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 등장 셰익스피어, 그 끝 모르는데 매력있죠"

[허영선이 만난 '사람'] 영문학자·제주출신 서울대 부총장 변창구

2012-08-09     허영선

 "두려워하지마라. 영국이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2012 런던올림픽의 서막은 셰익스피어였다. 대형 올림픽벨에 실어 울린 이 문장은 영국이 낳은 불멸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 '더 템페스트'의 명대사였다. 그렇게 셰익스피어는 끊임없이 산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살아움직인다 했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약한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 셰익스피어는 서성이는 우리 인간 삶의 도처에 나타나 간섭하고, 인간의 약점을 노골적으로 건드린다. 그 사람, 셰익스피어에 관한 한 한국의 손꼽히는 전문가.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을 역임한 서울대 변창구 교수. 그는 막힘없다. 삶의 근원에서 교육, 정치 권력에 이르기까지. 얼마전 제주출신으로는 드물게 서울대 부총장 겸 대학원장 자리에 오른 그를 만났다. 대화는 셰익스피어에서 시작됐다.

 누군들 셰익스피어의 문장 한줄 접하지 않은 이 있으랴.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가장 사랑받는 작품. "영어로 셰익스피어를 쓰면 전세계 도서관에 갑니다. 책을 써도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이죠. 우리나라에서도 셰익스피어를 쓰면 2000∼3000권은 나가요." 그런데도 그는 셰익스피어는 사람이 아닌 듯, 자신의 목소릴 못 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이야기를 한 게 아니고, 남의 이야기를 섞어놓은 거지요. 그때는 관행이었으니까. 그 원전을 찾아내는 것은 학자들이 하는 일이죠. 유명한 햄릿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는 원전은 없고 작품명은 남아 있어요. 어쨌든 그는 신적인 존재였죠."

 # 런던 올림픽 서막 울린 셰익스피어, 희망의 메시지

   
 
 

 셰익스피어 영문학자 변창구 서울대 부총장은

 1951년 제주 한경면 저지리 출생. 서울대 영문과 교수. 셰익스피어 및 현대 영미 희곡 분야에서 국내 손꼽히는 전문가. 서울대 부총장 겸 교육대학원장. 제주일중, 경남고, 1974년 서울대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과 학사, 석사. 1988년 미국 털사대 영문학박사. 한국 현대영미 드라마학회 회장 역임. 1945년 발족, 국내 영문학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셰익스피어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국내 셰익스피어학회 학자들의 모임은 350명. 영문학 전공 10분의 1은 셰익스피어다. 전세계적으로 셰익스피어 학자만도 1만명에 이른다. 탁월한 업무수행능력과 신의를 인정 받은 듯 서울대 교무부처장과 교무처장, 인문대학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맥베스」 해설. 공저 「셰익스피어 연극사전」 등. 「셰익스피어: 시대, 삶, 그리고 작품세계」 외 논문 다수.

 
 
결국 런던 올림픽에서 셰익스피어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실의에 찬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목소리로 나타났다. 세계가 깜짝. 변창구. 그에게 물었다. 햄릿, 맥베스, 리어왕…셰익스피어. 도대체 그는 왜 끝이 없는가. 왜 불멸인가?

 "셰익스피어는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 끝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데 매력이 있어요.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가끔 모자란 우리끼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 정치인으로서 권력을 잡을 때는 어떤 딜레마가 있다. 이런 이야기도 하고. 연애할 때는 어떤 식으로 하느냐, 실패하는 이야기도 해주죠. 20대와 60대에 읽는 의미가 다르듯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 공감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셰익스피어. 진부한 면도 있지만 정말 뛰어난 표현을 인정한다는 이 셰익스피어 연구가. 나름 그 명성은 계속될 것 같단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만 아니고 '있냐 없냐,' '존재할 것이냐 존재하지 않을 것이냐' 해석이 수십가지가 나오지만 아무 것도 맞다고 할 수 없어요. 함의하고 있는 그런 함축성 때문에 그 사람이 유명한거죠. 무한성이 개인의 경험에 국한되면 아무리 넓어봐도 요만큼합니다. '햄릿' 하나만 갖고도 400년 동안 논문이 몇천편 나오죠, 한줄이라도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말이죠."

