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오하고 심심해 죽을 것 같던 아이들에게 특효약은?

[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 여행학교]<8>1박2일 동안 배 타고 루앙프라방까지-2

2012-06-29     양학용

▲ 1박 2일 동안 메콩 강을 타고 루앙프라방 가는 길
 그러니까 배를 타고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1박2일의 일정 중에 둘째 날 아침이었다. 강마을 팍뱅에서 모둠별로 흩어져서 하룻밤을 보내고 선착장으로 나갔을 때는 전날과는 달리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슬로우 보트의 좌석을 채운 상태였다. 그때 희경이가 선착장으로 막 뛰어내려왔다.  

 "삼촌, 어떡해요? 성호하고 승현이가 없어졌어요. 윤미하고 나랑 먼저 가 있겠다고 빨리 오라고 했는데, 안 와서 가봤더니, '짜식'들이 게스트하우스에도 없어요. 삼촌, 어떡해요? 이 자식들 어디 간 걸까요, 삼촌?"

 배는 시간이 아직 남았음에도 떠나겠다고 부르릉거렸다. 아내와 나는 다음 배로 옮겨 탔다. 기다렸다가 두 녀석과 함께 타고 갈 요량이었다. 첫 배로 출발하는 아이들에겐 먼저 가서 루앙프라방 선착장에서 기다리라고 일러두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태운 배가 막 출발하는 순간. 성호와 승현이가 헐레벌떡 나타났다. 그들은 떠나고 있는 배를 보고는 얼굴이 새하얘졌다. "어…어…" 말문이 막힌 채로 자신들 눈앞에서 점점 땅과 멀어지는 배를 보면서 '얼음 땅' 놀이를 하는 꼬마들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잊기 힘들 듯하다. 두 녀석의 그 막막한 눈빛이라니! 자신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뇌 속의 인지기관이 전혀 판단하지 못한 채 돌덩이처럼 서있었다. 반면에 배에 먼저 탄 아이들은 이 상황이 재미있어 죽을 지경이다. 한 아이도 빠짐없이 장난기를 발동시킨다. 망부석이 되어버린 두 녀석을 향해 마구 손을 흔들며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성호야, 안녕! 잘 있어~!"
 "승현아, 힘~내!"

 다음 배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부부를 발견하지 못한 두 녀석. 그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다음은 열다섯 살 승현이의 일기다.

 "누나들은 늦는다고 약속 장소를 말해 주시고 먼저 가셨는데 그게 참…. 하~ 약속 장소를 제대로 못 들어서 다 챙기고 일단 다짜고짜 선착장에 가보았지만, 아! 그렇게까지 밑으로 가보진 않았는데, 사람이 없어 당황한 나랑 성호 형은 (우리 숙소 기준으로 위쪽으로 올라 가야하는 쪽의) 상훈이 형 숙소로 가보았지만 당연히 없었고, 혹시나 해서 다시 선착장으로 내려 가보니 삼촌과 이모만 빼고-그 당시에는 당연히 다 타서 떠나는 줄 알았지만-다 배에 타서 손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우린, 아니 나만 그랬나, 당황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첫 낙오자들이 생긴 셈이다. 아내와 나, 그리고 이들 두 명의 낙오자를 태운 배는 1시간 후에 출발했다. 이제 아이들로부터 떨어진 두 아이는 심심해서 어찌할 줄을 모른다. 이번에는 열일곱 살 성호의 일기를 들여다보자.

 "보트를 타는 내내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다. 승현이와 '카드게임→mp3→잠→카드게임→mp3→잠'을 무한반복 했다. 얼마나 했을까, 드디어 도착했다. 애들을 보는데 조금 미안했다. 나 때문에 다들 기다리는 것 같아서…."

