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 역사 관심 가질때 역사 대중화 기여 보람"

[허영선이 만난 '사람'] 역사전문 도서출판 푸른역사 대표 박혜숙

2012-08-23     허영선

   
 
 

 역사전문 도서출판 푸른역사 대표 박혜숙은

 1961년 제주생. 출판인. 신성여고, 숙명여대 사학과 및 동 대학원 졸. 대학강사를 하다 1991년 정보지 '차림' 입사, 관리이사로 6년만에 퇴직. '차림'시절, 1993년 대전엑스포 공식 보고서 총괄기획. 평생 출판을 한다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로 결심, '역사'를 선택했다. 1997년 2월, 도서출판 푸른숲의 자사로 도서출판 푸른역사 창립, 나중에 독립, 1년에 20~30권을 꾸준히 내고 있다. 「미쳐야미친다」 「한국고대사속의 고조선사」 「조선의 뒷골목 풍경」 등 280여종 발간. 2003년 중앙일보 선정 문화분야 '올해의 새뚝이', 2005년 출판문화대상, 2011 책의 날 문광부 장관상 수상. 역사대중화, 사랑방 모임인 역사학자 모임을 10년 이상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푸른역사 아카데미'를 열어 필진과 독자와의 소통을 위한 강좌를 열고 공간 대여도 해주고 있다.

 
 
  그때, 열세살 소녀는 새로운 세상과 만났다. 야사 위주로 흥미롭게 들려주던 역사선생님의 이야기에. 그렇게, 즐거운 책읽기에 빨려들던 소녀는 서른 넘어 역사책을 만들고 있었다. 역사! 어렵고 딱딱하다고? 베스트셀러가 안된다고? 역사 대중화를 이끈, 우리 역사서 영역의 폭을 확장한 역사전문브랜드 도서출판 푸른역사. 바로 역사가 좋아서, 역사를 통해 꿈꾸던 제주소녀, 박혜숙의 꿈이다. 역사서. 고집과 출판철학 없인 버티기 어려운 일. 허나 그는 경기 흐름에 가장 민감하다는 그 출판무대에서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창의적이고 냉정한 열정. 한그루 한그루 나무를 심듯 푸르고 울창한 역사의 숲을 가꾸고 있는 22년 출판인생. 역사는 그에게 푸근한 고향같은 것. 마지막까지도 손에서 원고를 놓지 않을거라는 실무형 푸른 역사 대표 박혜숙, 그다. 

 "올해 출판계요? 반타작 났어요. 매출이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고들 해요. 경기 흐름을 가장 먼저 타는게 출판곈데 경기가 최악이라고 보고 있지요. 책이 일용할 양식이 돼야 하는데 그 수준까지 못 가니까. 요즘처럼 페이스북, 트윗 세상이 되니까 더 그러죠. 지하철에서도 다 이것 하잖아요." 큰 키, 시원시원한 목소리. 쉽게 바람탈 것 같지 않는 이 여자. 휴대폰을 꺼냈다. 남들 다 쓰는 스마트폰은 아직 아니다. 자신도 그래질까봐서란다. 

 도서출판 푸른역사. 다양한 실험을 통해 역사의 대중화, 학술서의 대중화를 실현하고 있는 출판사. 요즘엔 출판을 넘어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꾸린 푸른역사 아카데미로 주목받는다. "이것을 하니까 우물밖으로 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밖에 나와 출판쪽을 보니까 아, 내가 그동안 갇혀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독자와 저자가 만나는 사랑방 같은 역할이죠. 또 하나는 대안적인 역사교육 공간. 어느쪽 방향으로 가야할 지는 저도 아직은 실험단계예요."

 # 누구 따라가는 것 아닌 스스로 자기 모델 만들어야

 박혜숙. 출판인으로 사는 동안 원고를 손에서 놓는 일은 없으리. "어떻게 자기 책에 대한 자각을 못하면서 책을 선전하려고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생각이죠. 사람들은 그러기 때문에 니가 출판사를 못 키우고 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저는 누구를 따라가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자기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예요."

