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달리던 제주마 500년간 지켜본 오름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31.대록산
북쪽 오름 60여개 한눈에·일제 진지동굴 '아픔'도
대록산은 제주마 흥망성쇠의 내력을 알고 있는 오름이다. 대록산은 조선시대 제주 동부지역 산간에 조성된 3개의 산마장 가운데 가장 큰 녹산장의 중심이었다. 대록산은 동서 75리·남북 30리의 규모(대략 3억6000만㎡)의 녹산장에서 지난 수백년간 나고 자라고, 육지로 나가는 제주마와 함께 했다. 한 때 6000여명이 동원되는 검마 작업의 현장으로 생동감이 넘치던 광활한 대지를 내달리던 말들의 발굽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한진그룹의 정석비행장을 오가는 항공기의 굉음이 대신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그 모든 게 지나가는 것임을 아는 듯 의연히 서 있는 대록산이다.
대록산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68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대록산은 비교적 큰 오름군에 속한다. 비고는 125m로 368개 오름 가운데 59번째로 높고 면적은 52만2097㎡로 48번째다. 저경 961m에 둘레는 2794m다. 바로 서쪽에 이웃해 있는 '동생'인 소록산은 비고 102m(108번째)에 면적 38만6069㎡(95번째)다.
오름의 이름은 산체가 사슴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탐라지(1653년) 등 옛 문헌에는 소록산과 묶어 장악(獐岳)·녹산(廘山)으로 표기하다, 탐라순력도(1703) '산장구마' 등에선 대록산(大廘山)과 소록산(小廘山)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주차장을 출발하면 곧바로 오름 입구다. '큰사슴이오름(大廘山)'이란 이름을 붙인 커다란 표석이 맞이한다. 시멘트 포장길을 5분 정도 가면 탐방로 1차 갈림길(〃B)이다. 오른쪽을 가리키는 화살표 안내판이 서 있다. 지금부터 '자연산' 흙길이다. 동쪽으로 5분 정도 가면 따라비오름쪽에서 올라오는 갑마장길과 만난다(〃C). 갈림길서 좌회전해 5분여를 가면 사거리다(〃D). '대록산 정상 가는길 0.5㎞' 팻말을 따라 우회전하면 본격적인 오르기다.
대록산 탐방로의 특징은 정상까지 계속되는 목재계단이다. 아주 가파르지도 않고 종종 완만한 구간이 있어 생각처럼 힘들지는 않다. 작은 분화구가 있는 갈림길(〃E)까지 440개의 계단이 지그재그로 설치돼 있다. 다시 북동쪽 정상부를 향해 계단을 밟으면 350개 정도에서 벤치(〃F)를 만난다. 주차장을 출발한지 30분이다. 대록산 남쪽 저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광활한' 녹산장 터는 한 눈에 담기가 힘들 정도다. 20m 정도를 더 가면 왼쪽으로 난 분화구 탐방로 입구(〃G)를 지나치면 정상(474.5m)을 알리는 삼각점(〃H)이 있다.
조금 지나면 대록산 동쪽 오름군이 멀리 성산일출봉까지 시원하게 펼쳐진다. 계속 내려가면 왼쪽으로 난 철제 탐방로 입구(〃I)가 나타난다. 분화구를 거치는 코스다. 정상부 사면을 따라 잘 만들어진 탐방로를 가다보면 분화구가 벽이 무너진 듯 화구 정상부가 급격히 낮아진다(〃K).
분화구를 원한다면 이곳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 무성한 풀에 탐방로가 묻혀진데다 가시가 웃자라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분화구 안은 농약 등 인간의 손을 타지 않아서 인지 메뚜기 천지다. 한발 나아갈때 마다 메뚜기 떼가 같이 날아오른다.
남쪽으로 걸어가면 금새 처음 오름으로 우회전 했던 갈림길(〃D)이다. 우회전하면 첫 갈림길(〃)까지 300m 남짓이고 직진하면 갑마장길 갈림길(〃C)를 거쳐가야 하니 750m가 넘지만 직진하는 게 좋다. 짧은 길은 흙이 폭우에 휩쓸린 뒤 도로에 돌들만 뾰족하게 튀어 나와 걷기에 여간 힘들지 않다. 어쨌든 주차장까지 돌아오면 1시간50분 정도다.
