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껴라 표현해라 그리고 즐겨라!

[제주교육 희망순례] 5.찾아가는 미술관

2012-04-16     변지철 기자

2년차 제주도립미술관 '찾아가는 미술관' 발산의 힘 확인

지난해 섬 학교 이어 조천초 교래분교서 교육 효과 ‘톡톡’

하얀 도화지 같은 아이들을 위해 미술관이 움직인다. 상상 무한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은 사실 우리 가까이에서 열린다. 미술관의 ‘문턱’을 없애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찾아간다는 시도는 숨겨진 소질을 찾아내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현하는 긍정의 효과로 이어졌다. 흔히 말하는 미술 영재 교육 같은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가장 밀접한 것과 미술을 연결하는 기분 좋은 시도다. 그 결과가 바로 ‘예술가’라는 꿈으로 이어질 거라 누구도 장담하지 않는다. 언젠가 미술과 관련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신선한 자극이면 충분하다.

 


△ 무한한 가능성 '희망'을 말하다

미술관은 조금은 어렵고 불편한 공간이다. 그냥 ‘미술관’이란 말에 적어도 책 몇 권을 뒤져 정보를 축적하고 옷도 갖춰 입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부담감이 엄습한다. 불편한 선입견은 지역 안 문화 공간에 대한 거리감으로 이어진다. 제주도립미술관(관장 부현일)의 ‘찾아가는 미술관’은 조금이라도 가깝게 미술관을 느끼게 하자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소품 같은 것을 가지고 지역 공간에 미술관을 만드는 소극적인 형태가 아니라 누구나 미술가가 되고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을 주변에 선보이는 즐거운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것으로 익숙한 공간을 미술관으로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지난해 추자초와 추자초 신양분교, 저청초, 함덕초 선인분교·선흘분교, 김녕초등학교 동복분교 등 섬 안의 섬 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5차례에 걸쳐 진행된 ‘찾아가는 미술관’의 점수는 “참 잘했어요”다. 하늘과 바다의 눈치를 보며 몽글몽글 만들어낸 작품들은 올해 초 제주도립미술관에 전시됐다.

친구들의 얼굴을 그린 OHP초상화와 합동 조형 수업을 통해 만들어진 삶 속에 투영된 배 8척, 그리고 아이들의 바람이 담긴 ‘빌딩’ 조형물 등 아기자기 전시장을 채운 180여 작품들로 어린이 228명에게 ‘작가’라는 특별한 이름표가 붙여졌다. 찾아가는 미술관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들에 배를 타고 미술관을 찾은 아이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이러한 시도는 미술이 어디까지나 ‘표현의 예술’이라는 발상에 기초를 뒀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술을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 또는 ‘그들이 만든 작품을 보는 것’이라는 수동적인 개념이 아닌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정리하고 고민하며 표현하고 공유하는 것이란 걸 스스로 느껴가는 과정 자체가 찾아가는 미술관인 셈이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현실’로 만든 아이들은 하나같이 “흥분된다!”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어른들의 바람을 담은 공무원이나 선생님, 모두의 주목을 받는 연예인이나 축구 선수 같은 천편일률적인 꿈이 작업을 하는 동안 조금씩 세분화된다.

당장은 미술작품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생각하는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른다.

 

△ 미술은 즐겁다!

“이번 시간을 통해 미술이 참 좋아졌고 재밌다고 느꼈어요”

올해 ‘찾아가는 미술관’의 첫 발자국이 조천초등학교 교래분교(교장 이용철)에 찍혔다.

지난 한 해를 꼬박 기다린 탓에 9일과 10일 이틀의 시간은 말그대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교래분교 어린이 18명들은 이내 ‘미술관’에 빠졌다. 미술관이란 공간을 이해한 뒤 바로 친구의 얼굴을 투명한 OHP 필름지에 그리는 ‘OHP 초상화’,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의 감정(희노애락)을 몸의 표정으로 표현하는 ‘몸으로 말해요’등의 프로그램을 진행됐다.

이날 ‘찾아가는 미술관’은 희노애락의 감정 중 아이들의 ‘락(樂)’에 집중했다.

교래분교 아이들이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꼽은 ‘축구’를 주제로 작업이 진행됐다. 미리 약속을 한 것이 아닌 탓에 당장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까하는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그냥 공을 차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축구와 관련한 기억을 ‘작품’으로 바꾸는 일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것 대신 “자 우리 한번 해보자”하는 말로 시작됐다.

‘바디 트레이싱(Body Tracing)’ 수업을 위해 3개팀으로 나뉜 아이들은 각각 모델이 될 친구를 정하고 주어진 재료로 친구가 연출하는 동작을 만들어 내는데 집중했다.

모델이 된 친구들이 저마다의 기억을 더듬어 공을 막고 또 공을 쫓고 슈팅을 하는 동안 아이들의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늘 왁자하던 교실은 집중한 아이들의 열기로 이내 후끈 달아올랐다.

혼자서는 많은 시간이 들었을지 모를 작업은 전교생이 머리와 손을 보태며 순식간에 진행됐다. 그동안 단체 작업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분업의 효과나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을 때의 결과 같은 사회성도 배웠다.


△미술, 소통의 힘!

아이들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길잡이 역할은 한국화가 조기섭 작가(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 원장)가 맡았다.

지난해부터 ‘찾아가는 미술관’ 수업을 맡아온 조 작가는 아이들과의 소통을 우선으로 꼽는다. 찾아가는 미술관이라는 틀만 있을 뿐 ‘무엇을 어떻게’는 늘 빈 칸으로 둔다. 자신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수업을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도 소통을 위해서다. 길지 않은 시간 다양한 아이들의 개성을 옹기종기 모아 ‘완성’이라는 목표에 닿기 위해서는 많이 듣고 공통된 무엇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질문 다음은 경청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과정에서 함께할 거리를 찾아낸다.

추자도 아이들에게 ‘배’와 섬에는 낯선 ‘고층 건물’의 의미를 끄집어낸 것도 이런 과정이 있어 가능했다. 누구는 그리는 것을, 누구는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자르는데 소질이 있거나 색을 고르고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도 대화를 통해 찾아내고 희망에 따라 역할을 나눠준다.

아이들은 자신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조원장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머뭇거리며 한·두마디를 하더니 아이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함께 듣는다.

이런 공감과 공유의 과정은 또 아이들 각자의 마음 속 상처를 감싸 안는 ‘미술치료’ 효과로도 이어진다.

조 원장은 “가뜩이나 접할 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에 ‘잘 그리지 못해서’라는 단편적 이유로 미술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미술은 성적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표현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런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찾아가는 미술관’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변지철 기자 jichul2@je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