 이러한 신선한 발상, 고집과 열정이 푸른역사를 키워냈다. 흔들림없는 초발심과 역사에 대한 애정 없인 힘든 일. 2000년, 그가 독립할 때 세운 원칙. 역사 이외의 분야에 눈을 돌리지 않는 것과 외형에 집착하지 않는 역사 전문 브랜드를 남긴다는 첫마음.

 출판사 규모? 그를 포함해 7명. 많게는 10명까지 둬봤지만 큰 조직을 꾸릴 스타일이기보단 실무형 대표란 사실만 입증했다. 물론 무엇보다 그가 대표로서 많이 고민할 일은 경영. 과연 생산성이 맞는가다. 사실 인문서의 1만~2만부는 실용서의 10만부나 마찬가지로 본다. 보람? "밖에서 만난 새로운 분야 사람들이 저희 책을 보고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할 때, 아카데미 와서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할 때, 뭔가 사회적으로 환원해내는 부분들, 대중에 기여하는 메시지가 있었구나 하죠."

 # 중학교때부터 진로 결정한 역사학

 아무래도 중학교 역사교사의 영향이었다. 선생님은 야사 위주로 역사 강의를 아주 재미있게 했다. 그때였다. 역사책에 매혹된 것은. 집에 돌아와 아버지가 읽던 책들, 굴러다니던 「왕비실록」 등등에 빨려들었다. 주로 스토리 텔링이 강한 류의 책들이 좋았다.

 대학의 강의도 잠깐해봤으나 아무래도 교단은 적성에 맞지 않는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게 뭘까. "재밌는게 책 읽는 일이더라구요. 책읽기가 재밌으니까 책 만드는 일이 되더라구요."

 그 일의 시작은 일종의 데이터 베이스를 가공하는 정보 전문지 '차림'에서다. 나이는 많은데 경력은 없는 사원. 허나 맹렬히 일한 그때의 경험은 그에겐 행운이었다. "들어가서 실무일도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대전엑스포 공식보고서를 수십명 동원해서 총괄을 했어요. 그게 대형 프로젝트였는데 그땐 미친듯 일을 했던 것 같아요. 8개국의 공식보고서를 일주일내내 했거든요." 내 운명을 결정짓겠다는 마음으로 늘 야근이었다는 박혜숙. "그것을 딱 끝내니까 아, 이젠 실무자로서의 자격을 갖췄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때 내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구나. 내가 이제부턴 이 분야에 발을 딛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 마음 흔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출판인의 길로

 그를 압도한 것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었다. 서른다섯. 훌쩍 떠난 이 도서전에서 그의 꿈은 결정됐다. "가장 앞서 간 출판물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여기에 다시 오고싶다는 꿈이 생긴거죠." 돌아오자마자 미련없이 '차림'의 관리이사로 6년만에 사표. 소문을 듣고 어느 대형 출판사에서 자회사를 차려준다고 했다. 허나 출판사 경영자보다 누가 나를 믿고 지지해주면 전문 경영인이 스타일에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왔다.

 "출판 공정에서 보면 주간 아니면 편집장이 내 스타일이예요. 기획하고 편집하고 사람 만나는 일이 취향에 맞지 꼼꼼하게 관리하고 돈 계산 하고는 잘 맞지 않더라구요."

 평생 출판으로 간다면 내가 좋아하는 출판을 붙잡자. 돈도 없던 그가 처음 찾아간 곳은 확대성장을 해나가던 푸른숲. 꿈만 들고 갔다. "어리숙한 내가 가서 나에게는 꿈이 있다. 나는 앞으로 10년 후 역사전문출판 브랜드를 만들고싶다. 6층짜리 공간설계를 냈죠." 그의 당돌한 비전을 알아본 사장, "너 나랑 일하자" 그렇게 그의 손을 잡았다.