 # 신 앞에서 인간은 파리목숨…정치인도 생각해야

 변창구.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영문과를 선택했다며 웃는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무엇에 끌렸을까. 작품? 다 좋다. 그래도 '맥베스', '리어왕'은 더 좋다. 리어왕은 인간에 대해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모자라고 형편 없는 존재인가를 일깨운다는 것. "신들은 우리 인간을 못된 아이들이 파리를 잡듯이 인간을 파리 목숨처럼 알고 우릴 죽인다. 우린 그런 파리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변창구. 그의 마음에 와 박혔다는 바로 이 구절도 '리어왕'의 한 대목.

 그가 서울대 인문대학장 시절에 열어 호응을 얻었던 인문학강좌에는 각계 한국을 움직이는 CEO들, 정치인들이 많았다. 여기서 그는 종종 셰익스피어의 이 의미있는 명대사를 인용했다.

 "우리가 심심하면 파리를 때려잡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신들 앞에서 그런 존잽니다. 신들은 장난하다 우리를 죽이곤 합니다. 당신들은 혹시 그러지 않는지 생각해보세요. 자신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인기를 얻기 위해서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있지 않는지 한번쯤 생각해보세요. 물론 그게 힘이 없을 수 있어요. 하지만 약자들의 입장을 한번쯤 생각해보라는 거잖아요. 문학작품은 그런 걸 얘기해주거든요. 인간이란 뭔지. 잔인하면서 비참하기도 하고 불완전하고, 이기적이기도 하고, 동물적이기도 하고. 당신이, 재벌기업이 과연 무엇을 하고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라는 거죠."

 사실 신 앞에서 우리가 무력한 것처럼 강자 앞에서 무력한 이들이 많다. 권력잡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가져야하지 않겠느냔 말씀. 요새 그런 생각이 더 든단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몰아치는 것 아닌가. "인간이 이기적이고 무자비한 존재거든요. 맛있으면 빼앗아먹고. 배고픈 사람 놔두고 먹잖아요. 셰익스피어의 그런 구절들은 두고 두고 머리에 남지요. 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인간의 이야기를 텍스트에 썼을텐데 아주 적절하게 잘 쓴거예요."

 인문학의 위기? 그는 이젠 많이 변하고 있다고 본다. 이젠 그들이 옛날식으로 뽑지 않겠다, 글쓰기 같은 걸 할 수 있는 사람들 뽑겠다하는 사람들 많아진다는 것. "조금 더 있으면 경영대학의 한계가 느껴질 겁니다. 그것만 갖곤 안된다는 걸. 인문학 기초과학에 투자해야죠. 지금까지는 남의 것 따라가느라 노력했죠. 예전엔 소니, 도요타 따라갈려고 했지만 이제는 넘어설려고 하잖아요."

 # 곁에서 본 안철수 "말을 아끼는 경지 대단"

 지금 강력한 대권후보로 떠오른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 안철수 원장과는 2주일에 한번씩 회의할 때마다 만난다. "안철수 원장은 수줍은 소년 같아요. 재미있는 분입니다. 아주 정제된, 꼭 필요한 말씀만 하시죠. 사람이 말을 안하는게 참 어려운거잖아요. 우리가 알면 말하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데 말을 안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지는 참 대단한 거라고 봅니다."

 그가 생각하는 차기 대통령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이 올바른 사람이었으면 해요. 다양한 계층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라면값이 얼만지 아는 사람이 돼야지. 기계적으로 세상을 어느 한쪽만 보는 사람들은 안된다고 생각해요."

 인간이란 거짓말이란걸 알면서 속기도 하는 존재가 아닌가하다는 이 인문학자. "정권도 그래요. 잘못되면 우리 국민이 책임있죠. 정이나 연에 못이겨서 다 뽑아놓으니까 그런거죠. 개인의 조그만 이익 때문에 움직이는, 이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해요. 표를 가진 우리가 제대로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하는 거거든요. 어느 대학에서 총장 선거때 뭘 해주겠다 하니까 정말 아니올시다 하는 사람을 뽑아서 일이 벌어졌단 얘길 들었거든요. 정말 말도 아닌 공약 한 사람한테. 지난 대선도 그런것 아닌가요."

