 기억되고 있다. 단순히 기지만 보면 그 터 어느 한 구석 대정 주민들의 땀과 피가 어리지 않을 곳이 없을 정도다.
아프다는 소리 한번 제대로 내보지 못했던 그 곳을 살피는 내내 발이 무겁다. 다 채워지지 않는 안타까움에 ‘들어가면서 울고 나오며 다시 우는’ 섬의 사정이 밟힌다. 더디 가라, 그만가라. 3월을 다 넘기도록 기세등등한 칼바람이 귀를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