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의 매력 한껏 뿜어내는 오름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25>금오름
정상까지 차로도 가능…전체 탐방 2시간
금오름은 사내의 매력을 뿜어내는 오름이다. 우선 몸이 잘 빠졌다. 비고가 도내 368개 오름 가운데 10번째로 높은 반면 면적은 31번째로 넓다. 높이에 비해 면적이 상대적으로 작은 만큼 금오름의 외관은 군살이 없는 훤칠한 사나이다. 정상부엔 화구호가 있다. 멋있는 남자의 시크한 미소처럼 금오름 멋의 화룡점정이다. 다른 오름들도 산체는 금오름과 견줄 수 있겠지만 산정화구호까지 갖기는 힘들다. 중산간 북서부지역 목장지대에 우뚝 서서 그림 같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대로도 각광받는 금오름이다.
금오름은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산 1-1, 1-2번지)에 위치한 단성화산(표고 427.5m)이다. 서부중산간 지역의 대표적 오름의 하나로 산정부에 깊이 52m의 대형 원형분화구와 화구호를 갖고 있다. 오름 북서쪽 자락에 금악마을이 위치해 있으며 남북으로 2개의 봉우리를 두고 동서로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안부(鞍部)가 이어진다.
금오름은 서부중산간 목장지대에 우뚝 솟아 높아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큰 오름이다. 비고가 178m로 368개 오름 가운데 10번째로 높다. 면적도 31번째로 넓어 61만3966㎡에 달한다. 저경은 1008m, 둘레는 2861m다.
금오름의 어원은 분분하나 '검은오름'에서 비롯된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현재 금오름 앞 안내 표석에도 '검은오름'이라 적혀 있다). 한자 표기 금물악(今勿岳)· 흑악(黑岳)·금악(今岳) 등에서 공통점을 보이는 '금' 또는 '검' 소리는 고조선시대부터 신(神)이란 뜻으로 쓰여 온 검·감·곰·금 계통의 말이어서, 금오름은 신이란 뜻을 가진 오름이란 해석이 있다. 반면 '검을' 또는 '검은'의 훈독자인 금물악(今勿岳)으로 표기되던 것이 한자표기과정에서 금악으로 생략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 만큼 신성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다.
주차장(〃B)에서 탐방로로 들어서면 바로 샘물 2개다. 지하수처럼 솟는 게 아니라 금오름 정상과 사면에 내린 빗물이 스코리아층으로 스며들었다 흘러나오는 샘이다. 오른쪽 것은 사람들이 식수로도 이용했던 것으로 '생이물(〃C)'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왼쪽은 마소를 먹였던 물이다.
조금 올라가면 왼쪽으로 야자수매트가 깔린 탐방로 입구(〃D)다. 3분여를 올라가면 '희망의 숲길'이란 이름이 붙은 둘레길과 정상부로 올라가는 갈림길(〃E)이다. 둘레길 2㎞는 2009년9월부터 공공근로사업으로 조성한 뒤 지난해 봄 야자수 매트를 깔고 정비를 완료했다.
금오름의 야자수매트는 풍부한 화산재 덕에 오름과 하나가 된 듯 밀착돼 있어 답압에 의한 훼손을 저감시킴은 발을 내딛으며 느끼는 '발맛'도 좋게 한다. 비 날씨에는 더욱 강점을 가진다. 야자수매트의 희망의 숲길을 돌고 나와 시멘트 포장길을 이용해 정상으로 올라가면 비 날씨임에도 발에 흙 한 톨 안 묻히고 오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맑은 날도 좋다. 숲을 이뤘던 사면을 돌며 조성된 만큼 걷는 기분이 좋다. 숲길을 50분정도 따라가다 보면 시멘트포장길과 만나게 된다(〃F). 시멘트 길을 따라 정상으로 가도 되지만 내려와 오름 내부 탐방로를 이용하는 게 낫다. 다시 탐방로 입구(〃D)에서 올라가 만나는 갈림길(〃E)에서 우회전하면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정상부 입구까지(〃G)는 620m로 20분 남짓이면 충분하다.