 전문 연구자들의 글은 딱딱하고 설득력이 쉽지 않았다. 일반 대중의 눈에 맞춰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역사대중화를 내세우며 시작한 도서출판 푸른역사의 첫 책은 마침 터져주었다. 「새로 쓰는 백제사」였다. "그 바람에 어려움 없이 나갈 수 있었어요. 2만3000원 책이 1만부 가까이 나가니까 초기 자본을 만들어 준거죠."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출판행진 쑥쑥. 10주년. 마침 경복궁 근처 한옥에 푸른역사 사옥을 마련할 수 있었다. 허나 베스트를 친 정민의 「미쳐야미친다」가 나오고 그는 다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안다. 보통 베스트를 내는 순간 냉정함을 잃고 베스트에 갇혀 외형만 키우다보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100만부, 이런 것 한꺼번에 나오지 않아요. 10만부 만들어봐야 20만부 만들어지고. 30만부 만들어보면 그 맛을 알고 나태해지죠. 그런게 어쩌면 작지만 어려움 없이 버텨오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처음과 달리 대중서 보다 학술서 위주로 바꿔버렸다. 역사교육과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사에는 역사학자들의 역할이 크다는 박혜숙."역사학계가 여전히 5·16 같은 사회적 발언에 대응하거나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죠."

 # 출판은 수익사업 아니다…대중에 돌려주자

 그래도, 간혹 「안철수의 생각」처럼 대히트를 치는 책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저는 오히려 어차피 안철수의 역사의식을 놓고 집중했을 거예요. 우리한테 아이템이 오면 뭐든지 역사화 시키지 않으면 우리한테 맞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문학도 역사서처럼 포장을 해버리거든요."

 박혜숙 대표. 그는 공정이 비교적 쉬운 번역서 보다 한국사 쪽에 비중을 많이 둔다. "어쨌든 유치한 수준의 글들이라도 발굴해내고 개발하는게 우리 사회 지적 인프라가 깊이 있게 가고 확충해 내는게 아닌가해요." 역사학계의 글쓰기가 상당히 답보상태라고 보는 그는 가능하면 창작자 위주로 가야한다는게 그의 원칙. 출판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의 모형을 만들어낸 푸른역사. 소형출판사들 가운덴 푸른역사를 모델로 하는 곳이 많다란 얘기도 듣는다. 

 "저는 개인의 푸른역사가 아닌 다양한 필자들의 푸른역사가 돼야된다고 생각해요." 푸른역사의 성공요인은 이런 차별화된 필자관리 시스템이 아닐까. 책 한권 한권에서 애정과 매력. 전문성과 대중성을 섞어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푸른역사는 요즘 생각을 바꿨다. 틈새 주제로 나간다는 것. "이번에 소금과 연관된 역사적 장면들을 다 끌어와 작지만 큰 한국사를 낸 거죠. 지금 한국역사연구회와 시대사 10권짜리 방대한 작업을 하는 등 끊임없이 학술서 발간 계획이 잡혀 있어요. 역사문고도 100권을 계약해서 올해 3권이 나와요." 사실 사람 만나는 일이 힘들고 진이 빠지는 일이지만 모든 역사학자 하고 전부 작업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이 통 큰 출판인 박혜숙.

 그는 요즘 페이스북에 푹 빠졌다. 아직 나는 그의 페북을 열진 않았으나 그는 출판계에서 페북 파워유저로 손꼽힌다. 올해 100명에서 시작 4400명. 가끔 생각해보면 어찌 제주촌년이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가끔 신기할 때가 있다라고 페이스북에 쓴 제주여자 박혜숙.

 그도 50넘어 인생관이 많이 변했다. "움켜쥐고 일을 향해 달려가고 목표 지향적인 인생을 가다가 아, 하나씩 놓는 연습을 하면서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온거죠. 출판은 수익사업이 아니다란." 그가 닮고 싶은 모델은 사계절 강맑실 대표. 이상도 배포와 뚝심도 여러 가지로 존경이 간다.  

 그동안 고향을 꽤 잊고 살았다. 20년 제주에 살고 30년 이상 서울에 살았다. 고향에 있어도 가슴이 꽉 막히고 갑갑하던 청춘의 시기가 있었다. 끝내는 역시 고향이다. 포근함과 안정감으로 그를 안아주는. 어쩌면 50대 후반쯤엔 왔다갔다하면서 일을 벌릴 수도 있겠다. 오랜만에 고향의 푸른 숲에서 밝게 웃는 저 여자, 푸른역사의 나무를 심는 마음은 여전히 그때 그 소녀이리.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ysun6418@hanmail.net