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 청보리 물결…그 곳에선 시간이 잠시 멈춘다
[그 섬에 가면] 3. 초록의 섬 ‘가파도’
제주의 6개 산 조망 가능한 곳
다양한 문화유산 또 다른 자랑
평평하고 납작해 바다와 바짝 붙어있는 모양세의 가파도.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해야 20m 정도에 불과하니 오르막으로 숨찰 일은 없다. 해안가를 따라 섬의 풍경을 느끼고, 봄 바람 가득 머금은 청보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하다. 하늘과 바다, 청보리로 채워진 가파도에서 마음껏 취해보자.
▲주목받지 못한 2등
수년전만 해도 가파도는 '애매'했다. 국토최남단 마라도와 모슬포 사이에 위치, 그 존재감이 희미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에겐 그저 마라도로 가는 뱃전에서 잠시 눈으로 흘깃 스쳐지나가는 작은 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가파도를 찾는 관광객들로 온 섬이 출렁인다. 특히 매년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청보리축제 기간에는 모슬포와 가파도를 잇는 정기여객선은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볼 것'이 없었던 가파도에 '청보리 파도'와 함께 '사람의 파도'가 덮친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가파도는 많은 것이 변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2등에서 화려하게 '환골탈태', 제주 최고의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청보리 물결 출렁
가파도를 바꿔놓은 것은 바로 청보리다. 가파도 청보리축제는 2009년 가파도 방문의 해를 맞아 처음으로 열렸다. 이후 5월의 가파도는 청보리 일색이다. 56만㎡의 면적의 청보리밭은 전체 가파도 전체 면적의 60~70%를 차지한다. 게다가 가파도의 청보리는 대부분 '향맥'으로, 제주 재래종이다. 일반 보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그 일렁임은 더 장관이다. 특히 초록의 도화지 위에 펼쳐진 한라산과 산방산, 송악산, 단산, 군산, 고근산 등 6개의 산을 바라보는 순간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다. 5월 가파도의 청보리밭은 노란색 유채꽃, 보랏빛의 갯무꽃, 여기에 검은 현무암 돌담까지 어우러져 더욱 찬란하다.
가파도 주민들에게 보리는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세찬 바람에 나무 한 그루 변변히 자랄 수 없는 척박한 섬에서 식량과 땔감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세간에는 아직도 오래된 품종을 심는다고 타박하자민 어업이 주업인 가파도 주민에게 '향맥'은 손이 덜 가도 잘 자라는데다 보릿대도 커서 땔감으로도 제격이었다.
6월 보리 수확이 끝나면 가파도의 들판은 메밀이 대신하게 된다. 주민들은 그동안 보리농사 후 콩이나 고구마를 주로 심었지만, 올해는 메밀밭을 더 늘릴 계획이다. 때문에 초가을 가파도는 또 한차례 멋진 경관이 펼쳐질 전망이다. 초록의 청보리로 넘실대던 들녘은 금새 황금물결이 일렁이며, 초가을에는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메밀꽃밭으로 변신하게 된다.
세찬 바람과 거센 파도로 섬에서의 삶이 만만하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가파도의 교육열은 제주 본섬의 어느 지역보다 높았다.
일본 와세다 대학 출신인 김성숙 선생이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1921년 지금의 가파초의 전신인 '신유의숙'을 설립했다. 가파초등학교의 전신이다.
특히 김성숙이 만든 '신유의숙가'에는 '화려하다 우리 학교여/ 무궁화 새 가지의 꽃이 아닌가/ 아 잘 배양합시다'라는 후렴구가 있다. 신유의숙은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 하지만 신유의숙가의 후렴구와 무궁화 도안의 모표 사용으로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32년 4월부터 1933년 1월까지 1년 가까이 경찰서의 명령에 의해 중도 폐교되는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신유의숙은 가파도의 문맹 퇴치를 위해 야학을 운영했다. 이 작은 섬에서 항일운동가와 여성운동가가 배출됐음은 우연이 아니다.
가파초는 1970년 학생수가 173명을 기록한 적도 있지만, 1989년부터 86명으로 100명 이하로 줄어든 이후 급격하게 학생수가 감소, 지금은 7명에 불과하다.
때문에 주민들은 마을 차원에서 젊은 층을 마을로 불러들여 학샐 수를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 학교살리기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마을 주민 박영복씨는 "예전 가파리에 주민이 1000명까지 살았었고, 학생수 역시 100명이 넘었었다"며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자녀 교육 때문에 밖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가파도에는 고인돌이 많다. 결코 넓다고 할 수 없는 면적에 130여기의 고인돌이 존재하고 있다. 일부는 제자리를 벗어나 밭의 경계석으로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가파도에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의미다.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가파도의 고인돌 중 56기는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됐다.
가파도 고인돌은 국내에서 유일한 남방식 고인돌 구조를 지닌 데다 도내에서 단위 면적당 선사유적 밀집도가 가장 높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가파도에 있는 130여개 유물과 유적 발굴조사를 거쳐 고인돌로 확인되면 문화재로 지정, 선조의 삶을 재현하고 체험하는 선사문화유적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전통민박촌과 어촌관광종합센터도 만들어 가파도 청보리축제, 올레 등과 연계한 섬체험관광지로 육성하기로 했다.
▲가파도, 색 입는다
이제 가파도에는 이야기와 색깔이 입혀진다.
제주도는 가파도를 새로운 경관테마 섬으로 구축하기 위해 이야깃거리(스토리텔링) 발굴과 건물지붕·벽 도색 등의 경관개선사업을 추진한다.
제주도는 청보리 밭을 비롯해 주민들이 '왕돌'이라 부르는 고인돌 추정 군락지, 끊어질듯 길게 이어진 돌담, 억센 바람, 용천수인 '고망물', 마을신당 '할망당' 등 총 15가지 스토리텔링 요소를 재정비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도는 연간 가파도 방문객수를 20만명까지 끌어올려 명품 섬 관광명소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반가운 소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파도와 진정 어울리는 색깔을 입히는 게 중요하다. 철저한 고증과 조사로 가파도 본연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이곳의 자연환경과 가장 잘 조화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가파도의 청보리밭 사이 길을 매끈하게 포장, 원형을 잃어버리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