대록산의 산체는 전반적으로 가파르고 동서로 펼쳐진 가운데 화구가 정상(남쪽)에서 북서쪽으로 급격히 낮아지기 때문에 말굽형으로 보기도 하지만 원형화구(깊이 55m)를 갖는 화산체로 분류된다. 특히 분화구 서쪽 정상부를 접해 바깥쪽으로 터진 측화산 형태의 화구의 모습도 보인다.
대록산의 식생은 초지대와 2차림으로 대표되며 초지에서 2차림으로의 빠르게 천이가 진행되고 있다. 참억새가 우점하는 초지대에는 국수나무·딱지꽃·솔나물·꿀풀·청미래덩굴·산수국·개미탑·낭아초 등이 분포하며 정상부에는 산철쭉·참꽃나무·산수국·국수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2차림이 형성된 분화구 내사면에는 팥배·때죽·산뽕·까마귀베개 등이 우점하고 상산·곰의말채·고추·왕쥐똥·비목나무 등이 관목층을 형성하는 가운데 제주조릿대·산박하·방울꽃·삽자고사리·새우난초·가시딸기·나도히초미·양하 등이 하층부에 자라고 있다.
김대신 연구사는 "오름의 외사면을 따라 초지대와 관목림이, 정상부 및 분화구의 내사면에는 2차림이 형성돼 있어 종다양성이 매우 높은 오름 중 하나"라며 "오름의 하단부 계곡에는 특산식물인 제주상사화가 넓게 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말했다. 김철웅 기자
| 탐라순력도 '산장구마'의 현장 대록산은 수백년에 걸쳐 제주의 말들을 키워냈던 '산간 목장인' 녹산장(廘山場)의 중심이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탐라순력도의 '산장구마(山場驅馬)'다. 제주목사 이형상은 1702년(숙종 28년) 10월 15일 녹산장을 방문, 중심부인 대록산 정상에 좌정하고 조정에 진상할 말을 고르는 대규모의 점마(點馬) 작업을 실시했다. 6000여명이 동원된 대규모 '이벤트'였다. 구마군(驅馬軍·마필 모는 군인) 3720명이 산마장에서 방목하던 말들을 대록산 아래 평원으로 몰면 결책군(結柵軍·목장 울타리 만드는 군인) 2602명은 줄지어 서서 말들의 월담을 막고 목자(牧者·테우리) 214명은 말들을 원형의 목책 안으로 몰아넣고 한 줄로 빠져나가게 했다. 이 때 제주판관·정의현감·감목관 등이 말의 수와 건강상태 등을 일일이 점검, 우수한 말들을 낙점했다. 이날 점검한 말은 2375필이었다.
10소장은 1429년(세종 11년) 중산간 지역에 해안지역 촌락과의 경계인 하잣성을 쌓아 설치됐고, 산마장은 개인목장을 크게 운영했던 남원읍 의귀리 사람 김만일(金萬鎰·1550~1632)과 그 후손들이 국가에 말을 헌납한 것이 계기가 돼 1658년(효종 9년)에 만들어졌다. 녹산장은 표선면 가시리 소록산과 남원읍 수망리 물영아리 사이의 광활한 초지대에 형성, 옛기록(제주삼읍지·1792년)에 의하면 동서 75리·남북 30리에 달했다고 한다. 동서 45·남북 15리였던 침장의 3.3배, 동서 60리·남북 25리의 상장에 비해서도 1.5배 규모다. 녹산장은 대록산과 소록산을 합쳐 '녹산(廘山)'으로 부르던 데서 비롯됐으며, 따라비오름과 번널오름 지경 등 녹산장 동쪽에는 가장 품질이 우수한 상등마인 '갑마(甲馬)'만을 별도로 방목했던 갑마장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