▲ 슬로우 보트를 장악해버린 해적(?)들.
 말하자면, 두 녀석들에게는 8시간 동안 무한반복의 심심함이 그날 늦게 나온 것에 대한 '벌'이었던 셈이다. 반면 우리 부부는 또 다른 벌을 받아야했으니, 전날에 술 마시고 담배 피고 엉망진창의 여행문화로 우리들을 힘들게 했던 그 영국 청년들이 또 함께 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숫자가 바퀴벌레마냥 밤사이 두 배나 늘어났다. 오늘은 또 어쩌자고 자기들 몫의 의자들을 전부 빼내어 배의 갑판천정 위로 올리더니, 배 바닥에 줄지어 드러누웠다. 아마도 밤새 술을 퍼마신 모양이다. 그래, 차라리 자라, 응. 이러한 나의 바람과는 달리 놈들은 겨우 한 시간 정도 만에 한두 명씩 일어나더니 음악을 틀고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펴대기 시작했다. 늘어난 숫자만큼 담배연기의 양도 '빠끔빠끔' 곱절로 생산해대며 선량한 승객들을 괴롭혔다. 그때 내 앞자리의 덩치가 크고 구레나룻이 멋진 미국인 중년남자가 녀석들에게 한 마디를 했다.

 "당신들만 타고 가는 배도 아닌데, 음악 볼륨 좀 낮추면 좋겠는데요."

 그랬더니, 놈들 중에서 체크 모양의 영국신사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왼쪽 눈썹 끝에 피어싱을 멋지게 한 녀석이 입을 비틀어 비아냥거리듯이 대답했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아~, 음악? 좋죠!"  

 하지만 대답과는 반대로 음악 볼륨을 더 높여버린다. 용감했던 우리의 미국 아저씨 할 말을 잃고 돌아서고, 나는 덩달아 한숨을 쉰다. 그래도 강은 멈추지 않고 흐르듯이 시간도 배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나아갔다. 그렇게 뽀얀 담배연기와 함께 하루의 해가 저물어갈 즈음 우리들 낙오자 그룹은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먼저 출발했던 아이들이 선착장 어귀에 배낭을 부려놓고 패잔병들처럼 앉아 있었다. 

▲ 아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 넣은 빅트리 카페
 그날 저녁, 여행 떠나 처음으로 모두 같이 한국음식을 먹으러 갔다. 강가에 크고 오래된 아름드리나무 아래에 있어 그 이름이 'Big Tree Cafe'인, 한국인 여사장과 네덜란드인 남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지난 여름에 만났던 여사장이 우리 부부에게 알은체를 하고, 여행학교 친구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러 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여행하면 좋은 점이 있다. 여행길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본능적으로 친절하고 너그러워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봐서 가격을 깎아주기도 하고 실수를 그냥 넘겨주기도 한다. 특히 타국에서 만나게 된 한국 분들의 마음은 더 특별하다. 여기 'Big Tree Cafe'의 사장님도 마찬가지다. 밥이며 반찬이며 계속 퍼다 주시면서도 조금 더 뭘 줄 게 없을까, 궁리하시는 눈치가 역력하다. 난, 그 마음을 알 것 같은데, 우리 여행학교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그들 표현대로 '완전' '대박' 신이 났다. 심심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는 둥, 여행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는 둥,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는 둥, 곧 죽을 것 같은 표정들을 짓고 있던 녀석들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냥 살아난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감동의 도가니라고 표현해야 할 듯싶다. 한국음식은 낙오하고 힘들고 심심해 죽을 것 같은 이들에게 특효약인 셈이다. 어디 그들의 일기장에서 감동의 흔적들을 낚아보자.

 "'빅트리카페'였는데 한국분이 하시는 거였다. 우리 빼고 오랜만에 듣는 한국말이 이렇게 정겨울 수가. 허허허…우린 100년(!)만에 된장찌개와 오리고기와 계란프라이를 먹었다. 이런 감동ㅠㅠ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인 듯." (김도솔·16살)

 "한국인 주인아주머니의 후한 인심, 리필되는 밥, 공짜인 물, 휘황찬란한 사이드 디쉬까지… 향수병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고상훈·20살) 

 "된장찌개, 흰 쌀밥, 김치, 제육볶음… 너무 행복하고 너무 오랜만에 맛보는 맛이라서 세 그릇을 뚝딱 비웠다." (남서희·14살) 

 "정말 정말 맛있었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밥을 2번이나… ㅋㅋㅋㅋ. 아무튼 한국음식을 먹으니까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양나운·15살)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0908y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