금오름은 자체 비고도 높은 데다 목장지대 가운데 있어 좋은 경관을 제공한다. 누운오름과 이달봉·새별오름·북돌아진오름·정물오름·당오름·도너리오름·문도지오름·저지오름 등 가까이 있는 오름들과, 그 뒤로 멀리 겹쳐지는 오름군들의 실루엣은 제주에서만 가능한 명품 '산수화'다.
정상부는 한 바퀴는 930m 정도여서 15분 정도 소요된다. 북봉(〃I)에서 눈에 들어오는 푸른 한림 앞바다와 비양도가 빚어내는 풍광도 한 폭의 그림이다. 금악담(今岳潭)이라 불리는 산정화구호(〃K)는 예전 같지 않아 물이 마르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엔 큰 비가 잦은 덕에 풍부한 수량으로 양서·파충류들의 좋은 서식공간이 되고 있다.
정상부에서 하산은 시멘트포장 길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다소 떨어지는 '발맛' 대신 동남쪽의 오름들이 있다. 주차장까지 10여분이다. 둘레길 트레킹에 55분, 정상부 탐방에 50분 등 전체 2시간이면 '2가지 코스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다만 금오름의 최대 약점은 주변에 양돈장이 많고 목장이 있어 풍향에 따라 종종 실려 오는 불쾌한 냄새다.
오름 외사면에는 해송림이, 화구호를 중심의 상부지역 내외사면에는 참억새가 우점하는 초지대가 형성돼 있다. 해송림 하부에는 올벚나무·쥐똥나무·상동나무·초피나무·가막살나무·까마귀밥여름나무 등과 곰비늘고사리·금창초·뱀딸기·참반디 등이 자라고 있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외사면에는 제주특산식물의 하나인 섬오갈피나무도 드물게 볼수 있고, 화구호 주변에는 삼백초·물부추 같은 수생 멸종위기야생식물들도 분포해 식물학적으로도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철웅 기자
| "양서·파충류 최고 서식지
정상배 박사(습지생태)는 "금오름의 경우 사람이나 소·말의 출입이 잦아 식물에선 교란이 많이 일어났지만 동물 쪽에는 다양성이 뛰어난 곳"이라고 말했다. 정 박사는 "양서류 가운데 맹꽁이 개체수가 가장 많다. 밀집 군락지 가운데선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최다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금오름에는 맹꽁이를 필두로 참개구리·무당개구리·청개구리·북방산개구리 등 도내에 서식하는 양서류는 다 있다"면서 "이러다보니 금오름은 먹이사슬의 상위계층인 파충류 등도 많이 서식하면서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파충류에선 쇠살모사와 유혈목이(꽃뱀)가 많고, 개구리와 뱀을 먹이로 하는 매·말똥가리 맹금류와 백로·왜가리·오리 등 새들도 날아온다"고 부연했다. 비가 많이 오면 화구호에 물이 고이지만 가물 때는 말라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금오름에 양서류가 '번성'할 수 있는 것은 '진화'의 힘이다. 그는 "양서류는 가물면 다른 곳을 찾아가는 놈, 숲속으로 숨어드는 놈, 땅속에 들어가 비를 기다리는 놈 등 종류마다 다르다"면서 "물은 알을 낳을 때 꼭 필요한데, 계속 진화를 거치면서 그 시기를 장마와 맞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저지대에선 금오름처럼 넓은 습지를 분화구에 가진 오름이 없다"고 평가한 정 박사는 "금오름에는 삼백초와 물부추 등 습지식물이 자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그는 "금오름 등 도내 대표적인 습지인 화구호는 형태도 외국과 달라 식생도 독특하다"며 "수량이 풍부한 일본의 분화구 등과 달리 제주도는 수심이 낮아 차고 마름이 반복되다 보니 습지식물들이 고도에 맞게 적응, 내려올수록 다양해지는 특징을 보인다"고 밝혔다. 김철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