 그래도 우리 사회가 문제가 많지만 아직 희망이 있다고 보는 변창구. 남에 대해서 걱정할 수 있다는 것은 건전한 사회라는 것. 그것도 안하게 되면 끝나는 거다. "그래도 아직은 씩씩 거리잖아요."

 # 교육정책, 정권에 의해 흔들리지 않아야

 "정치인들은 임기 끝나면 끝이지만. 그러나 그런 후유증은 10년, 20년뒤에 우리한테 옵니다." 우리 교육정책이 정권에 의해 흔들리는게 문제라는 변창구 부총장. 문제는 정치가들이 교육을 해서다. 지식은 이미 지나간 것이고, 지금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절대 교육정책은 자꾸 바꾸면 안된다는 생각. "아무런 정책을 내놔도 문제가 있거든요. 초등학교 들어올때 12년후 이런걸 갖고 시험칠거다하면 자기가 알아서 할 거 아닙니까. 지금은 2, 3년도 안가잖아요. 재력있는 서울 부모, 시골사람 모든 점에서 어디가 유리하겠습니까."

 사교육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아닌가. 그의 즉답. 공교육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사교육 없던 때가 없었어요. 과거시험 볼 때도 있었죠. 심지어 족집게 과외까지도. 논어에서 가장 출제가 잘되는 부분을 써놓은 책이 다 있어요. 중요한 것은 입시정책을 바꾸면 안돼요. 그것을 바꾸면 사교육시장은 당장 바꾸지요. 전문가가 아니니까 공교육의 선생님들은 반응이 있죠."

 교육경쟁? 인간이라는게 이념적으론 평등하기를 바라면서 개인적으로 내가 남보다 우월하기를 바라는 모순된 존재아닌가. "셰익스피어도 그렇지만. 사실 그러한 모순을 얼마만큼 조화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아무리 세상이 경쟁교육 하지만 선생은 좀 놔둬라 이래요. 다르게 기준을 정하면 안되나. 치외법권처럼 소신껏 하는 사람은 그대로 놔두면 안되나. 또 오늘의 비극은 부모가 너무 잘 알아서 그래요. 자식이 하고 싶은대로 놔둬야 하는데 안그러잖아요."

 전국거점국립대학교 총장협의회(회장 제주대 허향진 총장) 참석차 모처럼 고향에 왔다는 그는 제주대학교도 제주대만의 지역 특성을 살린 대학으로 나가는 길이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서울대 부총장 변창구. 조용조용하나 거침없다. 성공한 사람? 아니란다. 겸허하나 셰익스피어 연구자답게 그의 세상을 보는 눈은 깊고 넓다. 그 역시 학문의 길에서 힘든 과정이야 왜 없으랴. 허나 삶의 과정에 놓인 힘든 순간을 이겨내게 한 것은 고향이었고, 어머니였으며, 무엇보다 노력밖에 없다 했다. '아무 것도 없는 집안'. 3남1녀의 장남. 태어나보니 누구나 농사하던 마을이었고, 농사꾼 자식이었다. 학생때 이름 때문에 생긴 별명 '반창고'.

 1967년 부모를 따라 고향을 떠난 소년에게 각인된 고향은 당시 모호하지만 고향의 아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라봉을 지날 때마다 할아버지한테서 4·3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나요." 4·3때 할아버지는 고향인 저지리에서 한림으로 피난 가기도 했었다.

 고향의 불가피한 변화가 발전하는 쪽이었으면 한다는 이 사람. 인문이 들어가야 정치가, 사회가 바뀐다고 생각하는 사람. 호박꽃 활짝 핀 제주시 탑동 언저리에 선 그가 환하게 웃었다. 고향 바다만 봐도 설렁인다. 제주도가 고향이어서 정말 행운이라고 했다.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ysun64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